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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논리·팩트체크·농담 … 페이스북 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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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재우
심재우 기자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심재우 뉴욕특파원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10일(현지시간) 난생처음으로 미 상원 청문회장에 출석했다. 이례적으로 법사위와 상무위 소속 44명의 상원의원이 참석한 합동청문회였다.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상원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한명을 상대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저커버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회색 티셔츠 대신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와 파란색 넥타이를 갖춰 입고 나왔다. 증인석의 저커버그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8700만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해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 이용되도록 방조한 의혹를 사고 있다.

청문회 양상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청문회와 무척 달랐다. 재벌총수와 기업 CEO들을 앉혀놓고 의원들이 고성과 막말을 쏟아내고 호통으로 일관하는 풍경, 기업인들을 범죄자 집단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청문회장은 논리와 팩트체크로 채워졌다. 의원들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따끔하게 저커버그를 질타했다. 저커버그는 “개인정보 유출 건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며 사과했다. 리처드 블루멘탈 민주당 의원은 “2006년부터 개인정보 유출로 세 차례 사과하는 모습을 봤는데, 관련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일침을 놓았다. 존 테스터 민주당 의원은 “당신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데이터를 이용해 연간 4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며 “난 내 데이터로 한 푼도 벌지 못했다”고 데이터 이용의 투명성을 문제 삼았다.

딕 더빈 민주당 의원은 위트를 곁들여 저커버그를 코너로 몰았다. 그는 “어제 묶었던 호텔을 편하게 말해줄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저커버그는 웃음 지으며 “아니오”라고 답했다. 그러자 더빈 의원은 “그것이 당신 발언의 한계”라며 프라이버시는 돈벌이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날 의원들은 호통으로 자신을 알리기보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하나라도 더 캐묻는 게 청문회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저커버그로부터 의회가 제시하는 적절한 추가 규제라면 수용하겠다는 답변을 끌어내기도 했다. CNN은 ‘디지털 문맹’ 의원들이 수준 낮은 질의로 저커버그를 살려줬다고 진단했지만, 기업인을 윽박지르기보다는 성의있게 질문하고 받아적는 의원들의 모습이 부러운 현장이었다.

심재우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