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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남매탑에 얽힌 기연에 마음을 뺏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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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20)

관음봉에서 바라본 삼불봉 방향 능선. 오른쪽 아래 동학사가 자리해 있다. [사진 하만윤]

관음봉에서 바라본 삼불봉 방향 능선. 오른쪽 아래 동학사가 자리해 있다. [사진 하만윤]

동학사 입구는 온통 봄빛이었다. 충남 제일의 명산인 계룡산이 사계절 산행지로 사랑받으면서도 특히 봄날 산행이 손에 꼽는 것이 이 때문일 것이다. 필자와 산행동호회 ‘7080산처럼’ 회원은 벚꽃 가득한 동학사 입구를 들머리로 상원암, 삼불봉, 관음봉, 연천봉을 지나 신원사로 하산하는 10km가량의 코스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계룡산은 1968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대전광역시와 공주시, 계룡시, 논산시에 걸쳐 있으며 대전시 서남쪽 동학사지구와 공주시 동남쪽 갑사지구로 나뉜다. 주봉인 천황봉에서 연천봉, 관음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이 흡사 닭 볏을 쓴 용을 닮았다고 해 ‘계룡(鷄龍)’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동학사 입구 벚꽃터널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다. [사진 하만윤]

동학사 입구 벚꽃터널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다. [사진 하만윤]

새벽 일찍 서울 사당을 출발한 버스는 2시간 30분가량을 달려 동학사 입구에 도착했다. 벚꽃이 만개한 동학사 입구는 상춘객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너나 할 것 없이 분주했다. 그 기분 좋은 분주함을 뒤로하고 천정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들어선다. 산은 이미 들머리부터 긴 겨울잠에서 깨어 파릇파릇한 모습이다. 꽃이 피고 싹이 텄다. 놀라운 건 이날 강한 바람이 잦고 체감온도가 영하에 가깝게 떨어져 흡사 초겨울 날씨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로 잡은 천정탐방지원센터. [사진 하만윤]

이번 산행의 들머리로 잡은 천정탐방지원센터. [사진 하만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상원암 가는 길  

천정골을 따라 오르는데 길을 따라 왼쪽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겨우내 얼어 있던 계곡은 맑고 깨끗한 물로 흘러넘쳤다. 큰배재를 지나 상원암까지 오르는 1시간 반 남짓한 이 길은 산책로처럼 평탄해 걷기가 수월하다. 주변 계곡이며 파릇파릇한 싹을 눈에 담고 오르기에 좋다. 큰배재에 오르자 볕이 들지 않은 북쪽면은 지난주에 쌓인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바람까지 차 새삼 옷을 여며야 했다.

천정골을 따라 큰배재로 오르는 길은 아직 겨울이다. [사진 하만윤]

천정골을 따라 큰배재로 오르는 길은 아직 겨울이다. [사진 하만윤]

큰배재에서 상원암까지 가는 길에는 봄과 겨울이 공존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서둘러 온 봄빛으로 물들고 북쪽은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이 미련을 떠는 모양이다. 오묘한 그 길을 따라 20분 남짓 걸어 상원암과 남매탑(청량사지 쌍탑)을 만났다. 이상보 작가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에서 읽었던 전설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마주한 남매탑이다.

신라 시대 당나라 승인 상원조사가 토굴에서 수도를 올리고 있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있어 자세히 봤더니 뼈가 있어 뼈를 빼줬다. 사라진 호랑이는 며칠이 지나 아리따운 처녀를 물어왔다. 상주사람인 그 처녀는 혼례를 치르는 날 호랑이에게 물려온 것이었다.

춥고 눈 많은 한겨울을 나고서 상원조사는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상원조사의 불심에 감복한 처녀와 처녀의 부모는 부부의 연을 맺어주길 바랐으나, 상원조사는 고심 끝에 남매의 연을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 불도에 힘쓰다 한날 동시에 열반에 들었다고 전한다.

당나라 승·호랑이·처녀 전설 얽힌 남매탑 

맑은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솟은 탑의 위용을 마주하며 ‘얼음장같이 차야만 했던 대덕의 부동심과 백설인 양 순결한 처자의 발원력, 비록 금수라 할지라도 결초심을 잃지 않은 산중 호걸의 기연이 한데 조화를 이룬’ 기운이 어딘가에 스며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 탑을 배경으로 단란한 추억을 기념하는 가족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일었다.

아내와 중학생인 아들과 함께 산행에 나선 7080산처럼 동호회 회원. 남매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사진 하만윤]

아내와 중학생인 아들과 함께 산행에 나선 7080산처럼 동호회 회원. 남매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사진 하만윤]

남매탑 주변 넓은 공터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동학사에서 올려다보면 세 명의 부처 모습을 닮았다는 삼불봉에 오르면 남쪽으로 동학사와 서쪽으로 갑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요 며칠 내내 미세먼지로 뿌옇던 서울 풍경만 바라보다,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산 구석구석까지 보이는 삼불봉에서의 풍경은 시나브로 가슴을 틔게 한다.

관음봉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삼불봉. 높지 않으나 산세가 수려해 절로 눈길이 향한다. [사진 하만윤]

관음봉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삼불봉. 높지 않으나 산세가 수려해 절로 눈길이 향한다. [사진 하만윤]

삼불봉에서 관음봉·연천봉 방향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다. 계룡산 주봉은 천황봉이나, 군사시설을 이유로 출입이 통제돼 있어 일반 등산객이 실제로 갈 수 있는 최고봉은 관음봉이다. 관음봉으로 가는 길은 조심히 올라야 한다. 곳곳에 안전을 위한 철계단이 놓여있고 절벽이 있어 몇 차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 관음봉을 오르는 마지막 계단이 눈앞에 들어온다.

계룡산 관음봉 정상석.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계룡산 최고봉이다. [사진 하만윤]

계룡산 관음봉 정상석.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계룡산 최고봉이다. [사진 하만윤]

힘들긴 해도 관음봉에 올라서면 그간 흘린 땀을 보상받고도 남을 만큼의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린다. 지나온 길도 좋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좋으리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실제로 관음봉에서 연천봉까지 가는 길도 좋고, 연천봉에서 신원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도 더할 나위 없다.

하산하는 길 곳곳에서 마주친 풀꽃 현호색 무리. 봄의 전령이다. [사진 하만윤]

하산하는 길 곳곳에서 마주친 풀꽃 현호색 무리. 봄의 전령이다. [사진 하만윤]

하산길 계곡물에 발 담그니 정신이 번쩍  

하산 길에 마주친 계곡과 물소리, 들풀이 발길을 자꾸만 멈추게 한다. 마음 따라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계곡에 발을 담그니 어찌나 차가운지 정신이 번쩍 든다. 올해 들어 처음 발을 담근 계곡인데 그야말로 얼음장이다. 그래도 산행의 피로를 씻기에 그 어떤 약보다 특효다.

신원사 입구 마을. 봄이 왔으되 동학사쪽과 달리 한산하다. [사진 하만윤]

신원사 입구 마을. 봄이 왔으되 동학사쪽과 달리 한산하다. [사진 하만윤]

하산 길 마지막인 신원사 입구는 들머리 동학사와 같고 또 달랐다. 만개한 벚꽃으로 봄이 왔으되 마을은 훨씬 더 한가롭고, 따사로운 봄볕에 제 빛깔을 온전히 드러낸 꽃잎은 산행의 즐거움을 배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천정탐방지원센터-큰배재-상원암(남매탑)-삼불봉-관음봉-연천봉-신원사. 거리 약 10km, 시간 약 5시간 50분. [사진 하만윤]

천정탐방지원센터-큰배재-상원암(남매탑)-삼불봉-관음봉-연천봉-신원사. 거리 약 10km, 시간 약 5시간 50분. [사진 하만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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