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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프리즘] 미국인이 미국산에 열광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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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순화의 마켓 & 마케팅

미국 벤치메이드 모던이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소파. 이 회사는 고객이 자신의 체형에 맞게 소파의 폭과 깊이, 다리 길이 등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벤치메이드 모던]

미국 벤치메이드 모던이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소파. 이 회사는 고객이 자신의 체형에 맞게 소파의 폭과 깊이, 다리 길이 등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벤치메이드 모던]

미국 소비시장에서 ‘미국산(Made in America)’ 제품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는다. 로이터 통신과 시장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2017년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0%가 “자국산 제품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컨슈머리포트 조사에서는 60% 이상이 “가격이 10% 더 비싸더라도 미국산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애국심 아닌 프리미엄 원한 결과 #생산부터 전 과정에 혁신·신뢰 입혀 #자국산 소비, 밀레니얼 세대와 맞아 #원산지 따지며 혁신 둔감해선 안돼

외국산 제품 구매를 국가 경제에 해를 끼치는 부적절하고 비윤리적 행동으로 인식하는 소비자 자민족주의(Consumer ethnocentrism)가 뚜렷해진 것이다. 자민족주의 성향은 저비용 해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블루칼라 소비자일수록 강하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 맞춰 기업들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은 소비자들의 국산품 선호 확산과 함께 더욱 촉진될 전망된다.

코카콜라는 캔에 ‘미국인임이 자랑스럽다’는 문구를 넣은 제품을 선보였다. [사진 인터넷 캡처]

코카콜라는 캔에 ‘미국인임이 자랑스럽다’는 문구를 넣은 제품을 선보였다. [사진 인터넷 캡처]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은 올림픽과 대선이 치러졌던 2016년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코카콜라는 독립기념일을 맞아 캔에서 로고를 줄인 대신 ‘미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란 문구를 큼지막하게 넣었다. 버드와이저는 아예 제품명을 ‘America’로, 기업명을 ‘US’로 변경한 맥주를 선보였다. 저렴한 중국산을 주로 취급하던 월마트도 2023년까지 국산품 판매를 확대하는 ‘Buy Made in USA’ 캠페인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들의 국산품 소비를 ‘애국적 소비’로만 해석하면 곤란하다. 미국산은 품질이 뛰어나고 안전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여겨진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미국 소비자의 38% 자국 의류를, 31%가 자국 자동차를 세계 최고로 자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생산 원칙을 고수하는 100년 역사의 핸드메이드 가방 브랜드 J.W. 흄, 신생 주방용품 업체 메이드인 등은 유럽의 명품 브랜드에 버금가는 고품질 제품을 합리적 가격대에 제공해 중산층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 있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저가 상품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의류업체 아메리칸 자이언트의 미국산 스웻셔츠는 월마트나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유사한 제품 3벌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격에 팔리지만, 질 좋은 원단으로 제대로 만들어 오래 입을 수 있다. 가격이 비싸도 소비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고객 개개인의 니즈를 반영한 상품을 신속하게 생산, 배송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맞춤 가구를 제작하는 벤치메이드 모던은 고객이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체형에 맞춰 소파 폭과 깊이, 다리 길이 등을 1인치 단위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한다. 50개 이상의 컬러, 소재 옵션도 주어진다. 확신이 없는 고객에게는 실제 사이즈의 프린트물을 보내 집에서 테스트할 수 있도록 한다. 주문과 동시에 LA 공장이 가동되고, 고객은 생산부터 배송이 완성되는 전 과정을 실시간 트래킹할 수 있다. 표준화된 가구에 불만을 지녔던 젊은 소비층이 호응하자 이케아식의 대형매장은 사라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스테이트옵티컬은 안경 제품에 미국산임을 새겨 넣고 있다. [사진 인터넷 캡처]

스테이트옵티컬은 안경 제품에 미국산임을 새겨 넣고 있다. [사진 인터넷 캡처]

미국 기업들은 스피드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공장 환경을 구축하는 동시에 생산직 트레이닝에도 공을 들인다. 1990년대 이후 해외 생산이 보편화하면서 숙련공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계, 안경 등 정교한 수작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업계를 떠나지 않았던 베테랑 경영자들은 생산직 노동자들이 장인의 자질을 갖추도록 훈련 시키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40년간 안경 도매업에 종사한 스콧 샤피로는 레이밴·오클리 등 유명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룩소티카, 온라인 판매의 편리함과 저렴함을 강조한 와비파커의 중국 하청공장들을 수차례 둘러보며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간파했다. 또 경제 회복기에 들어선 미국 시장에서 고급 안경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2014년 샤피로가 설립한 스테이트 옵티컬은 전 제품을 시카고에서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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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론칭에 앞서 전직 정비공, 보석세공인, 유통판매원, 전기기사 등으로 구성된 생산직을 대상으로 6개월간 강도 높은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고객 얼굴에 편안하게 맞는 핸드메이드 안경을 만들기 위해 장력의 균형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나사를 조이는 작업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스테이트 옵티컬 안경은 20차례 이상의 송곳질을 포함한 75개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미국내 500개 고급 안경점에서 샤넬, 프라다와 비슷한 가격으로 팔리는 안경의 안쪽에는 브랜드명과 ‘Made in USA’이 각인되어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안경 장인 50여 명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미국산 구매 운동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공동체 의식과도 맞아떨어진다. 개인의 성공보다 서로 돕고 함께 성장하기를 추구해 ‘위 세대(We Generation)’로도 불리는 이들은 글로벌 대기업이 중국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보다 중소 로컬 브랜드의 개성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한국 젊은이들이 골목길 작은 상점을 즐겨 찾는 것과 유사하다.

제품과 기업의 정통성, 사회적 가치가 중시될수록 원산지 효과도 커진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GFK가 발표한 2017년 국가브랜드지수에서 미국은 과학기술과 창의성이 뛰어난 국가라는 차원에서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영국 퓨처브랜드의 조사에서도 품질이 좋고 독특한 제품, 사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국가로 꼽혔다. 창의적 기업 환경, 장인정신 등의 기준에서 한국은 순위권 밖이다. 그런데 한국만큼 원산지를 꼼꼼히 따지는 곳도 없다. ‘Made in’ 경쟁을 일자리 쟁탈전으로만 보면 내수 시장마저 빼앗기는 처지가 될지 모른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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