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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는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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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책과 사람 (1)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의 저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인터뷰

‘세종=성군’은 양반이 만든 ‘기억’ #세종, 인구 40% 노비로 만든 법 만들어 #세종이 없었으면 조선왕조는 없었다 #그만큼 세종의 업적이 중요하다 #16세기 이후 조선은 중국의 내지 #사대주의 성공 대가 18, 19세기에 치렀다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직시해야 #우리 현실을 알 수 있다 #실증사학 한국에 잘못 알려져 #“제가 일제 미화할 아무런 이유 없다” #개인 대신 국가, 민족, 사회 강조하면 #그 결과는 전체주의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에는 조선‘왕조’ 인물인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서 있다. 상징성이 높은 광화문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인물의 동상은 없다. 대한민국 역사를 만든 걸출한 인물들이 많지만, 아직 국민적 합의가 없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현 이승만학당 교장)가 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는 세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는 책이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지음. 백년동안.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지음. 백년동안.


- 독자 반응은?

“예상보다 반응이 좋다. 주요 인터넷 도서 사이트에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특히 역사, 문화 분야에서는 상위에 랭크돼 있어서 책 쓴 보람을 느낀다. 또 독자들의 서평도 대체로 호의적이고 상당히 진지한 서평들이 많아 기쁘다.”

- 긍정적, 부정적 독후감은?  
“20~30% 부정적인 반응은 ‘저자가 자유주의적 우파 색깔이 강하다. 책 내용도 그렇다’는 등 주로 정치적인 것들이다. 책 내용 자체가 아니라 저자의 정치적 성향을 두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책 내용에 준해 ‘조선시대 실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인간 예종(隸從)이 심각했던 사회다’ ‘인간 예종의 심화, 제도화에 세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처음 알게 됐다’는 반응도 있다. 지적으로 성찰하고 반추하는 내용이 많아서, 찬반을 떠나 상당히 진지하다고 느꼈다.”

- 책에 세종이 노비제, 기생 제도, 사대주의를 강화했다고 나온다. 일반 독자들에게 충격적일 수도 있다. 특히 노비제 문제에 관해 설명해 달라.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전체 인구 30~40%가 노비였다. 15세기 초에는 10% 미만이었다. 늘어난 이유는 ‘부모 한쪽이 노비면 자식은 무조건 노비다’라는 법 때문이다. 그런 법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세종이다. ‘비(婢)가 양인 남자와 출산한 자식은 노비다’라는 법을 세종이 만들었다.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양인-노비 결혼이 사실상 공인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처벌을 했는데 양천교혼(良賤交婚)을 사실상 방임했다. 노비 인구가 증식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이후 양천교혼이 일반화돼 인구의 30~40%까지 노비가 증가했다.”

- 양인-노비 결혼이 가능하게 한 것은, 신분이 달라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식이 노비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노예제를 경영한 대부분 나라에서도 노예-자유인 결혼이나 성적 관계는 통제할 수 없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데 국가가 어떻게 하겠는가? 자식은 대체로 자유인이 됐다. 하지만 조선의 가혹한 신분 세습법은 자유인-노비 혼인에서 태어난 자식을 전부 노비로 삼았다. 그 원인이 뭘까? 저는 그 문화적, 정신사적, 종교적 배경에 관심이 있다. 우리 신분 감각에는 ‘피의 청탁(淸濁)’ 관념이 대단히 중요했다. 어디서 기인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다. 노비의 ‘더러운’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노비라는, 청탁 감각에 기초한 인간의 차별 의식, 종성(種姓) 의식이 특별히 강했다.”

- ‘피의 청탁이 있다’는 세종이나 신하들의 발언은 문헌적 근거가 있는가.  
“제가 몇 개를 소개했다. 사실 문헌으로는 남기 힘든 문화의 문제, 종교의 문제다. 아주 오래된 무속적인 전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라서 밝히기가 참 쉽지 않다. 유독 한국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자유인과 노비의 소생을 노비로 삼았다는 문제는, 연구자라면 반드시 해명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저는 답을 혈통에서 찾았다. 몇 가지 사료들을 책에서 소개했다.”

- 유교 경전 자체에는 피의 청탁이나 신분차별이 없는 것 아닌가. 공자님은 인(仁)을 강조했다.  
“개신유교인 송나라 주자의 성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노력으로 도를 성취할 수 있다. 스스로 인격을 완성할 수 있는 품성을 하늘로부터 다 부여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송나라 주자학 이래 중국에서는 제도적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신분제가 없어진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주자학은 종성 감각과 결합해 가혹한 양반-상민 차별과 노비 신분제를 만들어냈다. 바탕의 문제다. 바탕에 뭐가 있느냐는 수수께끼다. 연구가 불충분하다.”

- 중세 유럽 성주들은 마을 처녀들에 대한 초야권(初夜權)을 가졌다고 한다. 중세를 지배한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관습으로 …
“그렇다. 아주 오래된 게르만 사회라든가 … 어떤 기원을 갖는 전통인데…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제를 스스로 해체하면서 인간 자유의 사상이 생겨난다. 한국에서는 조선 500년 동안 자유나 개인이라는 정치철학의 범주가 생겨나지 않았다. 저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 문제를 냉혹하게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이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제가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그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

자유라는 것도 자유에 상응하는 공간, 공간성이 전제된 개념이다. 하늘이 달라져야 보이는, 들리는 개념이다. 서양의 경우 종교개혁 이후 하늘이 달라졌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에게 하늘은 무엇일까? 그 하늘이 변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기존 체제를 부정하는 새로운 철학의 요소가 나타나기 힘들다.

그래서 제가 세종의 업적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는 천자(天子)를 정점으로 하는 도덕국가 체제를 만들어냈다. 부동의 질서다. 조선왕조를 부정하는 어떠한 생각도 500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조선왕조를 지탱하는 위계적 신분제 자체를 부정하는 어떠한 철학적 요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세종이 업적을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평가한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붕괴를 내다봤지만, 동시에 자본주의가 인류사에 기여한 것으로 봤다.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는 사회주의로 갈 수 없다’는 식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소명이나 성과를 인정해주는 입장이었다. 마찬가지로 세종의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한다는 뜻인가?  
“세종이 없었으면 조선왕조는 없었다. 그만큼 세종의 업적은 중요하다. 세종의 역할은 크다. 저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점을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 세종이 없었다면, 조선왕조가 일종의 ‘고려왕조 시즌 2’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 명나라의 주변국으로서 오래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려가 오래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중원(中原)이 굉장히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고려가 존속한 시대의 절반은 요와 금, 원이 지배했다. 같은 북방 이민족이지 않은가? 송나라가 중국을 지배한 역사는 불과 백몇 년밖에 안 된다. 같은 북방민족이 중국을 지배했기 때문에 고려가 병존할 수 있었지만, 고려와 같은 군사국가적 전통을 조선이 유지했다면 500년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거는 부정할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중국과 맞섰다가는 조선은 장기 지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 책에 보면 세종이 중국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한 사대주의를 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명나라 입장에서는 조선이 ‘참 기특한 나라’이기 때문에 출병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세종의 사대주의는 굉장히 현명한, 현실주의적인 정책이다.  
“그렇다. 세종은 자국 내에서 군사적 의지를 발거(拔去)∙소거함으로써 왕조가 장기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임진왜란 이후 중국, 일본은 권력이 교체됐다. 유독 조선왕조만 살아남은 이유 역시, 사대주의가 성공한 덕분인가.  
“모든 성공은 상응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모든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역사에 있어서는, 모든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다. 성공했기 때문에 큰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비용을 지불해 구축된 체제는 나름의 기득권을 가지고 명분을 쌓아서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섰을 때 한반도에서 그에 상응하는 왕조가 들어섰다. 조선왕조는 중국과 대항하지 않고 사대주의 정책으로 중국과 친교정책을 취했다. 16세기가 되면 중국의 일부로 변해버린다. 중국 스스로 조선을 자기의 내지라고 생각하게 되고 조선 자신도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는 18, 19세기 역사에서 실패의 값을 치른다.”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런 중국의 인식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가.  
“그렇다. 저는 부합한다고 본다.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직시할 때 우리 현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보고 ‘당신들은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을 게 아니다. 조선왕조가 그런 국제질서 속에서 장기 지속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 거냐. 옛날 그랬다고 지금도 그러냐? 그런 거 아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세계를 선도할 훌륭한 문명국가라면, 저도 얼마든지 중국과의 친선, 친교 관계를 중시하겠지만, 제가 보기에 중국은 세계를 리드할만한 그런 문화나 문명을 지닌, 소위 말해서 ‘자유가 있는 나라’가 아직 아니다. 자유가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저는 발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조선왕조와 중국 간의 관계와 같은 관계를 우리 한국인들이 복구하게 되면 또는 맞이하게 되면 그 자체 또 다른 큰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비판한다.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 위계서열적인 동북아 국제질서에서 사대는 상징적이었고 조선왕조는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 독립국이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현대적인 개념으로 조선이 중국의 식민지나 속국이나 … 이런 식의 현대적인 패러다임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전근대 패러다임에서는 속국이나 식민지 같은 개념이 없었다. 천자가 세계의 중심이다. 천자의 덕화((德化)가 미치는 범위가 중국이다. 천자의 덕화가 미치지 않는 바깥 세계는 야만이다. 그러니까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느슨한 어떤 경계가 있었을 뿐이다. 중국이 국경선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천자가 직접 군현을 설치하고 수령을 파견하는 곳이 소위 중원(中原)이라면, 천자의 덕화를 입는 가운데 천자로부터 책봉 받은 현지의 왕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또 주변에 약 12개가 있었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12개 조공국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한다. 조선도 그중 하나다. 이런 위계제적 질서가 장기간 지속하다 보니 조선 스스로가 중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나 문화를 조선 스스로 수용한다. 벌써 16세기부터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16, 17, 18, 19세기까지 지속해서 그런 문화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두고 보면, 조선왕조 장기 지속의 둘도 없는 비밀이고 원리였다. 그런데 그 체제를 만들어낸 사람이 세종이다.”

-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 보면, 신하들이 기우제를 지내자고 하니까 세종이 거부한다. 자신이 제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렇다. 아버지 때만 하더라도 비록 힘이 약한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에 사대 정책을 취했지만, 군사적 충돌까지도 감내하는 어떤 의지가 보이는데, 세종 때 오면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다. 세종 스스로 제후로서 자신을 내면화한다. 세종은 그런 의미해서 대단한, 수미 일관된 국가 만들기, 나라 만들기 정책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하늘에 대한 제사는 제후가 드릴 수 없다는 것은 세종의 진심이었다. 오히려 제후가 그런 제사를 지내면 하늘이 노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1000년을 이어 온 제사를 폐지한다. 세종 때 우리 한국사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1000년을 이어온 천제를 폐지한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어떤 굴곡∙단절이 그때 발생했다.”

- 이 책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 중 하나는, 세종이 노비에게도 출산 휴가 100일을 준 ‘진보적인 군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노비제를 사실상 창설한 사람이니까. 노비들에게 잘해줘야 한다. 근대적인 개명군주라면 노비제를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성군이다. 그러나 이 분은 노비제를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노비나 일반 양민, 상한(常漢)들에 형벌에서는 굉장히 엄격한 분이었다. 세종의 형정((刑政), 형벌을 내린 정치를 보면 그 이전의 왕들에 비해 대단히 엄격했다. 신분적 원리가 엄격했으니, 엄격한 만큼 또 베풀어야 한다. 출산 휴가를 주면 결과적으로 양반들에게 득이 된다.”

- 한글 창제의 목적에 대해 논란이 있다. 당시 중국어를 잘 표기하고 배우기 위해 발음 기호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서문에 보면 어린 백성이 의사소통을 못 하니까 …
“중국과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 백성이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니다. 정확히 읽어보면, 어린 백성들이 중국과 말이 달라서 뜻을 펴지 못한다. 이렇게 돼 있다. 그러니까 중국인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 그렇게 돼 있다.”

- 어린 백성이라는 것은 조선의 민중이 아니라 ‘어린 우리 조선사람들’이 되는가?  
“왕의 통치를 받는 대부(大夫), 사(士) 계급을 말한다. 문자를 사용해 중국과 외교 관계를 갖거나 시문을 짓거나 하는 사람들이 중국과 말이 달라서, 음이 달라서 뜻이 안 통한다는 뜻이다. 노비까지 포함하는 전 민중적인 그런 의미의 백성은 아니라고 본다. 정광 교수의 학설에 따르면, 훈민정음 자체가 문자로 스스로 발전한다. 그게 언문(諺文)인데… 이 책을 쓰기 위해 《춘향전》 《흥부전》을 읽어봤는데 김기자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해설본 없이는 읽을 수가 없다. 《춘향전》의 한 페이지도 읽을 수 없다. 왜냐면 전체가 한문이기 때문이다. 한문을 음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현대인은 《춘향전》 《흥부전》을 읽을 수가 없다. 훈민정음이 창제됐지만, 서민 문화를 창출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는 말이다. 제가 고문사학회 회장을 해서 아는데, 순 한글 고문서의 독해가 가장 어렵다. 한문을 음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인의 글자로 바뀌는 것은 주시경 선생 이후 20세기의 역사다. 훈민정음의 역사는 500년 동안 다양한 굴곡을 겪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이 점점 거리가 생긴 중국의 한자 발음과 좁히거나 일치시키기 위해서였다면, 그런 노력을 해야 했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동국정운(東國正韻, 1448)》 편찬이 바로 그 노력이었다. 《동국정운》은 한자를 중국식으로 발음하기 위한, 토착 한자음을 고치기 위한 표준 발음 사전인데 … 그거 안 된다. 책만 만들었지 실패한다.”

- 실패 원인은 양반들의 반발 때문인가?  
“말을 바꿀 수는 없다. 말이라는 것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말을 빌자면, 가장 오래된 자생적 질서다. 수백 년 동안 인간 사회에서 진화해온 게 말이다. 누구의 기획도 노력도 아닌, 자생적 질서로서 언어가 존재한다. 언어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종은 불가능한 시도를 한 것이다.”

- 노비제 확립 이후 노비 수가 50%, 60%까지 올라갔다가 17, 18세기를 거치면서 줄기 시작하는데, 그 원인은 결국 경제적인 것인가?  
“기본적으로는 경제적인 것이다. 시장이 발달하고 인구가 많아지고 하니까… 노비를 거느리는 것은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든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린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 비용을 대체할 수 있는 임금 노동이라든가 계약 노동이라든가 또는 시장이 발달하게 되니까 자연히 노비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가 볼 때는 1690년경을 노비 가격이 10분이 1로 폭락한다. 그게 중간 전환기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책에서 조선의 성군을 뽑는다면 영조가 최고라고 했다.  

“저는 영조 50년 동안, 숙종∙영조 연간이 조선왕조의 절정기라고 생각한다. 그때 소위 말해서 오늘날 한국 근현대를 준비하는 중요한 문명 요소들이 성숙한다. 그중 하나가 노비제 해방이다. 그것을 영조라는 임금이 끌어냈다. 물론 그 전부터다. 아까 1690년이라고 했는데, 그 한 30년 전부터 현종∙숙종∙영정 연간에 변한다.”

- 결국에는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법률∙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었고 그때 딱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영조라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한 군왕이나 개인이 역사의 흐름을 이끌 수는 없다.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큰 역사의 흐름이 있다. 인구의 증대와 시장의 발달이 노비제 해체를 견인했다. 그것을 정책적∙정치적으로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 사람이 영조다.”

-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는 ‘환상의 나라’ 시리즈의 제1권이다. 전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국인이여 그대들은 누구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하고 있다. 세종이 성군이라는 것은 저도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우리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거나 학교에서 교육받거나 했던 그런 통념이다. 그 통념도 제가 역사가로서 알고 보니까 조선조 양반들이 만든 어떤 기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대한민국은 조선왕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조가 복구된 나라가 결코 아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 우리 한국인은 조선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조선왕조가 복구된 것으로 관념하고 세종을 국가의 상징으로 떠올리고 있다. 세종특별시를 만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제가 묻는 것이다. ‘한국인들이여 그대들은 조선인들인가?’ 앞으로 계속 12가지를 그런 식으로 그런 주제를 뽑아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 시리즈 제목이 ‘환상의 나라’다. 환상을 깨야 진정한 발전을 할 수 있고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또 통일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환상이 있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통일에 대한 환상을 가져야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또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어야 결혼을 한다. 환상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렇다.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 가운데 얼마가 객관적인 진리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인식론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인간은 자유다’라고 한다. 미국인들은 “우리는 신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고 화폐에 쓰고 있는데 환상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인 것을 자명한 진리로 믿는다’고 한다. 환상이다. 환상은 필요한 것이다. 증명될 수 없는 공리에 의해서 인간 사회가 통합되고 있다. 제가 그런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인간은 자유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다’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저는 그런 환상에 따라서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의 발전을 가로막는 다른 환상을 비판하고 있는지 모른다.”

실증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 [사진: 뉴욕 공립도서관]

실증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 [사진: 뉴욕 공립도서관]

[※랑케(Ranke, Leopold von)=“독일의 역사가(1795~1886). 엄밀한 사료 비판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 기술과 세계사적 관점의 종합적 파악을 통한 역사 연구로 근대 실증적 역사학을 수립하였다. 저서로 ≪세계사≫ 9권과 ≪로마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 등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 이번 ‘환상의 나라’ 시리즈도 그렇고 전작들도 그렇고 방법론은 실증사학인가.  
“사실 우리 한국에서는 실증사학이 좀 잘못 알려졌다.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을 보면 사학 방법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나온다. 사회경제 사학이 있고 마르크스주의 사학도 있고 민족주의 사학도 있고 실증사학도 있다. 실증사학을 여러 가지 사학과 대치되는, 상당히 보수적이거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좀 비판적이거나 … 마르크스주의에 비판적인 어떤 그런 것으로 개념으로 알려졌다.

저는 랑케의 실증사학이 생겨난 시대적 상황은 그런 게 아니라고 본다. 중세적 신화나 종교적 세계를 깨는 데 실증사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 아리안 종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독일인들이 갖고 온 그 종교의 세계를 깨는 데 랑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기서 근대화된 인간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실증사학이 근대가 성립하기 위한 기초라고 생각한다. 실증사학은 논리적 엄격성이 있기 때문에,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도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그런데 사실을 무시하고, 사실적 토대를 공유하지 않고, 서로 주장만 하게 된다면… 저는 그것은 근대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일반 독자들이 모든 분야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실증사학=친일사학’이라는 인식도 있다.  
“그거는 솔직히 우리 사회 지성 수준이 선진적인 사회에 도달해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이 한국 지배는 한국을 일본의 영토로 영구히 병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영구 병합한다는 것과 일시적으로 군사적으로 점령해서 약탈하는 것은 다르다. 제가 재작년에 쓴 《한국근대사》에 ‘좀도둑은 약탈하지만, 큰 도적은 동화를 시킨다’고 했다. 일본은 한국을 영구 병합하기 위해 큰 도적으로서 일본의 제도∙법∙관료제∙시장제도를 이식했다. 그것을 우리 한국인들이 인정 안 한다. 인정 안 하니까 대한민국은 조선왕조가 복구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 우리 한국인들이 아직도 빠져있는 어떤 전근대적 저지성(低知性)의 늪이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랫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고 오해도 받아왔지만 제가 마음이 흔들려 본 적은 없다.”

-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근대화는 일본강점기에 이뤄졌다’는 것과 ‘일본강점기가 참 좋았다 ’다는 것은 다르다.  
“‘좋았다’는 말은 누구도 한 적이 없다. 저도 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을 영구히 자기들의 영토로 동화시키기 위해서 동화정책을 펼쳤다. 그 사실을 지적했을 뿐인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사람들, 거북한 사람들이 비판하면서 ‘일제를 미화한다’고 한다. 제가 무엇 때문에 일제를 미화하겠는가. 또 저보고 서구중심주의라고 한다. 일본이 한국이 이식하려고 했던 제도 자체도 서구에서 이식돼 온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서구가 될 수 없다. 한국은 한국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초기의 문명들이 있을 것이다. 그 문명의 하나로서 서구에서 발현한 근대문명이 이식됐다는 것은, 우리가 한국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실증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가 서구중심주의가 될 수는 없다.”

- 21세기 서울에 사는 젊은이는 세종시대 젊은이보다는, 21세기 뉴욕 젊은이와 공유하는 게 더 많고 정체성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거 쉽지 않다. 젊은이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의 물질생활은 상당히 세계적인 보편적인 기준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정신 구조에서는, 제가 이 책에도 썼지만, 자유에 대해 교육받거나 공부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여러분은 자유인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아, 나는 자유인입니다’라고 대답하는 학생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점에서 미국 젊은이들하고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저는 젊은이들과 만날 때마다 ‘자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자유는 자유 나름의 시간, 공간, 역사성이 있다. 젊은이들과 자유에 관해 이야기해보면 놀랍게도 아무것도 모른다. 자유에 대해 들어본 적도, 교육받아본 적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는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적인 대혼란이 발생해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큰 혼돈 속에 있다.”

- 독재를 청산하려는 소위 진보∙좌파 정권이 세 번째 집권하고 있다. 자유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수십 년 된 적폐인가?  
“아니 우리 한국인들 자체가 그것을 잘 모른다.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문명사회의 전환’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자유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교육하고 했던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역대 대통령, 오늘날 많은 한국인에게 자유는 아직도 낯선 이념이다. 자유를 이기주의, 이기심, 기득권같이 속화(俗化)된 개념으로 이해할 뿐이다. 한 인간이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육받는 주체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지침이 아니다. 자유인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의식해보거나 행동하는 경험은 굉장히 약하다. 좌우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자유를 가르쳤나? 명색이 우파인데. 저는 한국 교과서에 자유라는 말이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지적했다.”

- 좌우를 떠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좌파나 우파가 각기 다른 이유로 자유, 자유주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모르는 거다. 읽어본 적도 교육받아본 적도 없다. 그런 가운데 자유주의는 이기주의를 달리 부르는 말이 됐다. 제가 한 번 충격 받은 적이 있다. 제가 전교조 교사 대표들과 토론회를 할 때 ‘인간은 그 본성이 이기적인 존재다’라고 했다. 《대한민국 이야기》라는 책에서도 그런 말을 썼다. 그랬더니 교사들이 화를 내면서 반발했다. ‘당신은 대학교수다. 대학교수가 어떻게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라고 얘기하느냐? 우리보고 어떻게 애들에게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가르치라는 말이냐?’라고 항의했다. 저는 그런 경험을 몇 번 했다. 비전교조 교사들과도 토론회에서도 그런 경우를 당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도덕감정론》에 나오는 근대인의 초보적인 명제다. 인간은 ‘self-love(자기애)’에 빠진 ‘selfish’한 존재로서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적 복리를 극대화하느냐…

어떤 환상일지 모르지만, 환상에 기초해서 근대 사회가 구축돼 있다. 그것을 우리 한국인들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국부론》을 읽은 사람이 한국 지식인 가운데 몇 명이나 될까? 저는 1%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시 문명 수준에 있어서, 집단적 수준의 변화나 속도가 느리고 장애가 많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왜냐면 자신의 이익이 침해되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절제되지 않는 욕심을 부리면 내 신체나 재산의 위해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self-love하는 사람, selfish한 사람이 현명하게도 공동의 법을 세운다고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그거다. 그래서 질서가 자생적으로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그러면 초∙중∙고 대학생을 가르칠 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인간은 이기적이다’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그래서 자유가 중요하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법적으로 성년이 되면 가급적 부모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가르치면, 그 애들은 모두가 훌륭한 자기의 인생을 위해, 자기 생애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동시에 철저하게 법을 지키고 이타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저는 자유 교육이 근대국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교육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한국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12년 교육 과정에서 자유는 없다. 자유를 가르치는 단 한 제목도 없고, 있다면 사회과 교과에서 프랑스 혁명에서 가르치거나, 서구에서 근대 사상이 생겨나는 그 대목에서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직접 한번 읽어보시라.

개인보다 사회나 국가를 앞세우면,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가기 마련이다. 개인과 사회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문제는 문명에 따라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가 아까 한국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서부유럽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개인과 사회 간에 어떤 균형을 성립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사회나 국가만 강조해왔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국가와 민족을 강조했다. 최근 교육을 보면 다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라고 하면서 ‘규칙을 치켜라’ ‘이웃에 봉사해라’ 등등… 그것을 인성 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개인’은 안 가르치고 있다. 저는 균형을 어느 수준에서 잡는 것을 앞으로 우리가 시도해야 할, 우리가 개척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실 말씀은?  
“저는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를 쓰면서 ‘하나밖에 없는 성군, 그나마 훌륭한 사람을 왜 비판하고자 하느냐’하는 비난이 나오리라고 충분히 예상했다. 예상했으면서도 ‘한국인들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진지한 어떤 존재론적 근거를 묻고 있다. 선입관념을 갖지 마시고 일단 한번 읽어봐 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비롯해 많은 것을 한번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찾게 되고, 사회적인 지적 성숙의 토대가 발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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