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술 대중화에 기여한 판화…그 종류와 에디션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2)

갤러리(화랑)를 운영하며 미술품 전시를 기획한다. 많은 관람객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소개해 대중이 미술을 친근하게 여겨 화랑에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 목표다. 미술품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자신감을 갖고 문화생활의 기쁨을 만끽하고, 나아가 미술품 투자까지 도전할 수 있게 돕는다. <편집자 주>

국립현대미술관 판화전시 포스터. [사진 송민]

국립현대미술관 판화전시 포스터. [사진 송민]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달 29일까지 판화전시회를 연다. 그간 전시회 관람객으로부터 받은 질문에 답을 하는 식으로 판화에 얽힌 궁금증을 풀어본다. 겉핥기 식이던 판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떤 관람객은 학창시절 만든 고무 판화가 판화의 전부로 알았는데 다양한 판화 작품을 보니 놀랍다고 했다. 그러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4대 판법은 무엇일까?

판화(版畵)는 그림과 글씨를 새긴 판(版)을 이용해 종이나 천에 인쇄하는 시각 예술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가장 오래된 예술 장르 중 하나인 판화는 회화에 없는 표현력을 살린 예술적 특성으로 20세기에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현대판화는 1950년대에 출발해 1980년대에 도약했다. 미술대학의 전공과목이 된 판화는 1990년대부터는 전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신상우, Wood-Cut, Modern People, 30x40cm, Edition 1/2, 2014

신상우, Wood-Cut, Modern People, 30x40cm, Edition 1/2, 2014

신라의 다라니경, 세계 최초의 목판화 

목판화(woodcut)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704년 신라의 다라니경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화다. 서구에서는 15세기부터 발달했다. 조각칼로 파내는 목판화는 단색과 다색이 있다. 일본의 다색 목판화인 풍속화는 고흐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와 서양 미술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임성, 7명의예언자들-자카리아, 에칭, 90x120cm, 2009.

하임성, 7명의예언자들-자카리아, 에칭, 90x120cm, 2009.

동판화는 구리판에 날카로운 쇠로 홈을 새겨 물감을 넣어 찍는다. 이를 크게 나누면 산성 용액으로 부식시키는 에칭과 에칭의 변형인 애쿼틴트 기법, 부식시키지 않는 드라이포인트·메조틴트·인그래이빙 기법이 있다. 인그래빙은 지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기법으로, 반지·볼펜·립스틱 등 금속에 글자나 숫자를 새겨넣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동판화는 금속세공사의 기법을 차용해 발달했으며 15세기에 하나의 예술 장르가 됐다.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 판화, 1962년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 판화, 1962년

실크 스크린(silk screen) 판화는 판면에 뚫린 구멍을 통해 잉크를 밀어 넣어 찍는 방식으로 좌우가 바뀌지 않는 기법이다. 이는 6세기 중국과 일본에서 발달했으며, 마르코 폴로에 의해 1930년 대에 미국에 전파된다. 미국의 앤디 워홀은 이 기법으로 여러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예술성과 상업성의 결합으로 세상의 관심을 모았다.

유의랑, Rest, Lithograph, Paper 100X69cm, Image 83x 57cm, Edition 50/150, 1998.

유의랑, Rest, Lithograph, Paper 100X69cm, Image 83x 57cm, Edition 50/150, 1998.

석판화(lithograph)는 1798년 독일의 제네펠더가 발명했다. 석판 위에 유성 잉크나 크레용, 붓으로 도안을 그린 후 물과 기름의 반발력을 이용해 제작한다.

김점선, 빨간 말, 실크스크린 판화, 2004년 [사진 송민]

김점선, 빨간 말, 실크스크린 판화, 2004년 [사진 송민]

작품 소개 예

김점선, 빨간 말, 실크스크린(Silkscreen), 2004년
종이(Paper): 53.5 x 71.6cm , 그림(Image): 39.5 x 64cm.
에디션(Edition)120

캔버스와 달리 판화는 종이(paper) 크기와 그림(image) 크기로 규격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캔버스처럼 정해진 것은 없다. 미술시장에서 판매하는 판화작품 크기는 판화전용 전지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정해지나, 대체로 캔버스 10호·20호·30호에 가까운 작품이 많이 보인다.

판화는 다색 판화의 경우 필요한 색 하나당 판 하나를 준비하는데 첫판은 1도, 둘째 판은 2도라고 한다. 작품에 10가지 색이 있다면 10도 작품이다.

판화를 모든 작가가 만들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판화는 작가가 직접 창작하거나 작가가 자신의 원화를 판화작가에게 의뢰해 만든다. 모두 판화작가가 만들기에 순수 판화에 속하며, 판화작품 하나하나는 원작이란 의미로 오리지널(original) 판화라 불린다.

인쇄 기술의 발달로 미술 시장에 판매되는 판화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판화는 미술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상업적으로 흘러 질적 향상이 저해된다는 지적도 받는다. 판화가 한 장르로 존재하려면 예술성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판화 아래 ‘1/50’은 50개 판화작품 중 첫 번째라는 뜻 

어떤 관람객이 판화 밑에 연필로 쓴 ‘1/50’이 무엇인지 잘 몰라 소장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1/50이라는 숫자표기는 판화 작품을 50개 찍었는데 그중 첫 번째 작품이란 뜻이다.

판화작가의 작품이나 원화를 판화작가에게 제작 의뢰한 경우 원화 작가가 판화 아래에 연필로 자신의 작품임을 나타내는 숫자표기(numbering)와 서명을 함께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작품 제목을 적기도 한다. 이는 그 작품이 복제품이 아니라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장치이다.

에디션(edition)이란 우리말로는 판(版)이다. 미술에서는 ‘한정된 수로 제작하는 작품’을 뜻하며, 작가가 결정한다. 에디션 수량은 작가가 거장으로 성장하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희소가치는 에디션 숫자와 관련이 있다.

판화작가들은  판화원판은 에디션을 제작한 후 폐기하므로 추가로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가끔 숫자표기 앞에 'A.P.'라는 글자도 보인다. 이는 작가 소장본을 의미하는 ‘Artist Proof’의 약자로 대체로 전체 에디션(판)의 10% 정도 찍는다. 그 매수는 에디션엔 포함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A.P.가 아닌 에디션을 선호한다. 그러나 작가 사후에는 별 차이가 없다.

판화 작품의 소장가치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는다. 소장가치는 감상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인 부분이 크다고 본다. 전시장에서 받은 감동을 가정에서도 누리는 삶의 여유를 이 봄날에 만끽해보자.

송민 갤러리32 대표 gallery32@naver.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