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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세계] 아베, 거짓말, 아사히 그리고 워터게이트 … 평행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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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 일인데 왜 이렇게 흥미로운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견고한 성은 정말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정치 명문가 자제로 승승장구해 2012년과 2017년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얘깁니다. 올해 9월 있을 선거에서도 그가 연임에 성공하는 일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죠.

아베 총리와 그의 부인 아키에 여사 [AP=연합뉴스]

아베 총리와 그의 부인 아키에 여사 [AP=연합뉴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그야말로 ‘진격의 아베’였던 그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6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고요.
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베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건 일명 ‘모리토모 스캔들’입니다.
지난 2016년 모리토모 재단이라는 사학(私學)이 국유지를 샀는데 일본 정부가 ‘파격 할인가’로 판 거죠. 9억 3400만엔(약 93억원)에 달하는 땅을 겨우 1억 3400만엔(약 13억원)에 내준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지난 1일 벗꽃 인파가 몰린 도쿄 요요기공원을 걷고 있는 아베. 일명 '시부야 오빠' 퍼포먼스로,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그의 안간힘이다. [지지통신 제공]

지난 1일 벗꽃 인파가 몰린 도쿄 요요기공원을 걷고 있는 아베. 일명 '시부야 오빠' 퍼포먼스로,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그의 안간힘이다. [지지통신 제공]

우선,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에 대해 아셔야 합니다.
아베 총리 본인은 물론 그의 내각은 일본회의에 장악되어 있다시피 한데요. 당시 모리토모 재단의 이사장이었던 가고이케 야스노리 또한 이 단체의 임원이었죠. 대충 ‘거시기’한 느낌이 오지 않나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진보 성향 일간지 아사히신문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2017년 2월 ‘국유지 파격 할인’에 대한 특종을 터뜨려 이 스캔들의 서곡을 울렸죠.

총리와 신문사의 한판 대결이라….
여기서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이야기네요.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를 시작합니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워터게이트 빌딩에 침입한 다섯 명의 남자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워터게이트 빌딩에 침입한 다섯 명의 남자들.

1972년 6월 17일 미국의 한 재판정.
신참 기자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옵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는 건물에 도청장치를 들고 침입한 남자 5명이 체포됐는데, 법정에 나타난 변호사가 꽤 ‘비싸’ 보였거든요. 게다가 그 5명 중 한 명은 전직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고요.

‘단순 침입 사건 맞아? 낌새가 이상한데…’

우드워드는 이 사건 너머에 뭔가 있을지 모른다는 직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부리나케 회사로 달려가죠. 워싱턴D.C.의 작은 지역언론에 불과했던 신문사, 워싱턴포스트로 말입니다.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앨런 파큘라 감독)의 시작입니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과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 기자.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과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 기자.

취재를 하다 보니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다섯 명의 침입자들에게 흘러 들어간 돈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나온 거였죠. 당시 닉슨(공화당)은 다음 선거를 준비 중이었거든요.
우드워드는 동료 기자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닉슨 선거 본부의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야 말이죠.

"제발 돌아가 줘요. 그들이 보고 있단 말이에요."

다들 두려워하며 만남을 거부하자 두 기자는 ‘진짜 뭔가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며 취재를 이어나가죠. 특히 딥스로트(내부고발자ㆍ후에 스스로 FBI 부국장이라 밝힘)와 접촉할 때는 암호를 사용하고, 택시를 두세 번 갈아타는 등 첩보원 뺨치는 경계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다른 언론은 여전히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백악관은 점점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죠.

이것이 끝내 닉슨을 낙마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입니다. (침입자들이 들어간 건물 이름이 ‘워터게이트’였거든요.)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과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 기자가 함께 앉아있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과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 기자가 함께 앉아있다.

모리토모 재단의 국유지 거래도 처음부터 미심쩍었습니다. 아베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이 재단의 초등학교에 명예 교장으로 취임한 것부터 너무 이상하잖아요?

워터게이트 사건과 평행이론이라도 이루는 걸까요.
아사히 또한 첫 보도 이후, 연이어 관련 사안들을 보도해 나갑니다. 파헤쳐보니, 아키에 여사는 모리토모 재단에 기부금을 내는 등 이 일과 아주 깊숙이 연관돼 있었죠. 사건은 ‘아키에 스캔들’로 명명되며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지지율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베는 오히려 아사히신문을 연일 맹공격했죠. 46년 전 닉슨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를 요즘 말로 ‘가짜뉴스’라며 맹렬히 비난했거든요.

그렇지만 아사히의 추적 보도가 2년에 걸쳐 계속되자 시민들도 서서히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아베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AP=연합뉴스]

아베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AP=연합뉴스]

그러다 지난 3월 2일. 사건의 분수령이 되는 한방이 터집니다.

"모리토모 학원과의 국유지 거래 과정을 담은 공문서는 누군가에 의해 조작됐다."

아베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아사히를 맹비난했지만 이를 어쩝니까. 재무성이 관련 문서를 14건이나 조작했다는 보도가 사실로 드러난 겁니다. 특혜를 뜻하는 문구, 아키에와의 연루가 암시된 부분 등이 삭제돼 있었던 거죠.

아베는 일단 사과 후 ‘꼬리 자르기’에 들어갑니다. 자긴 전혀 모르는 일이고 재무성에서 벌린 일이란 해명이었죠.

그러나 이런 태도가 대중의 의구심에 더 불을 질렀습니다. 아베가 직접 지시한 것이라 해도 문제지만, 아랫사람이 눈치를 봐서 스스로 행한 일이라 해도 그런 권력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으니까요.

이후 견고하던 아베의 성은 빠르게 무너져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시민들은 ‘아베 퇴진’을 외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죠. 시위에는 어김없이 "거짓말쟁이는 물러나라”는 구호가 등장합니다. 바로 아베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이라크 자위대 문서 은폐, 가케학원 특혜 의혹도 연이어 터져 나와 아베는 사면초가에 직면해 있습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반세기 전 미국에서도 시민들은 다름 아닌 ‘닉슨의 거짓말’에 분노했습니다.

‘워터게이트’ 파문은 점점 백악관을 가리키고 있는데 닉슨은 사건을 은폐하는 데만 전념했거든요.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에 모든 대화가 자동녹음되고 있는 테이프의 존재가 폭로되며 그는 코너에 몰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닉슨과 아베 모두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닉슨은 연임이 떼 놓은 당상일 정도로 지지율이 높았습니다. 아베 또한 ‘역대 최장수 총리’를 눈앞에 두고 있구요. 높은 지지율이 상식적인 사고를 가로막은 걸까요?

닉슨은 결국 상ㆍ하원까지 모두 등을 돌리자 탄핵 결의가 이뤄지기 직전 사임을 발표합니다. 벼랑 끝에서 무릎을 꿇은 셈이었죠.

1974년 8월 9일, 현직 대통령 닉슨과 워싱턴포스트의 파란만장했던 싸움은 '절대 권력'에 맞선 신문사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칼 번스타인(왼쪽)과 밥 우드워드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밥 우드워드 페이스북]

칼 번스타인(왼쪽)과 밥 우드워드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밥 우드워드 페이스북]

잠시 곁다리를 짚자면, 닉슨과 아베는 성장 과정이 크게 달랐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하버드 대학에 합격해놓고도 가지 못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열등감에 평생 고통받던 ‘흙수저’ 닉슨에 비해, 아베는 외조부가 총리를 지낸 정치 명문가에서 곱게 자란 '금수저'였습니다.

아베 총리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청년들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시부야 오빠’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눈물겹던데 말입니다.

함께 볼 만한 영화 ‘더 포스트’

얼마 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를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과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가 주인공인데요, ‘워터게이트’ 사건 직전에 있었던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다루고 있죠.
미국 정부가 30년 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담긴 국방부 문서를 둘러싼 이야기인데, '언론의 자유'란 묵직한 메시지에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여성 언론인의 활약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어 ‘스필버그의 페미니즘 영화’라고도 불리고 있죠.
참,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답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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