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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 사로잡은 '행복 동화' 그리는 이영철 화백

중앙일보

입력

봄-개나리 연인 194cm x 112cm,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 이영철 화백]

봄-개나리 연인 194cm x 112cm, Acrylic on canvas. 2017. [사진 이영철 화백]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날엔 이렇게 좋은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1978년 가수 정훈희의 곡 '꽃밭에서' 중에-

이영철 화백의 전시회에서 혜민스님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이영철 화백]

이영철 화백의 전시회에서 혜민스님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이영철 화백]

2014년 1월 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갤러리 고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2)의 저자 혜민스님이 가수 정훈희의 '꽃밭에서'(1978)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곡은 가수 조관우, 소프라노 조수미 등이 리메이크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리자 관람객들이 다가갔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이가 혜민스님이라는 걸 알아차린 이들은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영철 화백(왼쪽 위)과 혜민스님, 연주자들. [사진 이영철 화백]

이영철 화백(왼쪽 위)과 혜민스님, 연주자들. [사진 이영철 화백]

이날은 이영철(59) 화백의 서울 개인전 오프닝 날이었다. 혜민스님은 갤러리 문 앞, 1층, 2층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팝송 'Perhaps Love' 등 3곡을 불렀다.

이 화백은 "당시 혜민스님이 미국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로 재직하던 때였는데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잠깐 들러 특별한 도움을 주셨다"며 "아직도 노랫소리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 지음.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스님 지음.

이영철 화백은 혜민스님의 저서『멈추면, 비로소 행복한 것들』,『혜민 스님의 따뜻한 응원』 에 표지와 책 내 그림을 그린 화가다. 주로 '행복', '꽃', '사랑'을 주제로 아크릴화를 그린다. 뛰어난 감수성과 순수한 동심이 만난 이 화백의 그림을 두고 사람들은 "한 편의 동화같다"고 한다.

지난 16일 대구 대백프라자에서 전시회 준비 중에 만난 이영철 화백. 백경서 기자

지난 16일 대구 대백프라자에서 전시회 준비 중에 만난 이영철 화백. 백경서 기자

혜민스님은 "마음 속에 사랑이 있으면, 지구에 나와 내가 사랑하는 대상만이 오직 존재하는 듯 느껴진다. 이영철 화백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화가의 내면에 담겨진 사랑이 그림을 통해 환하게 전달됐다"고 했다.

"2012년 어머니 떠난 뒤 혜민스님 찾아왔죠."

이 화백과 혜민스님의 만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5월 이 화백의 어머니가 중풍으로 돌아가셨다. 이 화백은 16년간 병수발을 들었지만 더 살피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괴로워했다. 그는 어느날 117x 91㎝짜리 큰 캔버스에 들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영철 화백과 그의 어머니. [사진 이영철 화백]

이영철 화백과 그의 어머니. [사진 이영철 화백]

그는 "나에게 내리는 일종의 벌이었다. 꽃 한 송이를 그리는데 10번 이상의 붓칠을 해야 해서다. 처음 500송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렸다. 3분의 1쯤 그리니 몸이 아프더라. 수천 송이를 그리면서 잡념이 없어지고 감정이 해소됐다"고 했다.

꿈꾸는 연인 2017 22cm x 33.2cm, Acrylic on canvas. [사진 이영철 화백]

꿈꾸는 연인 2017 22cm x 33.2cm, Acrylic on canvas. [사진 이영철 화백]

이 화백은 들꽃·달·사랑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했다. 같은 해 8월 혜민스님과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멈추면, 비로소 행복한 것들』개정판을 내는데 작품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책 내에 이 화백의 작품 22점이 실렸다. 개정판은 200만부 이상 팔렸다. 영국·미국판 등에도 이 화백의 작품 22점이 그대로 실리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혜민스님은 돈이 없어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지 못하는 이 화백을 위해 그의 작품을 먼저 사주며 전시회를 열도록 도왔다. 그렇게 둘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영철 화백의 젊은 시절. [사진 이영철 화백]

이영철 화백의 젊은 시절. [사진 이영철 화백]

이 화백은 "사실 처음부터 행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건 아니다. 어머니의 중풍 이후 달라진 그림을 혜민스님이 좋게 봐준 것"이라고 말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병실에서 그림 그리며 간호사·환자에 선물도

이 화백은 경북 김천시 봉산면 출신이다. 중학교 3학년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시골이었다. 낮에는 들판에서 뛰어놀고 밤이면 별이 하늘을 수놓는 풍경을 보며 잠들었다. 그가 처음 본 그림이 6살 때 초등학생이던 형이 집에 가져온 교과서 속 삽화였다. 이 화백은 "그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다만 아버지가 경제적인 문제로 반대해 성인이 되고 안동대 미술학과 입학 전까지는 나와 살았다"고 회상했다.

사랑소풍- 나 잡아보이소! 140.5cm x 75.2cm, acrylic on canvas. 2018. [사진 이영철 화백]

사랑소풍- 나 잡아보이소! 140.5cm x 75.2cm, acrylic on canvas. 2018. [사진 이영철 화백]

미술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23살에 돌아가셨다. 이 화백은 안동대학교 미술학과 입학 면접을 본 뒤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슬픔도 잠시, 6년 뒤 형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37살이던 96년 어머니까지 중풍으로 쓰러졌다. 이 화백은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벽이 허전한 것 같아 부처님을 그려서 붙였는데 흐릿했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영철 화백이 그린 부처님. '해탈의 미소' 40.9cm x 31.8cm 2011년 작품. [사진 이영철 화백]

이영철 화백이 그린 부처님. '해탈의 미소' 40.9cm x 31.8cm 2011년 작품. [사진 이영철 화백]

이 화백은 병실에 물감 등을 가져와 어머니를 위한 '행복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간호사·환자에게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리면서 사실상 작품활동을 제대로 못 했다"며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고 퇴원하기까지 43일 동안 연필·크레파스·물감 등을 이용해 2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더라"고 회상했다. 이 화백은 그때부터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그리고자 다짐했다. 그는 "지금도 그저 이 그림을 보고 누군가 사랑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영철 화백이 그린 대구 김광석길 벽화. [사진 이영철 화백]

이영철 화백이 그린 대구 김광석길 벽화. [사진 이영철 화백]

이 화백은 혜민스님에게 배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경기 시흥경찰서 민원실 앞에는 그가 그린 벽화가 있다. 언짢은 일로 민원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다. 보육원·특수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함께 벽화를 그린다. 무료 강연도 꾸준히 한다. 그는 "나누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앞으로 더 나누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17~29일 대구 대백프라자서 '어른 아이를 위한 행복 동화' 전시회 

이영철 화백의 명함에 담긴 본인의 어린시절 모습. [사진 이영철 화백]

이영철 화백의 명함에 담긴 본인의 어린시절 모습. [사진 이영철 화백]

대구 중구 대백프라자 12층에서 오는 29일까지 이 화백의 초대전이 열린다. 벌써 22번째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 아이가 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를 '어른 아이를 위한 행복 동화'라고 이름 붙였죠. 우리 마음속에 넣어둔 감정들을 꺼내보자 했어요.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꺼내 볼 수는 있잖아요." 이영철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마음 풍경화'라 말한다. 이날 기자에게 내민 명함에도 그가 상상한 어린 화가 이영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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