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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당 전원회의 ‘노선전환’…핵보유 선언? 비핵화 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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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북한이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고 2013년 3월 제시했던 경제-핵 병진 노선을 공식 폐기했다. 대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내놨다. 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새로운 전략적 노선은 가장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노선으로 된다”고 밝혔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전원회의는 북한의 전략과 정책을 토의하고 결정하는 최고 결정기구다. 따라서 이날 결정이 당분간 북한의 정책 기조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결정에 깔린 김정은의 노림수다.

북한은 구체적으로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북부 핵시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 등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를 그만 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공개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로 꼽아온 동결의 출발점으로도 볼 수 있다.

청와대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발표 직후(21일) 환영한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있는 진전”,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뉴스이자 큰 진전”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핵실험장 폐쇄는 사찰 가능성의 암시”라며 “핵 실험장의 사찰을 시사한 건 핵무기화 기술 수준의 공개를 전제하는 것이므로 과감한 비핵화 의지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남·북·미 간 연쇄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구에 호응했다는 것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의 방북 이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미국과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매해 한 차례씩 여는 전원회의를 지난해 10월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열어 핵실험 중지 카드를 내놓은 건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협력이 이뤄진다면 비핵화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또 핵은 흥정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해온 북한이 향후 한·미와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핵심 의제로 다루고 이에 따른 후속조치를 이행할 경우에 대비한 대내적인 ‘예방주사’ 성격도 있다. 주민들이 받을 충격을 줄이려는 포석인 셈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핵·ICBM 실험만 중지하기로 했을 뿐, 핵 포기를 언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실험의 중지’일 뿐 ‘생산의 중지’가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생산한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HEU) 등은 계속 보유하겠다거나, 실험은 그만해도 연구는 계속해 핵무기 생산은 계속하겠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정은이 실험을 중지하겠다고 밝힌 근거는 핵무력 완성이다. 북한은 전원회의 결정문에서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 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됐다”고 발표했다. 또 "핵 위협이나 핵 도발이 없는 한 사용치 않을 것"이라거나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핵은 유지하면서 핵 보유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 보유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북한의 전력 때문에 의심을 더 하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지만, 이후 핵 개발에 전념했다. 김정은 체제에서 처음 나온 북·미 합의인 2012년 2·29 합의에서도 핵실험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에 동의해놓고 두달도 지나지 않은 4월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존의 병진 노선에서 핵을 뺐다고 해서 핵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며 “아직까진 북한의 의도를 단정하기엔 이르지만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만 놓고 고면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의 발표는 행간을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표면상으론 핵 보유 선언의 재확인이지만 문재인 대통령 특사와 미국, 중국에 비핵화 의지를 밝힌 이후에 나온 이후의 흐름을 고려하면 정상회담에 앞선 선제적 신뢰구축 조치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용수ㆍ박유미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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