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人流] BASEL 올해는 블루에 주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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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젤’이라는 도시명이 익숙할 것이다. 바젤은 스위스 북서부 라인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로, 매년 3월 중순이면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주얼리 박람회인 ‘바젤월드’가 열린다. 그 역사도 길다. 지난 2017년이 바젤월드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18 바젤월드’ 현장에서 확인한 6개의 시계 트렌드를 정리했다.
바젤=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① 1940년대 처음 만들었던 시계를 그대로 복각한 ‘해밀턴 카키 필드 메케니컬 38mm’. ② 올해 바젤월드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시계였던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 GMT 마스터II’. ③올해 처음 퍼페츄얼 캘린더 기능을 넣은 ‘파텍필립 노틸러스’는 블루 다이얼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④ 하이테크 세라믹 소재 시계를 보여온 라도는 바다, 식물 등 자연에서 따온 블루·그린·브라운의 3가지 색의 5㎜ 두께 ‘라도 트루 씬라인 네이처 컬렉션’을 선보였다. ⑤ 현대적인 다이버 시계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 받는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의 2018년 모델. ⑥ 1800년대 해군용 시계를 만든 창립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의 이야기를 담은 ‘브레게 마린 5517’.

시계 업계에서는 “시계 트렌드를 보려면 스위스 바젤에 가야 한다”고 할 만큼 바젤월드 박람회장에는 내로라하는 세계의 고급 시계들이 모여 그해에 선보일 새로운 시계와 기술을 공개한다.
올해 3월 22일부터 6일간 열린 바젤월드에서도 브레게·블랑팡·오메가 등 스와치 그룹 브랜드를 중심으로, 롤렉스·파텍필립·브라이틀링·위블로·태그호이어 등 전통과 기술력을 자랑하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 불가리·쇼파드·샤넬 등 보석과 시계를 넘나드는 주얼리 시계 브랜드가 플래그십 스토어 규모에 버금가는 거대한 부스를 차리고 위용을 뽐냈다.
비록 올해는 참가업체 수가 650개로 지난해 대비 절반 가까이 줄고, 에르메스·디올·펜디 등 일부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불참해 걱정스러운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이 우려를 불식시키 듯 박람회장에는 올해의 시계를 보려는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들어 여전히 ‘바젤월드’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스위스 바젤월드에서 본 2018 시계 트렌드

지난 3월 22일부터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시계·주얼리 박람회 ‘바젤월드 2018’. 거대한 규모의 부스들이 설치돼 고도의 기술과 디자인 미학을 담은 ‘올해의 시계’들을 선보였다. 윤경희 기자

다이버 시계 전성시대
올해 바젤월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다이버 시계의 약진이다. 항공·레이싱 등 다양한 기능성 시계들을 보유한 브랜드일지라 하더라도 부스 전면에는 다이버 시계를 내놨다. 블랑팡이 현대적인 다이버 워치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 받는 ‘피프티 패덤즈’의 2018년 버전을 선보였고, 파텍필립은 다이버 워치 컬렉션인 ‘아쿠아넷’에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탑재시킨 시계를 내놨으며, 롤렉스는 대표 다이버 워치 ‘딥씨’의 새 모델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오메가의 ‘씨마스터 다이버 300M’, 티쏘의 ‘씨스타 100 젠트 오토매틱’까지 많은 다이버 시계가 올해 브랜드의 주력시계로 선정됐다. 일본 시계 브랜드 세이코는 복각 시계 등 많은 다이버 모델을 내놓으며 아예 부스 전면에 있는 두 개의 전시 공간을 채웠다.

과거로부터의 회기, 복각
브랜드가 가진 오래된 헤리티지(유산)를 적극 활용한 시계들이 대거 선보인 것도 이번 바젤월드의 주목할만한 점이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과거의 유명 시계 모델에 현대의 감각과 기술을 적용시켜 복원한 복각 시계들이 다수 나왔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브랜드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자 차별점을 유감 없이 뽐낸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과거의 기념비적인 모델을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이번 바젤월드에서 복각 시계 트렌드를 주도한 브랜드는 해밀턴, 세이코, 미도 등이다. 미도는 1959년 파리 에펠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커맨더 셰이드’를 복각했다. 해밀톤은 군용 시계로 만들어진 ‘카키’ 컬렉션을 복각해 시간에만 오롯이 집중한 기능에 나토 스트랩(군용으로 쓰인 천 소재 손목밴드)를 조합했다. 세이코는 1968년 처음 출시된 다이버 워치 ‘프로스펙스 1968 오토매틱 다이버’를 재현한 모델을 새로 내놨다.

바다를 닮은 ‘블루’의 향연
다양한 컬러의 시계들이 그 모습을 뽐냈지만, 2018 바젤월드의 대표 컬러를 꼽는다면 단연 ‘블루’다. 몇 년 전부터 다이얼 컬러로 전통적인 블랙·화이트와 함께 블루가 인기를 끌어왔지만, 올해는 부쩍 블루 다이얼의 시계들이 많이 등장했다. 또 다이버 시계 등 스포티한 제품들의 경우 다이얼은 블루로 하더라도 손목밴드는 블랙으로 하는 게 보통이었다면, 올해는 손목밴드까지 다이얼의 컬러에 맞춰 블루로 통일한 시계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마린’을 주제로 시계를 내놓은 브레게는 블루 다이얼에 바다를 상징하는 파도 모양을 그려 넣고 가죽·고무 소재의 블루 손목밴드를 달았다. 롤렉스는 올해 새로 출시한 ‘딥씨’ 모델에 밑으로 갈수록 색이 어두워지는 심해를 표현한 블루 다이얼을 장착했고, 파텍필립 역시 ‘노틸러스’ 시계의 퍼페추얼 캘린더 버전을 내놓으면서 블루 다이얼을 장착한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더 슬림하게, 더 가볍게
전자시계가 아닌 이상, 시계는 복잡한 기능을 담을수록 두께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계 두께를 얼마나 얇게 만들 수 있는가는 그 브랜드의 기술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매년 새로운 시계 기술을 선보여 ‘기록 파괴자’라고 불리는 불가리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얇은 컴플리케이션 워치(다양한 기능이 장착돼 복잡한 시계)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아래 사진) 모델로 두께가 3.95㎜ 밖에 안 된다. 무게 또한 전자시계 무게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가벼워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무거운 컴플리케이션 워치 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컴플리케이션 워치로 인정받은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

주목해야 할 기술은 ‘GMT’
올해 바젤월드에선 미닛 리피터(시·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 투르비용(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장치), GMT(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알려주는 기능) 등 시계의 최첨단 복잡 기술로 꼽히는 기능을 추가한 모델들이 다양하게 소개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GMT 시계다. 롤렉스가 올해 처음 선보인 레드·블루 두 가지 컬러로 구성된 베젤을 단 ‘롤렉스 GMT 마스터 II’는 시계 바이어들의 속을 태웠다. 몇 해째 인기가 식지 않는 스포티한 디자인에 GMT 기능까지 탑재한 데다 스틸 소재로 만들어 가격대를 1000만원 대까지 내렸기 때문이다. 기존의 롤렉스 시계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저가’ 모델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시계 바이어는 “이 시계의 물량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올해 비즈니스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외에도 파텍 필립, 태그 호이어, 오메가 등이 GMT 기능을 탑재한 시계에 집중했다.

‘오메가 트레저’는 크라운(용두)을 작은 꽃 모양으로 디자인해 아름다움을 더했다.

스마트 워치 대신 디지털 기술만 쏙
세계의 모든 시계가 다 있다는 바젤월드에서 찾을 수 없는 건 바로 스마트워치였다. 2015년 ‘애플 워치’ 출시 이후 몽블랑·태그 호이어가 잇따라 모델을 내며 ‘미래 시계’로 화두가 됐던 스마트워치는 더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전통을 뽐낼 수 있는 복각 시계를 내세우고, 다이얼에 공예 작품을 새겨 넣거나 보석을 가미한 스켈레톤 구조 장식 등으로 시계에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집중했다.
대신 아날로그 시계의 외형에 디지털 기술을 적절하게 적용한 시계들이 새로 등장했다. GMT 기능을 탑재한 ‘론진 콘퀘스트 V.H.P.’는 휴대폰 앱으로 다른 도시나 나라의 시간대를 맞춰 시계에 블루투스로 전송하면 자동으로 시간 설정을 할 수 있다. 저장한 도시에 갔을 때 크라운을 길게 눌러주기만 하면 시계 바늘이 자동으로 돌아가며 시간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