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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아산 소방관 사망 사건, 국가가 ‘공범’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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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의 사회탐구

지난달 30일 아산 소방관 순직 사고 때 파손된 소방 펌프차. [뉴시스]

지난달 30일 아산 소방관 순직 사고 때 파손된 소방 펌프차. [뉴시스]

지난달 30일 오전 9시 46분쯤 충남 아산시 신남리 43번 국도(상행선 쪽)에서 정차 중이던 소방 펌프차를 25t급 트럭이 추돌했다. 펌프차는 도로변(폭 1.9m)이 좁아 오른쪽 맨 끝 차로를 물고 세워져 있었다. 트럭은 펌프차를 80여m 밀고 간 뒤에야 멈춰섰다. 이 사고로 펌프차 앞에 서 있던 둔포119안전센터 소속 김신형(29) 소방교와 소방관 임용 예정자 문새미(23)·김은영(30)씨가 숨졌다. 트럭 운전자는 경찰서에서 “라디오를 조작하느라 앞에 서 있는 소방차를 뒤늦게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트럭 운전자의 과실이 사고 원인으로 판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고를 낸 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그의 부주의가 사고 원인의 전부일까? 사고 현장, 피해 소방관이 소속된 둔포119안전센터, 그리고 소방청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봤다.

'도로 위의 개' 처리 신고 받고 #소방관 두 명이 펌프차로 출동 #당시 안전센터 근무자는 총 6명 #교통 통제 위한 인력 확보 못해 #전국 소방관 수 기준에 28% 미달 #세월호 4년, 국가는 무엇을 했나?

13일 오후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드레일과 3차로 끝 사이의 공간은 승용차 한 대를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차를 정차하면 왼쪽 끝부분이 3차로에 걸쳐질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급 자동차 전용도로(제한속도 시속 90㎞)라서 차들이 무섭게 질주했다. 결국 43번 국도에서 빠져나가 이면도로를 통해 근처로 간 뒤 걸어서 현장으로 접근했다. 대형 화물차들이 2∼3초마다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3차로를 지나갔다.

지난달 30일 사고 때 1.5t 트럭과 폭이 같은 소방 펌프차가 그곳에 세워져 있었다. 3차로 경계를 넘어 정차한 상태였다. 펌프차 뒤에서 누군가가 3차로 운행을 통제하는 작업은 없었다. 트럭 운전자가 한눈팔지 않고 앞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고 해도 급제동을 해 차를 갑자기 멈춰 세우거나 속도를 줄인 뒤 급히 차로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산경찰서 교통 담당 경찰관은 “우리도 무서워서 웬만해서는 그 길에 차를 세우지 않는다. 교통사고 수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워야 할 때는 다른 순찰차를 200m 뒤쯤에 정차시켜 놓고 경광봉으로 달려오는 차들의 차로 변경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소방관들은 펌프차를 위험천만한 곳에 세워놓고 3차로 운행 통제 또는 차로 변경 유도에 필요한 일은 하지 않았을까? “개가 도로 위를 오가고 있어 교통사고 위험이 있다”는 119 신고가 접수돼 현장에 출동한 둔포119안전센터 소속 소방 인력(임용 예정자 포함)은 네 명이었다. 김신형 소방교와 정식 임용을 앞두고 교육을 받던 문새미·김은영씨는 순직해 그들에게 물어볼 방법은 없다. 함께 출동했던 이모 소방관은 개를 붙잡기 위해 가드레일 밖에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는데, 참사 현장 목격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다. 경찰서나 소방청은 15일까지도 그로부터 사고 관련 진술을 받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당사자들의 설명은 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13일에 촬영된 사고 현장. 도로 위 바퀴 자국은 트럭이 펌프차를 추돌하며 멈춰 설 때 생긴 흔적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13일에 촬영된 사고 현장. 도로 위 바퀴 자국은 트럭이 펌프차를 추돌하며 멈춰 설 때 생긴 흔적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교육생을 제외하면 당시 출동한 소방관은 두 명이었고, 붙잡아야 할 개는 몸길이 1m 정도의 대형견이었다. 소방관 한 명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펌프차 뒤에서 누군가가 교통 통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고 볼 수 있다. ‘참관’이 임무인 교육생에게 경광봉을 들게 할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는 펌프차가 출동할 때 소방관 네댓 명이 탑승한다. 멧돼지 출몰이나 벌집 발견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방청에 물어보니 펌프차 한 대에 네 명 이상이 타고 가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둔포안전센터는 펌프차에 소방관 두 명만 타게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안전 대한민국’의 현실이 숨겨져 있다. 이 안전센터의 소방 인력은 19명이다. 사고가 난 그 주에는 한 명이 음봉지역대(출장소)로 파견 갔다. 그래서 총원이 18명이 됐다. 소방관은 3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사고 당시 6명이 근무 중이었다. 안전센터에는 펌프차·탱크차·구급차가 한 대씩 있어 각 차량을 소방관 두 명이 맡았다. 도로를 오가는 개 생포 등의 생활안전 문제는 펌프차 담당들의 업무라서 두 소방관이 출동하게 됐고, 교육생 둘이 따라갔다. 화재나 응급 상황에 곧바로 대응해야 하는 탱크차나 구급차가 함께 출동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둔포안전센터의 기준 인력은 31명이다. 주민 수·건물 수·중증환자 수·관할 면적 등의 요인을 고려해 산출한 적정 규모다. 이 인원을 다 채우면 센터장을 제외하고 10명씩 3교대로 근무할 수 있다. 현재는 18명뿐이니 기준 인력의 60%도 되지 않는 셈이다. 소방 인력 태부족 현상은 비단 이곳만의 현실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필요한 전국 소방 인력은 약 6만6000명이고 실제 인력은 약 4만7500명이다. 전국적으로 약 28%가 부족한 상태다. 대도시보다 지방이 문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소방 인력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0년에 2교대(24시간 근무, 24시간 휴식)에서 3교대로 근무 체제가 바뀌면서 인력 수요가 폭증한 데다 생활안전 관련 출동이 꾸준히 늘어났다. 소방관은 유기견·유기묘 포획에서부터 고드름·벌집 제거, 대문 열어주기, 도로 위로 떨어진 현수막 처리 등 온갖 일을 한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소방관 1만8000명을 증원하겠다고 약속하고 단계적 충원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소방관은 광역시와 도에 속한 지방직 공무원이라 정부 의지대로 되지는 않는다. 지난달 충남도청은 2022년까지 1660명을 늘리려던 계획을 변경해 예상 충원 인원을 720명으로 줄였다. 이후 소방 공무원 등이 반발하자 원래 계획대로 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행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철종 재향소방동우회 회장은 “소방관 인건비는 중앙정부 교부세에서 나오는데 지자체는 늘 인력을 줄여 교부세를 다른 곳에 쓰고 싶어 한다. 소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우선은 소방 관련 비용을 일반교부세가 아닌 항목 지정 교부세로 정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방 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가로막고 있는 일부 광역시장이 현실을 직시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사고 뒤 둔포안전센터는 생활안전 신고 처리 때도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활동해야 하는 경우라면 펌프차와 탱크차가 동시에 출동하기로 했다. 한 대는 뒤에서 차량 운행 통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김종회 센터장은 “소방차 두 대가 모두 출동했다가 다른 곳에서 불이 나면 대응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 대응 매뉴얼(SOP)을 정비 중인데 원칙과 현실의 간격을 줄이기 힘들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너도나도 외쳤지만 최일선에서 위험과 싸우는 소방관들의 인력 부족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국가는 과연 그동안 무엇을 했나? 아산 소방관 순직에 대한 책임은 트럭 운전자에게만 있는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