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증여 100조 시대…자산가 10명 중 8명은 부동산으로 물려준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8.04.21 00:02

업데이트 2018.04.2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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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14면

#1.“이달부터 다주택자 규제가 시행되면서 기존 주택 문의는 뚝 끊겼어요. 그래도 강남권 아파트 신규 분양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많아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10년 넘게 공인중개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의 얘기다. 인근엔 서초구 우성1차아파트, 강남구 상아2차아파트 등 재건축 아파트 1300여 가구가 연말까지 나올 예정이다. 김 사장은 “대부분 분양가가 9억원이 넘기 때문에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주로 현금이 많은 부자들이 자녀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청약 정보를 챙기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로또 아파트’ 열풍을 일으킨 디에치자이 개포는 가장 작은 전용 63㎡ 분양가가 9억원을 넘었다.

세대간 부의 이동
베이비부머들 자산 이전 본격화
아들·손자에 강남 아파트 물려줘

아파트 증여 늘어
다주택자 양도세 최대 60% 중과
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낮아

체계적 절세 전략
빚도 함께 물려주는 부담부증여
손자에게 주는 세대생략증여도

#2. 지난해 30년 가까이 운영한 공장을 정리한 임모(78)사장은 고민이 많다. 8년 전에 세 아들 중 첫째와 막내에겐 수도권 아파트를 한 채씩 증여했다. 사업 문제로 틀어졌던 둘째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뜨면 형제간에 상속 분쟁이 날 가능성이 컸다. 그는 세무사와 상의 끝에 둘째 아들의 자녀에게 12억원 상당의 상가를 물려줬다. 임 사장은 “나이가 많다보니 자녀를 거치지 않고 손자에게 증여하는 게 절세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미국도 향후 40년간 4경~6경원 규모

상속·증여를 통한 부(富)의 이동이 늘고 있다. 지난해 상속·증여세 규모가 1년 전보다 27% 증가한 6조8000억원에 이른다. 역대 최대다.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0년 상속을 통한 세대간 자산이전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연간 60조원의 재산이 상속·증여(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되는 것을 감안하면 급격히 늘어나는 셈이다. 이경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재산을 물려준 자산가 중 60세 이상의 비중이 90% 이상”이라며 “본격적으로 세대간 자산 이전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대간 부의 이동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도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미 금융회사 웰스파고 등에 따르면 지금부터 2050~2060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적게는 41조 달러(약 4경3800조원)에서 많게는 59조 달러(약 6경3000조원)가 상속이나 증여 방식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월가 사람들이 말하는 ‘부의 대이동(Great Wealth Transfer)’이다. 물려주는 쪽은 2차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다. 물려받는 쪽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Y세대(밀레니얼스)들이다. 베이비부머들은 2차대전 이후 고도성장기인 황금기(1950~73년)에 빠르게 늘어난 임금소득을 활용해 장만한 집과 자산경제 시대(1980년 이후) 보유한 증권을 갖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부동산 비중이 증권보다 크다”며 “상속세 등을 가장 적게 내며 집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게 베이비부머의 주요 현안”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산가들의 재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자산가 상당수는 자산이전 방식으로 부동산을 선호하는 까닭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한국 부자들은 부동산 보유 비중이 높고 팔 경우 양도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부동산 상속이나 증여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자산가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상속·증여 수단으로 부동산을 선호한다는 응답률이 84%에 달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상가·오피스텔 증여하면 세금 낮아

한국의 상속·증여세는 5단계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1억원 이하의 상속은 과세표준의 10%를 징수하지만 30억원을 넘어서면 세율이 50%에 달한다.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높다. 체계적인 절세전략을 짜야만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다. 단 상속재산이 10억원이 넘을 때 얘기다. 10억원 미만이라면 일괄공제나 배우자상속공제 등 다양한 공제제도를 활용하면 상속세 부담이 거의 없다.

상가나 단독주택 같은 수익형부동산 증여는 전통적인 절세방안이다. 부동산은 시가를 원칙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상가나 오피스텔은 비슷한 매물을 찾기 어려워 거래가격의 70~80% 수준인 공시지가를 쓰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낮아진다. 김근호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장은 “부자들은 자녀에게 수익형부동산을 증여할 때는 입지보다 임대수익률을 따진다”고 말했다.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임대료는 자녀들 노후 자금에 유용할 뿐 아니라 상속세 재원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상속세율

OECD 상속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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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빚도 함께 물려주는 부담부증여를 하면 세금을 더 낮출 수 있다. 보통 부모가 10억짜리 상가를 사면서 빌린 4억원의 대출금까지 자녀에게 증여한다. 증여세는 대출금을 뺀 나머지 6억원에만 매긴다. 또 자녀는 증여받은 상가에서 임대료를 받아 대출금액을 갚으면 된다.
정부 규제나 환경 변화가 부의 이동 방식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 증여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수익형부동산과 달리 아파트는 실거래 사례가 많아 시세를 그대로 적용한다. 특히 2~3년새 가격이 급등한 서울 아파트는 증여하기 좋은 부동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부자들이 아파트 증여에 나선 까닭은 이번달부터 시행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의 영향이 크다. 원종훈 KB국민은행 세무사는 “지난해 말부터 아파트 증여를 상담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면서 3주택자는 양도세 중과(최대 60%)보다 증여세 최고세율(50%)이 낮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주면 40% 절세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파트 증여가 더 늘 것이라고 예상한다. 앞으로 다주택자가 양도소득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임대사업 등록 뿐이다. 하지만 다주택자의 아파트 공시가격이 수도권 기준 6억원(지방 3억원)을 넘으면 임대사업 등록을 하더라도 양도세 중과 대상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7억원을 넘어섰다. 김근호 센터장은 “강남권에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3채를 보유한 고객도 임대사업 등록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증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인구고령화도 상속·증여 전략에 영향을 준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선 80대 이상 노인이 60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노노(老老)상속이 늘고 있다. 한국에선 할아버지가 나이 든 자녀를 건너뛰고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세대생략증여에 관심이 많다. 세대를 건너뛴 증여가 절세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세무법인 서광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현금 5억원을 손자에게 물려주면 할증과세(30%)가 돼도 부모를 거치는 것보다 40% 가까이 절세효과가 있다. 양경섭 서광 세무사는 “더욱이 손자는 직접 상속인이 아니기 때문에 상속 개시일부터 5년 내에 증여한 재산만 상속재산에 합산돼 증여 부담도 낮다”고 강조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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