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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무단폐수배출구만 16개?" 논란의 석포제련소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석포제련소에서 안동방향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경북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인근 낙동강 상류 유역. 검은색 폐기물이 덮혀 있다.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에서 안동방향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경북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인근 낙동강 상류 유역. 검은색 폐기물이 덮혀 있다. 백경서 기자

지난 10일 오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석포제련소 제3공장 앞 하천. 이태규 낙동강사랑환경보존연합회장이 하천에서 죽은 물고기를 발견했다. 국내에선 낙동강과 형산강에서만 발견되는 1급수 어종인 기름종개였다. 이 회장은 "위에서 내려온 것 같다"며 "여기에 더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했다.

석포제련소 제3공장앞 하천에 물고기가 죽어 있다.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 제3공장앞 하천에 물고기가 죽어 있다. 백경서 기자

하천 인근 땅속에는 검은색과 빨간색의 흙이 번갈아 보였다. 환경단체의 조사 결과 슬러지(폐침전물)는 검은색, 중금속은 빨간색의 진흙층을 만들었다. 석포제련소에서 안동댐 방향으로 40㎞ 떨어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인근 낙동강 상류로 향했다. 흙 속 상황은 제련소 앞과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폐침전물이 드러나 낙동강 유역이 온통 검은색이었다.

석포제련소 제3공장 앞 하천 흙 상태. 검은색 폐기물과 빨간 색 금속성분의 진흙.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 제3공장 앞 하천 흙 상태. 검은색 폐기물과 빨간 색 금속성분의 진흙. 백경서 기자

이 회장은 "석포제련소 근처에선 유속이 높아 침전물이 드러나지 않지만 여기서부터 쌓이기 시작한다. 안동댐 바닥엔 평균 3m 정도 퇴적층에 폐침전물과 중금속이 1만5000t 이상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물을 1100만명이 마신다"고 했다.

환경단체가 촬영해 공개한 낙동강 상류 안동댐 부근의 오염 실태. [사진 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환경단체가 촬영해 공개한 낙동강 상류 안동댐 부근의 오염 실태. [사진 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세계 4위 규모의 아연제련소인 석포제련소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영풍문고로도 알려진 영풍그룹이 운영한다. 1970년 공장을 가동해 올해 48년째로, 연매출만 1조4000억원이다. 하지만 낙동강 환경오염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왜 논란은 멈추지 않는지, 해결책은 없는지 들여다봤다.

석포제련소 "폐수 몰래 흘려보내는 하수구가 16개나 된다니…말도 안 돼"

석포제련소에서 폐수를 정화해 흘려보내는 배관.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에서 폐수를 정화해 흘려보내는 배관. 백경서 기자

지난 10일 오전 경북 봉화군 석포제련소 제1공장 정조시설. 석포제련소 측에서 폐수가 나가는 배관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제련소에서 폐수를 정화해 하천으로 내보내는 배관은 단 하나라고 했다. 육안상으로 깨끗해 보이는 물이 하천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최근 무단 폐수 방류로 조업정지 20일 처분을 받은 뒤 설치한 폐쇄회로TV(CCTV)와 자동개폐시스템도 있었다. 지난 2월 24일 폐수처리공정에 오류가 발생해 완전하게 처리되지 못한 폐수 70여t이 흘러나갔다. 지나가던 주민이 미생물에 뒤덮여 하얗게 변한 하천을 보고 놀라 면사무소에 신고했다.

석포제련소에서 폐수를 정화해 흘려보내는 배관. 오류로 정화되지 못한 폐수가 발생하면 시스템이 닫히고 아래 배관이 열려 저장소로 폐수가 빠지도록 설치했다.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에서 폐수를 정화해 흘려보내는 배관. 오류로 정화되지 못한 폐수가 발생하면 시스템이 닫히고 아래 배관이 열려 저장소로 폐수가 빠지도록 설치했다. 백경서 기자

이에 경북도는 석포제련소에 조업정지 20일 처분을 내렸다. 석포제련소 설립 후 첫 조업정지다. 이후 석포제련소는 폐수가 잘못 흘러갈 시 CCTV로 상황을 확인하고 자동개폐시스템이 작동해 폐수가 공장 아래 저장소로 떨어지도록 설비를 구축했다.

석포제련소에서 폐수를 정화해 흘려내보내는 하천.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에서 폐수를 정화해 흘려내보내는 하천. 백경서 기자

배상윤 석포제련소 관리본부장은 "제련소에서 폐수를 몰래 흘려보내는 하수구가 16개나 된다는 괴담도 돌지만 단 한 곳뿐"이라며 "그동안 환경문제에 소홀했던 점을 반성하고 2019년까지 4333억원을 들여 무방류시스템 등을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방류시스템은 공장에서 나오는 물을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건조 등을 통해 내부에서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국내에는 아직 설치된 곳이 없다. 당초 2020년까지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논란이 심해지면서 1년 더 앞당기기로 했다.

폐쇄 요청에도…48년째 영업 중

환경단체는 수십 년 전부터 석포제련소의 폐쇄를 요청하고 있다. 석포제련소를 낙동강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석포제련소 주변지역 환경영향 조사' 결과 석포제련소 반경 1.5㎞ 내에서는 제련소의 토양 오염 기여율이 52%, 1.5~4㎞에서는 3%였다. 반경 4㎞ 이내 전체로는 10%의 오염 기여율을 보여 4만5058㎥의 토양이 제련소 탓에 오염된 것으로 분석됐다. 오염물질 양이 25t 덤프트럭 2700대 분량이다.

환경단체들은 석포제련소로 인한 오염이 조사 결과보다 더 심하다고 주장한다. 이 회장은 "석포제련소 인근에는 유속이 높아 폐기물이 떠 내려오면서 오히려 안동댐 인근이 더 오염됐다"며 "환경부는 범위를 석포제련소에서 안동댐까지 넓혀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석포제련소 인근 산. 30년 전 산불 이후 나무가 더이상 자라지 않는다.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 인근 산. 30년 전 산불 이후 나무가 더이상 자라지 않는다. 백경서 기자

반면 석포제련소에서는 "안동댐의 주 오염원인은 인근에 있는 폐광산"이라고 주장한다. 석포제련소는 지금은 폐쇄된 인근에 있는 아연광산에서 나오는 아연을 제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1990년대 아연광산이 문을 닫자 원료를 수입해 제련하고 있다. 오염의 주원인은 폐광산이고 그 광산은 석포제련소의 책임아래 있지 않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폐광산은 과거형이지만 석포제련소는 현재진행형"이라며"현재 오염의 주원인은 석포제련소"라고 주장한다.

영풍 석포제련소 침전조. 지난달 26일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침전조에서 굳은 침전물을 유화시키는 작업을 하던 중 미끄러져 비소를 흡입해 사망했다. 백경서 기자

영풍 석포제련소 침전조. 지난달 26일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침전조에서 굳은 침전물을 유화시키는 작업을 하던 중 미끄러져 비소를 흡입해 사망했다. 백경서 기자

최근 발생한 안전사고는 제련소 폐기물의 위험성을 새삼 부각했다. 지난달 26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영풍석포제련소 침전물 처리 공장. 침전물이 굳어 공정이 멈췄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하청업체 직원 세 명이 삽을 가지고 들어갔다. 현장에는 아연·비소 등 중금속과 진흙이 섞인 침전물이 성인 무릎 높이(60㎝)로 쌓여 있었다. 굳은 침전물을 풀기 위해 삽을 휘두르던 장모(69)씨가 순간적으로 침전물에 미끄러졌다.

석포제련소 내 걸려있는 안전 준수 지침. 백경서 기자

석포제련소 내 걸려있는 안전 준수 지침. 백경서 기자

동료들이 장씨를 일으켜 황급히 물로 입을 헹구게 한 뒤 인근 태백시의 한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장씨는 지난 2일 '비소 중독'으로 결국 사망했다. 넘어지면서 비소를 들이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작업 당시 장씨와 동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잠깐 넘어져 흡입한 것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정도라면 폐기물이 얼마나 맹독성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석포면에는 "석포제련소 매도하지 말라" 현수막 

경북 봉화군 석포면 일대에 석포제련소에 부정적인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백경서 기자

경북 봉화군 석포면 일대에 석포제련소에 부정적인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백경서 기자

 공장이 있는 석포면 주민 대부분은 석포제련소 폐쇄를 반대하고 있다. 석포면 인구  2215명 중 37.7%(836명)가 석포제련소와 협력 업체 등에 종사해서다. 주변상권까지 합치면 제련소가 석포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실제 석포제련소에 인근에는 "30년전처럼 이제 더는 폐수를 버리지 않는다. 기자들은 기사를 남용하지 말아라", "환경오염은 석포제련소 탓만이 아니다"는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다.

석포면에 걸린 현수막. 백경서 기자

석포면에 걸린 현수막. 백경서 기자

해결책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석포제련소가 이행하겠다던 환경오염 방지책 등에 관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민경석 경북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석포제련소·환경단체·주민 등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이지만 환경이 오염된 건 분명하다"며 "환경부에서는 적극 규제책과 협의회를 마련하고 석포제련소에서는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임덕자 낙동강사랑환경보존연합회 간사는 "최근 직원 사고만 봐도 공장자체가 낙후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석포제련소는 환경단체와 소통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공장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배 관리본부장은 "이전에 환경관리에 등한시 했던 점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며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꾸준히 소통하고 제대로된 환경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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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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