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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잎 클로버보다 귀해진 토종 민들레 구별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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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순근의 간이역(22) 

민들레는 콘크리트 틈 사이에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사진 김순근]

민들레는 콘크리트 틈 사이에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사진 김순근]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봄꽃 중 하나가 민들레다. 도심에서도 흙이 있는 공간이면 어김없이 노란 민들레꽃을 볼 수 있다. 도로 아스팔트 틈새나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틈 속에도 자라는 데다 밟히고 짓눌려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질긴 생명력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민초에 곧잘 비유된다.

집 밖으로만 나가면 발에 밟힐 정도로 흔해진 민들레지만 중년층 이상의 세대는 요즘 이상하리만치 민들레가 많아졌다고 한다. 옛날엔 봄에 피는 꽃이었는데, 지금은 지구온난화 탓인지 초겨울까지 꽃이 피어있기 때문이다.

민들레. [사진 김순근]

민들레. [사진 김순근]

이 옛날 같지 않은 요즘 민들레에 흥미로운 사실이 많아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된다. 야외활동이 많아지는 계절,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민들레꽃을 보며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자.

서양 민들레에 밀려난 토종 민들레 

총포가 위로 향해있는 토종 노란민들레(왼). 총포가 아래로 쳐져있는 서양민들레(오). [사진 김순근]

총포가 위로 향해있는 토종 노란민들레(왼). 총포가 아래로 쳐져있는 서양민들레(오). [사진 김순근]

야생화에 취미가 있는 한 지인이 길을 가다 노란 민들레꽃을 발견하고는 꽃을 살폈다. 그는 토종 민들레를 찾기 위해 ‘혹시’하는 마음에 꽃받침 쪽을 살펴봤다고 한다. 토종 민들레는 꽃의 밑동을 감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 즉 총포가 위로 향해있지만 서양 민들레는 아래로 처져 있다는 것이다.

이말에 동행하던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주변에 있는 민들레꽃의 밑동을 확인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마치 어린 시절 바위틈 등에 숨겨놓은 보물찾기 하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많은 민들레꽃 중 총포가 위로 향한 ‘토종’은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때부터 민들레꽃을 보면 나도 모르게 꽃의 총포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민들레꽃. [사진 김순근]

민들레꽃. [사진 김순근]

그런데 얼마 전 아파트 화단에 피어있는 민들레꽃을 보고 무심코 살폈더니 토종이었다. 뜻밖의 행운이 온 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 땅에서 우리 것을 만나는 게 이처럼 어려운 것인 줄 몰랐다. 아무튼 우리가 모르는 사이 봄이면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민들레가 서양 민들레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요즘에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높은 고산지대는 물론 섬에서조차 토종 노란 민들레를 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 토종 민들레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아파트 단지에서도 피고 있으니 아직 100% 서양 민들레 영토가 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흰민들레꽃. [사진 김순근]

흰민들레꽃. [사진 김순근]

민들레는 노란색과 흰색 등 두 종류 색깔이 있다. 그런데 노란 민들레와 달리 흰 민들레는 100% 토종이다. 토종을 찾아보기 힘든 노란 민들레와 순종을 고수하고 있는 흰 민들레의 차이는 수정에서 비롯된다.

100여 년 전 노란 꽃의 서양 민들레가 은근슬쩍 한국으로 들어왔다. 서양 민들레의 번식력은 왕성했다. 다른 민들레의 꽃가루를 받아 씨앗을 만드는 ‘타가수분’의 토종민들레와 달리 서양 민들레는 타가수분은 물론 자기의 꽃가루로 수정하는 자가수분도 가능하고 수정 없이 씨앗을 만드는 처녀생식까지 해가며 급속히 번식했다. 땅에 내린 씨앗이 자라는 발아율로 서양 민들레가 월등했다.

솜사탕같은 민들레꽃씨에는. 110~130개의 씨들이 뭉쳐있다. [사진 김순근]

솜사탕같은 민들레꽃씨에는. 110~130개의 씨들이 뭉쳐있다. [사진 김순근]

더구나 토종은 4~5월에 한차례 꽃을 피운 뒤 6월을 전후해 씨앗을 맺는 데 비해 서양 민들레는 봄에서 초겨울까지 수차례 꽃을 피우며 씨앗을 급속히 퍼트렸다. 특히 노란 토종 민들레가 서양 민들레의 꽃가루로 수정할 경우 그 2세는 이내 서양 민들레화하면서 토종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게 됐다.

반면 흰 민들레는 달랐다. 흰 민들레 꽃가루만 받아 수정했기에 서양 민들레 꽃가루의 융단폭격 속에서도 순수혈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흔히 민들레를 일편단심에 비유한다. 타가수분하기에 민들레 총각 즉 꽃가루가 날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라면 노란 서양 총각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토종 총각만 고수하는 흰 민들레가 ‘일편단심 민들레’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아무튼 흰 민들레는 이런 순혈주의로 인해 번식률이 높지 않다. 더구나 땅에 내린 씨의 발아율도 높지 않아 보기도 쉽지 않다.

민들레꽃씨들. [사진 김순근]

민들레꽃씨들. [사진 김순근]

조만간 민들레 꽃이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에 하얀 씨앗들이 솜사탕처럼 맺힌다. 작은 씨앗 끝에는 낙하산처럼 생긴 갓털, 즉 관모가 있어 바람에 날려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멀리 날아간다. 이 갓털에서 힌트를 얻어 낙하산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흔히 ‘민들레 홀씨’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버섯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은 홀씨를 만들지만 민들레처럼 꽃을 피운 뒤 씨앗을 맺는 식물은 그냥 꽃씨라고 한다.

하얀 갓털에 담긴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별을 떠올린다. “민들레처럼 때가 되면 떠나요~”라는 가사가 있고, 옛날 어른들은 결혼하는 자녀에게 “민들레 꽃씨가 멀리 날아가 뿌리를 내리듯 너도 이제 내 곁을 떠나야 한다”며 헤어짐의 당위성을 민들레에서 찾았다고 한다.

네 잎 클로버보다 귀하신 몸 ‘하얀색’ 토종 민들레 

흰민들레꽃은 모두 총포가 위로 향해 있다. [사진 김순근]

흰민들레꽃은 모두 총포가 위로 향해 있다. [사진 김순근]

5월이 지나도 꿋꿋하게 꽃이 달린 노란 민들레는 십중팔구 서양 민들레다. 그래서 토종 민들레꽃을 만나려면 이 봄이 가기 전에 찾아야 한다. 우리는 클로버가 무리 지어 자라는 곳을 보면 문득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살펴보곤 한다.

그런데 토종 노란 민들레는 서양 민들레에 밀려 네 잎 클로버 보다 더 발견하기 어려운 귀한 존재가 됐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피어있는 민들레꽃을 보면 한 번쯤 꽃의 밑동을 살펴보자. 운이 좋으면 토종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그래서 올 한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에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김순근 여행작가 sk4340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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