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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업비트ㆍ빗썸 잡코인 상장 경쟁에 시체 쌓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 오전 10시 45분. 시가총액 20위 수준의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 오미세고(OMG)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1만2000원에서 30분도 안 돼 1만9150원까지 뛰었다. 같은 시각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은 1% 오르는데 그쳤다. 오미세고만 60% 뛰었다.

가격을 밀어올린 건 상장 루머다.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오미세고 포럼에 ‘코인베이스의 GDAX의 API에 OMG가 보인다’는 글이 올라왔다.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는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API를 공개하면 그에 맞춰 투자자들은 자신들만의 봇(자동매매 프로그램)을 만들어 트레이딩을 한다. API에 OMG가 보인다는 건 OMG를 해당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곧, 상장을 의미한다.

이후 사람들이 해당 API에서 OMG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오미세고 상장을 기정사실화했다. 앞서 코인베이스는 블로그를 통해 이더리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미세고는 대표적인 이더리움 기반 암호화폐다.

코인베이스는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다. 현재 비트코인ㆍ비트코인캐시ㆍ이더리움ㆍ라이트코인 등 4개 암호화폐만 거래된다. 이곳에 상장된다는 건 큰 호재다. 올해 초 리플 상장 루머가 돌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비트코인캐시는 지난해 말 상장되자마자 5분도 안 돼 20% 상승했다. GDAX는 코인베이스의 자회사다.

출처: 크립토코인저지

출처: 크립토코인저지

미국 최대라고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코인베이스나 GDAX는 하루 거래량 상위 10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세계 1위 거래소는 홍콩에 위치한 바이낸스다. 15일 오후 3시 기준으로 거래금액이 1조5000억원에 이른다. GDAX의 거래대금은 2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도 시장은 코인베이스(혹은 GDAX) 상장에 열광한다. 코인베이스는 뭐가 특별하길래 ‘작은 거인’ 취급을 받는 걸까.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달러

바이낸스ㆍ후오비ㆍOKEx 등은 하루 거래대금이 1조원을 웃돈다. 이들 거래소에 상장된 종목은 100개가 넘는다. 이곳을 이용하면 웬만한 암호화폐는 다 살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원화나 달러 등 법정화폐를 가지고 알트코인은 물론이고 비트코인도 살 수 없다. 일단 비트코인이 있어야 다른 알트코인을 살 수 있다. 비트코인이 현실 세계의 미국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의 미래를 낙관하기도 한다.

거래량 상위 10개 거래소 가운데 7곳은 법정화폐 입ㆍ출금이 불가능하다. 전세계 200여개 거래소 가운데 다수는 비트코인을 가지고 알트코인을 사고 파는 시장(BTC마켓)이다. 업비트나 빗썸 등 국내 거래소처럼 은행을 통해 원화를 입금하고, 그 돈으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살 수 있는 거래소는 드물다.

전세계 10대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와 빗썸을 빼면 법정화폐 입금이 가능한 거래소는 홍콩에 기반한 비트파이넥스 뿐이다. 달러나 유로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살 수 있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법정화폐로 환산돼 그 가격이 표기된다. 곧, 법정화폐가 시장에 유입돼야 비트코인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의미다. 지난 12일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비트코인 가격이 갑자기 700만원대에서 800만원대로 뛰었다. 이시간 거래의 60%가 비트파이넥스에서 이뤄졌다. 비트파이넥스로 들어온 현금(법정화폐)이 비트코인 가격을 밀어올린 셈이다. 해외발 상승에 이 시간, 국내 비트코인 가격에 해외보다 더 싸게 거래되는 ‘역프리미엄’이 나타났다.

현금 입금되는 거래소는 ‘잡’코인 취급 안 해

암호화폐 시장 전체를 견인하는 거래소는 법정화폐가 입금되는 거래소다. 유동성 공급의 통로가 된다.  2016년 암호화폐 시장을 이끌었던 중국 위안화 자금은 지난해 초 중국 정부의 규제 압박이 거세지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지난해 4월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암호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의 하나로 인정한 일본의 엔화 자금이 대거 시장에 유입되면서 하반기 상승세를 이끌었다.

지난해 말과 연초, 일본 엔화에 이어 암호화폐 시장을 광풍에 몰아넣은 자금은 한국 원화다. 업비트ㆍ빗썸 등 국내 거래소를 통해 원화가 대거 시장에 유입됐다. 지난해 12월, 업비트의 하루 거래대금이 10조원을 웃도는 날이 있을 정도였다.

같은 이유로, 지난 1분기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에 빠진 건 유동성 공급의 통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강화로 은행들이 거래소에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했다. 법정화폐가 암호화폐 시장에 공급되는 길목을 막아버린 셈이다. 대신 비트코인 선물 시장이 열리면서 쏟아져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던 기관 자금은 투자자들의 ‘김칫국’에 불과했다. 되레 비트코인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기관들 때문에 비트코인 가격은 위쪽으로 방향을 틀지 못했다.

법정화폐 입출금이 가능한 거래소. 15일 오후 3시 기준 24시간 거래금액. 출처: 코인마켓캡 등

법정화폐 입출금이 가능한 거래소. 15일 오후 3시 기준 24시간 거래금액. 출처: 코인마켓캡 등

암호화폐 시장이 아직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법정화폐가 유입되는 거래소는 대개 보수적이다. 상장 종목에 신중을 기한다. 검증된 것만 상장한다. 코인베이스는 미국 최대 거래소이지만 상장 암호화폐는 4개에 불과하다. 업비트ㆍ빗썸 등 국내 거래소와 비트파이넥스를 뺴면, 대부분 거래소의 상장 암호화폐는 10개에 못 미친다(크라켄은 17개를 상장했다. 하지만 이곳은 2011년에 생긴 역사가 오래된 거래소다).

국내 거래소도 지난해 10월 글로벌 거래소인 비트렉스와 제휴한 업비트가 생겨나기 전까지 상장 암호화폐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업비트 개장으로 이런 공식이 깨졌다. 업비트에서는 40여개 암호화폐를 원화로 살 수 있고, 원화를 입금해 비트코인을 사면 그 비트코인으로 100여개의 암호화폐를 살 수 있다. 상장 종목 숫자를 앞세워 빗썸이 독점하던 시장을 금세 빼앗았다.

파이 자체가 커지면 상대적인 몫이 줄어도 절대적인 양은 늘어난다. 업비트에 주도권을 뺏기기는 했지만 2016년과 비교하면 빗썸 역시 덩치가 수십 배 불었다. 하지만 정부의 강한 규제 드라이브에 암호화폐 시장의 열기가 식으면서 거래대금이 종전의 10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성장이 정체되면 경쟁자 몫을 뺏어라

산업이 성장을 멈추면 경쟁회사 몫을 뺏어와야 성장(혹은 생존)할 수 있다. 암호화폐 시장의 사이즈가 줄었으니 살아남는 길은 남의 거래소 고객을 뻇어오는 것이다. 고객을 빼오는 손쉬운 방법은 신상품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곧, 새로운 암호화폐의 상장이다.

먼저 움직인 곳은 업비트다. 빗썸이 농협계좌를 통해 신규 회원을 받는 반면, 업비트의 거래 은행인 기업은행은 정부 눈치를 보면서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안 하고 있다. 원화 입금 통로가 막혔다. 더 급하다는 얘기다. 일단 BTC 마켓부터 시작했다. 2월 14일 시린토큰을 시작으로, 15일 왁스, 16일 제로엑스, 17일 블록브이를 연달아 상장했다. 3월 2일에는 시가총액이 20억 달러를 웃도는 트론을 상장했다. 이수진 업비트 이사는 "BTC 마켓 상장은 연동된 글로벌 거래소 비트렉스에 상장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눈치를 보던 빗썸도 움직임을 개시했다. 빗썸이 서브 거래 플랫폼으로 출시한 빗썸프로(하지만 자산간 이동이 자유로워 사실상 빗썸과 다를 바 없다)에 국내 기업인 더루프가 개발한 아이콘을 지난달 21일 상장했다. 지난해 12월 이오스 상장을 이후로 중단됐던 신규 암호화폐의 원화 마켓 상장이 처음 이뤄졌다.

업비트는 '눈에는 눈' 전략으로 대응했다. 빗썸이 아이콘을 상장한 이튿날 이오스를 원화 마켓에 상장했다. 동시에 이오스를 보유한 이들에게는 이오스에서 파생된 암호화폐 eosDAC를 지급하겠다고 안내했다. 빗썸이 eosDAC 지급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오스 투자자들은 대거 업비트로 이동했다.

빗썸도 물러설 수 없다. 지난 5일 트론 상장을 예고했다. 거래대금의 2%를 돌려주는 페이백 이벤트도 준비했다. 그런데 그날 오전 업비트는 트론을 원화 마켓에 기습 상장했다. 동시에 트론 보유량이 많은 순서대로 7000만개의 트론을 분배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업비트에서 트론을 비트코인으로 거래하던 고객을 대거 뺏어오겠다는 빗썸의 전략은 빗나겠다.

115배 올랐다 97% 폭락…1159만원이 86만원으로

출처: 빗썸

출처: 빗썸

빗썸은 2차 공습을 시작했다. 지난 12일 오후 6시 미스릴과 엘프를 상장했다. 업비트에는 없는 종목이다. 거래량이 순간 폭증하면서 가격이 널뛰기했다. 상장가인 250원에 거래가 시작된 미스릴은 30분 만에 2만8812원까지 치솟았다. 115배나 올랐다. 하지만 이후 10분 만에 7498원까지 떨어졌다. 현재는 700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미스릴과 엘프 거래가 몰리면서 이날 빗썸은 오랜만에 국내 최대 거래소 타이틀을 뺏어왔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는 가격 널뛰기 광풍에 휘말려 큰 손해를 봤다는 증언이 넘쳐났다. 한 투자자는 “1200만원 남은 거 회복해보려고 미스릴 넣었는데…진짜 죽을 거 같아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투자한 1159만원은 86만원이 돼 버렸다.

출처: 네이버 암호화폐 관련 카페

출처: 네이버 암호화폐 관련 카페

잡코인 상장에 따른 가격 폭등을 보면 투자자들은 이성을 잃기 십상이다. 게다가 상장 정보가 찌라시로 떠도는 경우가 많다. 소위 펌핑방이나 리딩방에는 ‘먼저 입수한 초특급 정보’라면서 업비트나 빗썸에 상장될 암호화폐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 문제는 이들 정보가 때로 적중한다는 점이다. 한 번 맞추고 나면 투자자들은 펌핑방 정보를 더 맹신하게 되고 이는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

일부는 거래소 내부자가 상장 정보를 유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거래소는 이런 의혹을 적극 부인한다. 이정아 빗썸 부사장은 “상장 정보는 나도 모를 정도로 극소수만 알고 있다”며 “만약 내부자 거래가 있다면 내가 먼저 그들을 퇴사조치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사장은 “거래소가 종목을 선별해서 상장하는 것만큼 다양한 암호화폐를 상장해 투자자들에게 투자 기회를 넓혀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현실적으로 줄어든 거래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규 암호화폐를 상장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은행 목줄을 쥐고 거래소를 통제하는 것보다는 거래소에 대한 직접 규제를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일본 등록 거래소의 대부분은 상장 암호화폐가 10개에 못 미친다. 정부는 등록제를 시행하면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지만, 정작 규제의 울타리 밖에 있는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잡코인이 난무하면서 투자자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는 “암호화폐 상장 절차를 까다롭게 해 검증되지 않은 소위 잡코인 거래로 인한 피해를 막는 게 투자자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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