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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서 뭐해? 명품·수입차에 꽂힌 30대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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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명품·수입차에 꽂힌 30대 남자들

명품·수입차에 꽂힌 30대 남자들

직장인 김모(32)씨는 지난겨울에 산 100만원짜리 ‘발렌시아가’ 운동화를 신고 매달 한두 번 공연을 관람한다. 여자친구가 있지만 매번 취향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혼자 다닌다. 김씨에게 내 집 마련은 먼 미래다. 당장 이번 주말을 위한 패션·취미·공연이 먼저다. 그래서 월급 250만원 중 60~70%는 사고 싶은 걸 사거나 주말 여가를 보내는 데 쓴다. 저축은 버는 돈의 10%로 충분하다.

현대백화점 매출 비중 13%로 껑충 #BMW 구매자 30%는 30대 직장인 #결혼·출산은 필수 아닌 ‘선택사항’ #자기애 강해 나를 위한 소비 즐겨

박모(36)씨는 지난 2월 IT 전문 온라인몰에서 빔프로젝터와 음성인식 스피커를 150만원에 구매했다. 한 달 월급의 절반이 넘지만 ‘집에서 여유 있는 영화 감상을 원해’ 투자했다. 이 밖에도 매달 소득의 30~40%를 캠핑 장비나 외식·공연 등 ‘나를 위한 소비’에 쓴다. 월급의 25% 정도를 저축하지만 주택 마련 자금은 아니다. 박씨는 “여자친구가 없어 당장 결혼 계획은 없다. 지금 부모님과 같이 살지만 나중에 전세든 월세든 그때 가서 형편에 맞게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30대 남성의 소비가 늘었다. 백화점 명품관은 물론 오픈마켓의 남성 취미 카테고리 등 전방위 채널에서 30대 남성의 씀씀이가 커졌다. ‘욜로’(You Only Live Once)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나를 위한 소비’ 추세가 30대 남성의 지갑을 열게 했다. 결혼과 주택 구입이 힘들어진 세대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전체 매출 중 30대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보다 1.7% 오른 13.3%였다고 19일 밝혔다. 특히 명품 시계 구매에서 지난해 처음 30대가 40대를 앞질렀다. ‘요리하는 남자’ 열풍에 힘입어 ‘로얄 코펜하겐’ 등 명품 식기를 구매하는 남성도 늘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30대 남성 비중은 7.8%로 전년보다 0.2% 늘었다. 특히 명품 카테고리에서 30대 남성 비중은 14.1%로 2년 전보다 4.4%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5년(2013~2017년) 동안 전체 매출 중 30대 소비자의 비중은 30%대로 큰 변화가 없지만 이 중 남성 비중은 23%에서 25.1%로 소폭 늘었다.

오픈마켓도 같은 흐름이다. 지난해 11번가 전체 매출 중 30대 남성 비중은 20%로 전년보다 4% 증가했다고 이날 밝혔다. 구매액이 높은 품목은 노트북·가전·카메라·자동차용품 순이었다. ‘나를 위한 소비’ 카테고리에선 러닝화가 가장 많이 팔렸으며 그 뒤로 라운드 티셔츠, 스니커즈, 명품 시계, 닭가슴살, 수분크림, 스마트워치, 홍삼액, 키덜트 용품, 클렌징폼 순이었다.

지난해 BMW 전체 구매자 중 30대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1.4%까지 올라왔다. 5년 전보다 5% 높은 수치다. 김정현 BMW코리아 매니저는 “집값 상승으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데다 결혼까지 늦어지며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지금의 30대는 1980~89년생이다. ‘취업 재수’가 보편화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직장을 얻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즐겨보자는 보상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늦은 결혼 풍조도 소비를 부추겼다. 2015년 통계청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당시 30대(77~86년생)의 미혼율은 44.2%에 달했다. 95년 조사 당시 30대(57~66년생)의 13.1%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반면 30~40대 남성의 자가 주택 보유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80년대생들은 아버지 세대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유교적 가치, 즉 결혼과 출산을 당위가 아닌 선택으로 여긴다”며 “가족이나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나를 우선하며 소비 성향도 그렇다”고 말했다.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린 세대이며 외동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30대 초중반 직장인을 ‘워라밸(Work-Life-Balance) 세대’로 분류했다. 이들은 자기애가 강하며 부모 세대와 달리 일(Work) 때문에 자신의 삶(Life)을 희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 “과거 산업화 시대의 집단 문화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성향을 갖는다.

김씨와 박씨는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2002년 월드컵을 꼽았다. 당시 대학 2년생이었던 박씨는 “신나게 놀면서도 ‘이렇게 놀아도 어른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했는데 스스로 금기를 깨는 계기가 됐다”며 “이후 ‘기성세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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