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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성이 망가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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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관청이 모여 있는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が關). 그중에서도 재무성은 최강 성청(省廳)으로 꼽혀 왔다. 재무성의 건물 모양이 日자를 하고 있어 재무성 직원들은 스스로를 “일본 그 자체”라고 부를 만큼 프라이드가 강하다. 예산편성권을 갖고 모든 부처의 정보가 모여드는 곳, 그래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곳이 바로 재무성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종 정권의 스캔들에 휘말려 위세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증언대에 선 재무성의 오타 미쓰루 이재국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연신 허리를 숙였다.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이 불거진 지난해 2월 재무성 소속 직원이 모리토모 학원 측 인사와 이른바 ‘말 맞추기’를 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그는 여당 의원으로부터 “바보냐”라는 질책까지 들었다. 기세등등했던 재무성 고위관료의 자존심이 바닥까지 떨어진 순간이었다.

이보다 불과 2주 전 국회에 출석한 또 다른 재무성 관료 출신 사가와 노부히사 전 국세청장. 그가 보인 모습은 180도 달랐다. 재무성의 무더기 문서조작이 밝혀진 상황. 그는 불리한 질문엔 “형사소추의 우려가 있다”며 요리조리 답변을 피해 갔다. 그러면서도 총리나 부총리 등 상부의 지시는 “일절 없었다”며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함)에 여념이 없었다. 대체 엘리트 관료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은 범죄행위를 왜, 누구를 위해 했단 말인가. TV 중계로 그의 답변을 보는 국민들은 “재무성이 완전히 망가졌다. 내가 다 부끄럽다”며 허탈해했다.

무소불위 재무성의 추락은 2012년 아베 2차 내각 출범 시기와 맞닿아 있다. 아베 총리는 정치의 관료지배를 선언하고, 권력을 총리관저로 집중시켰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재무성을 휘어잡는 것이었다.

정권은 인사를 통해 조직을 장악했다. 일부러 재무성 출신 관료는 ‘패싱’하고 경제산업성 출신을 발탁해 측근으로 뒀다. 정보는 자연히 재무성으로 모이지 않고 관저로 집중됐다. 지난해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국면에서 횡설수설 답변을 한 재무국장은 그해 여름 옷을 벗은 반면 온몸으로 방패막이가 된 이재국장은 승승장구했다. 그가 바로 사가와 전 국세청장이다.

재무성의 추락은 정치가 관료조직을 지배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보여 준다. 정권 입맛에 맞춰 관료를 줄 세웠을 때, 사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도 지난 정권의 사례를 통해 배웠다. 정치와 관료조직은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어느 나라에나 통하는 진리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