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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듀]"한국 95% 성공? 쉬운 연구만 하니 노벨상 탈 리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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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 릴레이 인터뷰]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과학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털보 과학자 #"대학 때는 자유롭게 공부하는 게 더 좋다" #"평생 과학 연구하고 싶다면 문학 읽어라" #"실패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큰 성공 가능"

 수학과 엄밀함의 세계에 사는 과학자는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정모(55) 서울시립과학관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건 ‘인문학자’나 ‘예술가’가 쓴 듯한 글 때문이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외모만 놓고 보면 과학자 보다는 음악가나 화가가 더 어울리는 털보 과학자를 서대문구 연희동 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났다. 그는 2016년까지 이 곳의 관장이었다.  지금은 서울시립과학관장이다.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입구를 지키는 안내원에게 이정모 박사에 대해 묻자 “저희나 직원한테도 늘 의견을 물었어요. 평일에는 박물관 1층 로비를 시민에게 개방해요. 관장님 시절부터 그렇게 했죠”라고 말했다. ‘아줌마’처럼 수다스러운 그는 소통과 설득에도 고수다. 그와의 인터뷰는 글쓰기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은.
“글을 쓸 때 절대 불후의 명작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차피 불후의 명작은 못쓰니까.(웃음) 이렇게 생각해야 쉽게 써진다. 얼마 전 책을 냈는데 주로 언론에 기고한 글이다.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어 쓸 수 있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두 시간 동안 쓰고 출근 한 뒤 퇴고해서 보낸다. 그러면 원고료가 들어오는 게 재밌었다.”

그의 글은 과학과 세상을 연결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진흙탕을 흐린다’는 속담을 과학적으로 비틀어 불평불만의 긍정성을 설파한다. 또 일제히 함께 피어나 봄 거리를 뒤덮는 벛꽃과 지난겨울 광장을 가득 채웠던 촛불 사이에서 '작은 것의 빛나는 연대'라는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는 이렇게 과학과 세상사를 쉽게 연결한다.

-과학자의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달라.

"많은 사람들은 과학자들은 글을 잘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 연구자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글쓰기 훈련을 더 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글을 잘 쓰고 못하고는 소통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전공과 상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과학자 중에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는 사람이 정말 많다. 글은 말에서 시작한다. 과학자들이 대중을 위한 글을 잘 쓰려면 일단 대중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한다. 모든 연구는 세금으로 한다. 세금으로 한 모든 연구는 시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국책 연구기관 평가를 할 때 연구원들이 시민들과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도 따져야 한다. 연구원들이 외부 회의와 강연을 월 3회로 제한하는데, 시민 대상 강연은 오히려 의무화 해야 한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정모 지음) 중에서 

‘고등학교 때 친구를 잘 사귀어서 성적이 떨어졌다.’ 
(잘 못 사귀어서 떨어진 게 아니라 그 반대다.)

‘수소 원자를 축구 경기장 크기로 확대하면 원자의 질량을 거의 차지하는 핵은 센터서클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무당벌레쯤 된다.’ 
(난 화학이라면 질색이다. 그런데 수소 원자 이야기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원자 핵과 전자의 크기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설명이다.)

'“서대문 홍제천과 안산의 벚꽃은 매년 4월 첫째 월요일에 피기 시작해서 토요일에 만개한다”라고 법으로 지정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것은 국회도 못 하고 헌법재판소도 결정하지 못하는 일이다.' 
(벚꽃 개화와 헌법재판소를 연결시키는 엉뚱함 때문에 한참 웃었다.)

 -융합 창의 인재가 화두다. 교육도 문·이과 통합이 대세다.

 “문·이과가 구분돼 있는 건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가 아닐까 싶다. 독일 유학 갔을 때 박사 과정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했다. 부전공을 정하라고 해서 생화학과 미생물학을 택했더니 독일 동료가 ‘왜 똑 같은 것을 또 전공하냐고’ 웃더라. 독일 친구들은 유기화학을 전공하고 비교종교학, 사회학, 법학을 하는 식이 많았다. 사고의 지평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대학 때 이런 저런 다른 공부를 많이 했다. 대학 때는 필수 전공만 듣고 2학년 때는 경제학을 들었다. 3학년 때는 철학과 수업을 많이 듣고, 4학년 때는 신학과 수업을 들었다. 한동안 신학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준비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학부 때 하던 생화학을 계속했다. 6개월 정도 고생하니 별 문제가 없었다. 학부 때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인문학 등을 공부하는 게 길게 봐서는 더 좋은 것 같다.”  

 그는 83학번이다. 80년대를 관통해 20대를 보낸 그가 세상과 소통한 방식은 야학이었다. 그는 9년 반 동안 ‘연동 청소년 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시작했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인 30대 중반까지 야학을 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야학을 하게 됐나. 커리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아니었나.

“연동 청소년학교는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운영한 야학이다.  검정고시를 목표로 하는 야학이다. 노동운동하는 야학은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피곤에 지친 채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 교과서도 다시 쓰고, 비디오 교재까지 만들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뭔가를 쉽게 설명하는 노하우는 그 때 터득한 게 아닐까. 학부 때 졸업 논문을 발표할 때도 역사와 연결시켜가며 설명했는데 교수님으로부터 ‘공부는 별로 열심히 안하는 것 같은데 설명은 참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 분이 대학원에서 내 지도교수가 됐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그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그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다.

-야학을 통해 배운 게 있나.
“책 속엔 이상적인 모습만 있지만 노동자 중에도 게으른 사람,  좋은 사람이 있고, 자본가 중에도 마찬가지다. 생생한 세상을 볼 수 있다. 또 교회 야학이라 나이 많으신 목사님과도 소통하며 일해야 한다. 아주 보수적인 집사님도 있고 급진적인 사람도 있다. 9년 넘게 일하면서 우여곡절이 왜 없었겠나. 난 이력서에 아주 자랑스럽게 연동 청소년학교 교사라는 경력을 넣는다. 9년 넘게 야학을 했다고 하면 ‘어지간한 어려움이 있어도 한 번 하기로 한 것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것 같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노하우도 이때 많이 배웠겠다.

 “일은 리더십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사람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 소외되지 않으면 자신의 뜻과 달라도 조직의 결정에 따를 수 있다. 다음 번에는 다른 사람도 흔쾌히 나의 일을 도와 줄 것이라는 신뢰도 생긴다. 예전에 자연사박물관 관장이 됐을 때 과학자와 공무원이 일하는 공간부터 합쳤다. 용역 직원도 함께 회식했다. 조금씩 서로를 이해했고 주인 의식이 생겼다. 나중에는 박물관 로비를 밤새 개방하는 캠프를 개최했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자발적으로 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는 야학을 통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협업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어쩌면 그가 가르친 것만큼, 그도 배운 게 아닐까 싶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에게 조언을 한다면.
 “여행을 많이 해라. 많이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라.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좋다.”
-책을 권한다면.

“문학을 권한다. 난 중학교 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보고 문학의 길을 걷게 됐다하하) 그땐 삼중당 문고가 저렴해서 참 좋았다. 과학자가 되면 실험실이라는 아주 좁은 세계에 살게 된다. 문학을 통해 다양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과학 서적은 과학자가 안될 사람들이 읽으면 된다. 과학자들은 평생 과학 관련 저널을 읽으면서 살아야 한다.”  


"한국이 노벨상 못타는 이유는 실패를 안하기 때문"
그는 성취의 중요한 비결로 ‘회복 탄력성’을 꼽았다. “어떤 사람들은 실패한 뒤 좌절한다. 그러나 회복 탄력성이 큰 사람은 실패 속에서 오히려 기회를 찾아낸다. 실패에 관한 데이터를 모아서 새로운 발견을 해내기도 한다.”

그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실패가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자세다. 그는 “한국에 노벨상이 없는 건 성공을 못해서가 아니라 실패를 안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 시즌인 10월이면 ‘왜 한국은 노벨상을 못 타냐’고 나에게 묻는 일이 많다. 그 때마다 난 답한다. 앞으로 15년은 못 탄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연구 개발비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실험 성공률은 95%에 이른다. 성공률 95%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 반대다.  실패하는 일에는 도전을 안 하는 거다. 못하는 거다. 3년 계약직 연구자가 실패하면 다시는 연구를 할 수 없으니, 성공할 수 있는 안전한 연구만 한다. 실패하지 않을만한 안전한 연구로 무슨 성취가 가능하겠나. 지난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77세, 75세, 72세다. 40년 넘게 연구해 수상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겠나.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가야 했던 시기에는 베끼는 식의 안전한 연구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연구의 상업화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발견했을 때 조수가 ‘근데 이걸 어디다 쓰지’라고 물었다. 헤르츠는 ‘그건 나도 몰라’라고 했다. 지금 어떤가. TV, 라디오, 스마트폰이 다 전자기파 덕이죠. 중력파도 발견했을 땐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중력파 망원경은 광학 망원경, 전파 망원경에 이어 인류에게 새로운 우주를 보여주는 창이 될 것이다.”

“쓸모 없는 것을 더 연구하고,  더 많이 실패해야 한다”의 괴짜 과학자는 “실패한 것들을 모아 전시회도 열고 상도 주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과학책 3권

그에게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추천했다. 과학을 하고 싶은 학생에게는 문학 읽기를 권했던 그는 김상욱의 ‘과학 공부’, 이명현의 ‘별 헤는 밤’, 데이비드 로지 피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 과학책 3권을 골랐다. 그에게는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딸이 둘 있다. 과학자는 문학을 봐야 하고, 과학 서적은 과학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상욱 과학 공부』  “양자 역학을 이렇게 매력적으로 소개한 글이 또 있을까.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천문학자가 쓴 별 이야기다. 과학 이야기가 이렇게 로맨틱할 수 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연구소 근처의 바위에서 직경 2미터 정도를 관찰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 2미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놀랍다.  그 작은 공간에서 우주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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