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중앙시평]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중앙선데이

입력 2018.04.21 00:09

업데이트 2018.04.21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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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35면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요즘 메가톤급 뉴스들이 하도 많아 헌법 개정은 다소 밀린 이슈처럼 되어 있지만, 대통령이 발의한 만큼 조만간 다시 뜨거운 논쟁이 붙을 것이다. 잘들 하시겠지만 나에게도 오래전부터 마음 쓰이는 헌법 조문이 하나 있다. 1948년 제헌 헌법이 제정된 이래 얼마 전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에 이르기까지 130개 내외의 조문들 가운데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고, 그래서 어떤 변화도 없는 이 문구.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부속도서라고 했다.

남북간 화해로 한반도에 봄이 피면
남한은 유라시아 대륙에 이어지고
연결된 철도로 유럽 건너온 이들의
최종적 목적지는 4000개 우리 섬들
대륙열차를 타고 그 섬 가고 싶은 게
유럽인 버킷리스트 될 날 머지않아

한반도에 딸려 있는 섬이라는 말이니 자주적인 땅이 아니라는 뜻이어서 섬은 육지에 종속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내 과민일까? 섬에 사는 이들이 육지에 사는 이들을 ‘육지것’ ‘뭍것’이라는 원망에 찬 단어로 지칭하는 게 섬은 우리 영토에서 은연중 하위존재로 취급한 까닭이며,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이른 지금에도 국토의 봉건적 주종관계를 헌법에서조차 의심 없이 명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섬의 개수는 행정안전부가 펴낸 자료에 따르면 무려 3358개이다.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지정한 섬들을 모두 합산하면 42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인 필리핀·일본·그리스에 비해서 숫자 면에서도 그리 떨어지지 않지만 그 풍광의 아름다움은 어느 곳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한해에도 수십만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에게해의 키클라데스 군도, 불과 220개로 이루어진 이곳은 섬 사이 거리도 멀고 섬 자체의 모양이나 경치도 그리 탐할 게 없다. 버킷리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베트남 하롱베이는 3000개의 섬이 집합하여 이루는 풍경으로 탄성을 자아내지만 섬의 크기가 작고 그 사이가 좁아서 마치 섬의 계곡을 지나는 듯하며 더구나 가파른 지형으로 거주할 수 없는 섬들이 대부분이라 한갓 풍경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남·서해안에 펼쳐있는 우리의 섬들은 그 크기가 참으로 다양하고 섬 사이의 거리들도 제가끔이라 이들이 모였다가 헤어지며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은 백태며 만상이다. 뿐만 아니라 섬 모양도 각각 다르지만 삶의 방식과 물산도 다 달라 모두 고유하며, 더러는 유배와 추방, 음모와 혁명의 역사도 있어 그 서사적 풍경 또한 특별하다. 배를 타고 산수화 같은 그 사이들을 주유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모두들 시인이 되고 로맨티스트가 되며 성찰자가 되는 일이다. 특히 황혼에 물든 물결에 검은 추상으로 겹겹이 펼쳐지는 풍광 속에 들어가면, 우리가 사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절로 내뱉게 된다.

이런 아름다움이 세계에 왜 아직도 소개가 안 되어 있을까? 필시 권세를 잡은 육지것들이 그 아름다움에 대해 무식하거나 혹은 부속도서인 만큼 변방의 영토로 간주하는 까닭이다. 그래서인가 섬들을 가능하면 연륙교로 연결해서 육지로 편입시키고자 부단히도 노력해왔다. 섬이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는 순간 그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섬이란 단어 그대로 해석해서 피안의 세계 아닌가? 물 건너 다른 세상. 그래서 육지의 일상에 지쳐 있을 때,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할 때 우리와 다르게 사는 낯선 곳으로 여행하여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갖는다.

예컨대 제주도. 육지와 다른 풍토와 음식 그리고 서사와 풍경이 지독히 매혹적인 이 섬에 가서 행여나 일기가 나빠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그래서 누구에게도 양해가 가능한 그 천재지변의 기회를 나는 만끽한다. 어쩌면 은연중 그런 행운을 기대하며 그곳에 가는지도 모른다. 그런 서로 다른 세계가 무려 4000개가 모여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뜻밖의 기회들을 아예 없애기 위해 터널을 뚫거나 다리를 놓아 육지와 연결하자는 발상은 섬의 정체성을 사라지게 할 것은 물론 기회도 환상도 소멸시키는 일일 뿐이다.

보석 같은 섬들을 부속 영토로 보는 까닭은 아마도 지도를 보는 방식이 늘 북쪽을 위에 두어 섬들의 위치가 아래쪽이 된 이유일 수도 있다. 지도를 그렇게만 보란 법이 없으니 한번 뒤집어 보시라. 그러면 수 천개의 섬들이 마치 꽃봉오리 만개한 것처럼 반도의 땅 위에 통통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형태도 위치도 다 다른 이 섬들은 모두가 모두에게 평등하며 자주적이다. 그러니 ‘여러 도서와 그 부속 육지’까지는 아니어도 ‘한반도와 여러 도서’가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에 합당한 영토 규정 아닌가?

마침 남북 간 화해로 한반도에 봄이 활짝 피게 되면 남한은 이제 섬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 이어질 것이며, 행여 철도가 연결되면 유럽에서 대륙을 건너온 이들의 최종적 목적지가 4000개 가까운 우리의 섬들이 될 게다. 유럽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열차를 타고 그 섬에 가고 싶은 게 그들의 버킷리스트가 될 날이 머지않다.

한마디 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해저터널로 연결하자는 모임이 꽤 오래전부터 부산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일본이 대륙 진출을 명분으로 한반도를 침략한 게 왜란의 역사인데, 터널을 뚫어주어 우리 땅을 간이역으로 스스로 격하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심산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 불가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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