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산업은행, ‘마이너스의 손’을 거두어라

중앙일보

입력 2018.04.1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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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한국산업은행은 ‘신의 직장’이다. 신입사원 연봉이 5000만원에 달하고 임직원 연봉은 국책은행 최고 수준이다. 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 다른 국책은행이 덩달아 연봉을 높게 정하고 복리후생도 두텁게 하는 출발선이 된다. 이런 위상은 30년 전 개발도상국 시절 산은의 절대적 역할에서 비롯됐다. 가난한 나라의 기업들에겐 정책금융의 원천이었다. 대기업치고 산은 신세를 안 진 곳이 없었다. 산은 없는 한국의 산업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국책은행 시대적 역할 모두 끝나고 오히려 비효율 키워
전문성 없는 산은 이용하는 정치 없어져야 한국이 산다

하지만 산은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경제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길을 잃었다.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은 산은에 손을 내밀 이유가 없어졌다. 국책기관은 역할이 다했으면 민영화하거나 문을 닫는 게 순리다. 하지만 산은은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 길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부실기업을 떠안는 일이었다. 2003년 LG카드에 이어 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GM한국·STX조선 등 수많은 부실기업을 산은 자회사로 거느리게 됐다.

문제는 산은이 손대는 기업마다 천문학적 국민 혈세를 낭비한 뒤 더욱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군산·거제·통영·마산·울산에 이르기까지 한국 해안을 따라 즐비한 러스트벨트(Rust Belt, 제조업 쇠락지역)가 그 근거다. 산은이 손대는 기업마다 결국 공장 문을 닫거나 잘해야 법정관리 처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산은은 지금까지 130여개 부실기업에 손을 댔지만 대부분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손 대는 기업마다 이렇게 되니 ‘마이너스의 손’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효율이 만성화됐다는 사실이다. 산은은 “우리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는데 정부가 떠맡으라고 해서 받아들인 것일 뿐”이라고 토로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산은의 부실기업 군단은 모두 역대 권력의 정치적 판단 결과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 조선산업도 그중 하나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이 어려운데도 정치권은 이를 무시하고 정부를 통해 산은이 모르핀을 계속 공급하게 했다. 요컨대 정치가 관치를 만들어내고 관치가 다시 산은을 움직여 좀비기업들에 국민 혈세를 퍼주는 악성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산은이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할수록 확고한 신의 직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은은 최근 8년간에도 부실기업에 임직원 125명을 취업시켰다. 경영 감독이 명분이다. 사장부터 감사까지 전문성도 없는 산은 출신의 낙하산이 착착 내리꽂힌다. 하지만 손대는 구조조정마다 실패다.

대우건설에는 8년간 내리 세 명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내려갔다. 하지만 그 기간 중 대우건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호반건설로의 매각을 추진했지만 실사가 부실해 불발로 끝났다. 그러나 산은은 일언반구 책임도 없이 애꿎게도 대우건설 임원 12명 중 6명을 문책성으로 날려버렸다. 변명은 번드르르하다. “우리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떠맡았고, 개별 회사의 경영 정상화는 해당 회사의 임직원 손에 달려 있다.”

‘기업 한국’을 살리려면 산은에 대한 구조조정은 더 늦출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우선 산은을 정치논리와 관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치권력의 자세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구조조정 대상 지역에 대통령이 방문해 헛된 기대감을 심어주거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구조조정에 제동을 거는 정치 행위가 없어져야 한다. 전리품처럼 산은 회장을 임명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이야말로 끊어야 할 적폐다.

산은 내부적으로는 부실기업에 대한 임직원 낙하산을 중단해야 한다. 그 대신 유능한 경영자를 찾아서 맡겨라. 일본 정부는 2010년 파산 상태의 일본항공(JAL)에 이나모리 카즈오 교세라 회장을 투입해 단칼에 경영을 정상화했다. 벼랑 끝에 선 GM한국 사태가 미궁의 수렁에 빠진 것도 산은의 무능 탓이 크다. 산은 개혁 없이는 러스트벨트의 한숨만 깊어질 뿐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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