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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려면 2~3년 버틸 자금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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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18) 

귀농·귀촌해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지자(知者)’, ‘호자(好者)’, ‘낙자(樂者)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가장 오래 가는 것은 세 번째 '낙자(樂者)'이다. [사진 pixabay]

귀농·귀촌해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지자(知者)’, ‘호자(好者)’, ‘낙자(樂者)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가장 오래 가는 것은 세 번째 '낙자(樂者)'이다. [사진 pixabay]

아무리 오래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최초 시작은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학습이나 충동이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학습돼 이미 알고 있거나 상당히 연구해온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면 충분한 검토 시간을 갖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여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 반면에 충동으로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당황한 나머지 효율적이지 못하거나 지속성이 약할 수 있다. 다만 의욕은 충만해 추진력이 강하다. 자기가 좋아서 하니까 그렇다.

옛말에 ‘지자(知者)는 불여호자(不如好者)요 호자(好者)는 불여락자(不如樂者)’라는 말이 있다. 아는 사람은 좋아서 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서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즐기며 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다. 귀농·귀촌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 보면 ‘지자(知者)’, ‘호자(好者)’, ‘낙자(樂者)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역시 오래 가는 것은 세 번째 낙자(樂者)다.

귀농·귀촌 적성검사 해봐야

시골로 내려가 산다는 것은 도시보다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의미이므로 충분한 자금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사진 pixabay]

시골로 내려가 산다는 것은 도시보다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의미이므로 충분한 자금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사진 pixabay]

즐기면서 하니 오래 버틸 만하다. 즐기는 수준까지 가려면 여러 가지 풍파를 겪어야만 가능하니 그간의 마음고생과 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예 자신의 농장에 ‘랄랄라’라는 이름을 붙여 가는 이도 있다. 늘 즐겁게 사나 싶지만, 그에게도 근심은 늘 붙어 다닌다. 그놈의 근심은 ‘내가 이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이더란다.

‘내가 왜 이걸 꼭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적성과 관련이 있다. 어떤 직업에도 지식, 태도, 기술이 필요하듯 귀농·귀촌도 마찬가지다. 인생 후반전에 귀농·귀촌 선수로 뛰려면 당연히 적성 검사를 해야 한다. 미리 준비하고 학습하고 연구해 결정했든, 놀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귀농·귀촌을 결심했든 동기는 다양해도 적성에 맞는다면 선수로 뛰어 볼 만하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다. 물론 은퇴를 했나 은퇴 예정자가 본 칼럼의 주된 고객이지만, 젊은 사람도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충청남도 농업기술원에서 권하는 귀농·귀촌 적성검사 항목이다.

귀농·귀촌 적성검사 항목

1. 부부간 혹은 가족 간에 합의가 되었는가
2. 최소 2~3년간 버틸 자금이 수중에 있는가
3. 지역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파악되었는가
4. 농촌에 내려갈 특별한 이유를 찾아냈는가
5,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역시나 가족 간의 합의가 중요하다. 혹시나 귀농·귀촌을 계기로 홀로서기를 꿈꾼다면야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대부분이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므로 혼자 시골로 내려가고 나머지 가족은 도시 생활을 한다면 오래 버티기가 힘들다.

행복해지자고 선택하는 것이 인생 후반기의 전원생활인데, 굳이 가족이 반대하는 걸 밀어붙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원생활의 매력을 배우자와 자녀에게 알려 주는 것은 해야 한다. 알고 안 하면 모를까 모르면서 안 하는 건 곤란하다. 그만큼의 매력 있는 삶이다.

역시나 자금이 있어야 버틴다. 농촌이건 어촌이건 산촌이건 시골로 내려가 산다는 것은 도시보다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의미다. 극히 일부의 부농 신화는 믿지 말아야 한다. 일부의 성공이 모두의 성공인 것처럼 미화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적어도 3년을 버틸 생활자금을 확보하고 이주해야 한다.

첫해와 2년 차에 농사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 어렵다. 인턴 생활을 졸업할 3년 차에 적자를 면한다면 대성공으로 봐야 한다. 물론 4년 차, 5년 차에도 위기는 닥쳐온다. 그러므로 은퇴 이후에 '일터'로서가 아닌 '삶터'로서 지역을 보아야 한다.

'영도 할매 귀신이 있어 들어가면 이사를 나오기 어렵다.'는 부산 영도의 재미있는 전설. 귀촌한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는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중앙포토]

'영도 할매 귀신이 있어 들어가면 이사를 나오기 어렵다.'는 부산 영도의 재미있는 전설. 귀촌한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는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중앙포토]

부산 영도에 가면 영도 할매 귀신이 있어 들어가면 이사를 나오기 어렵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영도 할매가 전국을 커버하고 있어서 귀촌하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돈을 까먹을 것을 각오해야 하고, 까먹은 만큼 도시로 나오기 힘들다.

지역사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어설프게 소문만 듣고 교육만 받아서는 모른다. 지역의 텃세를 걱정하지만, 본인의 성격도 변수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미리 살아보기를 통해 지역 사회의 돌아가는 동향을 살펴보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만한 곳인지, 나와 궁합이 맞는지 알아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가 농촌에 내려갈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내가 도시 생활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과 같다. 전원생활을 오래도록 즐기고 있는 사람은 개인적인 이유를 하나씩 갖고 있다. 마당에 핀 꽃 하나에 꽂혀서 10여년을 사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일이란 꼭 돈이 되어야만 일이 아니다. 돈 되는 일만 하는 사람은 그냥 도시에서 돈 되는 일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적 성공 아닌 정신적 성공 위한 귀농·귀촌이어야 

귀농·귀촌을 생각할 때는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참된 전원생활이 가능하다. [중앙포토]

귀농·귀촌을 생각할 때는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참된 전원생활이 가능하다. [중앙포토]

마지막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각오가 있냐고 묻는 것은 어려움이 닥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이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인생이란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아닌가. 힌트를 준다면 여기서 얘기하는 어려움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말한다.

주민들과 귀농·귀촌인은 원시인과 외계인의 관계다. 늘 살던 방식이 바뀌는 것이어서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참된 전원생활이 다가온다. 도시의 개인주의는 도시에서나 좋은 가치다. 지역의 삶은 더불어 사는 삶이다.

적성검사를 해 보았는데 하나라도 자신이 없으면 다시 생각해 보시라. 다만 귀농·귀촌의 적성은 후천적으로 개발되고 변화하는 것이므로 재도전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귀농·귀촌은 경제적 성공을 위한 삶이 아니라 정신적 성공을 위한 삶이다. 어지간히 돈이 있어도 쉽지 않은 길이니 부디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삶을 찾아 행복하길 바란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누가 사토시 나카모토를 죽였나'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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