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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들의 도심속 마술 버스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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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술사를 꿈꾸는 이의찬(왼쪽)씨와 서민기군, 가운데는 스승인 홍미선씨. [사진 교육마술연구센터]

마술사를 꿈꾸는 이의찬(왼쪽)씨와 서민기군, 가운데는 스승인 홍미선씨. [사진 교육마술연구센터]

전북 익산에 사는 서민기(17·이리공고 2학년)군은 어릴 때부터 외톨이였다. 소심한 성격이라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에서 늘 겉돌던 서군은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TV에서 본 마술의 세계에 빠졌다. 집에서 혼자 마술 동영상을 보거나 마술 도구를 만지작거렸다.

전북 익산 이의찬·서민기 매직 듀오

이런 모습을 안쓰럽게 본 어머니 이현숙(45)씨는 아들을 ‘교육마술연구센터’에 데려갔다. 프로 마술사 홍미선(43·여) 대표가 마술을 가르치는 곳이다. 서군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마술을 배우며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부터 술술 풀린 건 아니다. 센터 안에서는 기막히게 잘되던 마술이 밖에만 나가면 실수 연발이었다.

그러던 서군이 여러 사람에게 마술을 보여준 건 중학교 2학년 때 교실에서다. 3학년 때는 전교생 수백 명 앞에서 마술을 했다. 마술을 배운 지 5년이 지난 지금 서군은 몰라보게 당당해졌다. 어린이날 등 행사장에 차려진 마술 체험 부스에서 호객할 정도다. 홍 대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능력이 길러졌다”며 뿌듯해했다. 어머니 이씨는 “민기가 마술에 몰두하다 보니 게임 중독 등 다른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모르고 지나갔다”며 마술 예찬론자가 됐다.

서군은 일주일에 한 번 센터에서 홍 대표에게 마술을 배운다. 마술 수업이 끝나면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간다. 도심 한복판에서 마술 공연(버스킹)을 하기 위해서다. 서군이 터득한 마술은 100가지가 넘는다. 이 중 ‘링 마술’이 주특기다. 링 여러 개를 자유자재로 연결했다, 풀었다 하는 마술이다.

서군의 단짝은 홍 대표 아래서 마술을 배우는 이의찬(21)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술에 입문한 이씨는 지적장애 3급이다. 지능이 8세 수준이다. 하지만 서군은 “의찬이 형은 말이 어눌한 것 빼곤 배울 점이 참 많다”고 했다. 이씨의 표정 연기는 웬만한 배우 뺨치는 수준이다. 신나게 춤을 추며 하는 마술은 센터 안에서도 독보적이다. 표정 연기가 어색했던 서군은 이씨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따라 하며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서군도 이씨에게 마술 기술을 알려주거나 말 잘하는 법을 전수해 주곤 한다. 홍 대표는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두 제자를 “‘악어와 악어새’ 같은 상생관계”라고 표현했다. 주위 사람들도 “두 사람은 마술에 필요한 몸동작이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익히면서 성격이 밝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은 지난 12일 익산교육지원청에서 주최한 ‘청소년자치문화공간’ 개관식에 초대됐다. 10분짜리 축하 공연이었다. 서군은 링 마술을, 이씨는 빈 상자에 휴지를 찢어 넣고 사탕이 나오게 하는 마술을 펼쳤다. 물론 춤도 빠지지 않았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마술은 아니었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열정에 아낌없이 박수를 쳐줬다.

두 사람의 꿈은 뭘까. 서군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술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마술을 배우며 얻은 자긍심과 재능을 나누고 싶어서다. 이씨는 ‘춤추는 마술사’가 꿈이다. 얼마 전부터 제빵사 준비도 하고 있다는 그는 “춤추며 마술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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