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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이 보호하려 인질범과 대화 … 교감은 현장에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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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방배초 보안관 "보안관, 하찮은 사람…사실은 정확하게 알려져야"

“억울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있었던 사실이 정확하게 알려지면 좋겠다는 심정이에요.”

10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울 방배초등학교 보안관 최광연(64)씨가 말했다. ‘대낮 인질극’이 벌어진 지 약 일주일 후 만난 최씨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사양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이름을 적지 않고 인질범을 들여보낸 것은 잘못이지만 이후 초동 대처에 최선을 다했기에 아이가 다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학교 측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징계하겠다는 얘기만 한다. 사직서를 낼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학교의 누구도 비판할 생각은 없다. 가능하다면 지금도 끝까지 사랑하는 학교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또 “가장 먼저 인질범과 대화를 했고 교무실에서 교감을 보지 못했다”는 기존 발언도 반복했다. 그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지난 2일 인질극이 벌어진 서울 방배초등학교의 보안관 최광연(64)씨. 송우영 기자

지난 2일 인질극이 벌어진 서울 방배초등학교의 보안관 최광연(64)씨. 송우영 기자

거절하던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평소 육군사관학교 동기들에게 "방배초 보안관으로 일한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대령으로 전역하고 뭐 그런 일까지 하냐"는 동기들도 있지만 난 아이들을 보호하고 학교를 지키는 내 일이 자랑스럽다. 스스로 ‘천사 지킴이’라는 별명도 붙였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 잘못만 얘기하며 징계하겠다고 한다. 불명예를 당하면서까지 여기에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상황이 그렇다면 있었던 사실들을 정확하게 알리고 싶었다.  
학교 측도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을 알고 있나.
여러 의문을 풀기 위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 모여 기자간담회를 하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기자들은 듣고도 잘못된 기사들을 쓰니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언론은 물론 학부모들과도 대화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인질범의 이름을 적지 않은 것은 사실 아닌가.
그것은 내 잘못이 맞다.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면 질 것이다. 하지만 평소 신분증을 확인하라는 지시는 4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인질극이 벌어진 날 아침에 젊은 체육 교사가 나에게 욕설을 했다. 차를 타고 과속하길래 "아이들이 있는 교내에선 속도를 줄이라"고 했더니 항의하며 욕설을 수차례 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 교무부장에게 드릴 보고 문서를 글로 쓰던 중에 인질범이 정문에 왔다. 당시 방문한 학부모가 있어서 안내도 하고 있었다.
인질극 소식은 바로 들었나.
인질범이 들어간 직후 "교무실로 와달라"는 여교사의 전화를 받았다.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교무실로 달려갔더니 범인이 아이에게 칼을 대고 있었다. 안에 있던 여교사와 여직원은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양쪽 벽에 말없이 서 있었다.
인질범에게 무슨 말을 했나.
‘아이의 오빠인가요. 요구사항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아이는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가 처음 건넨 말이었다. 군인일 때 위험한 현장에 많이 가봤기 때문에 무섭진 않았다. 다만 범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바닥에 엎드려서 천천히 다가갔다. 대화도 일부러 많이 시도했다. 아이가 다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하면서 5분 정도만 시간을 끌면 경찰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흥분시키지 않아야 아이가 안전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범인은 뭐라고 하던가.
범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중간에 내 말을 들으면서 두 번 빙긋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경찰과 기자를 불러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도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경찰이 올 때가 거의 다 됐다고 생각했을 때쯤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면서 나왔다. 5분 정도는 안에 있었던 것 같다.  
“교감이 먼저 인질범과 대화를 시도했다”고 발표한 학교는 뒤늦게 “초기에 상황이 매우 긴박하고 경황이 없어 사안 개요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문제다. 학교에서 보안관은 하찮은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지금도 수많은 보안관이 홀대받고 있다. 분명한 건 한참 대화를 시도하다 나올 때까지 교감은 교무실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질범과 대화할 당시 교감은 교무실 안에 없었다”는 최씨의 증언은 “인질극 직후 바로 교무실로 가서 범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경찰이 도착해 모두 나오라고 할 때까지 교장에게 보고 전화를 하러 나온 잠깐을 제외하고는 계속 범인과 대치했다”는 교감의 주장과 상반된다. 교무실이 있는 건물 입구의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보면, 당시 교감은 최씨가 들어간 직후 그 건물에 들어갔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교무실이 있는 건물에 들어간 두 사람이 모두 “바로 교무실로 들어가 오랫동안 인질범과 대화를 시도했다. 다른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해 범인을 설득하다 제압한 정근하 이수파출소 팀장은 “우리가 교무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교감은 없었다. 사람들을 내보내고 복도를 통제할 때 복도에서 교감을 보기는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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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보다 50초 늦게 그 건물에 들어간 교감은 "바로 교무실에 들어갔지만, 보안관을 보지 못했다. 잠깐을 제외하고는 경찰이 올 때까지 범인과 대치하며 상황을 지휘했다"고 하던데.
내가 답변하기 조심스러운 문제지만, 나는 교감을 보지 못했다. 내가 범인과 대화한 시간이 50초보다 짧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누가 그러던데,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수 분간 교무실 안에 머물렀다. 범인에게 직접 확인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 다른 사람들도 있지 않았나.
나보다 조금 늦게 교무실에 온 시설관리 담당자도 "교무실 안에서 교감 등 다른 사람은 못 봤다"고 했다. 또 내가 나온 이후 교무실에 들어가 경찰이 올 때까지 있었던 한모 교사도 "교무실 안에서 교감 선생님은 못 봤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인질범이랑 대화하셨냐"고 물었더니 "그러다가 애가 칼에 찔리면 어떡합니까. 나는 그 상황에서 범인에게 말을 걸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라고 하더라.  
징계 통보를 받았나.
계속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교장과 교육청에서 온 장학사에게 징계 의사를 통보받은 상태다. 중령 때인 1993년 소말리아, 대령 때인 2003년 이라크에 지휘관으로 파병을 다녀 왔다. 보국 훈장도 받았고, 전쟁기념관에는 내가 해외 파병 당시 사용했던 지휘봉과 전투복도 진열돼 있다. 군인 정신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근무했는데, 내가 한 실수보다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솔직히 안타깝다. 나는 지금도 매일 운동장 10바퀴를 뛰고, 복싱 연습을 한다. ‘묻지 마 폭행범이 혹시 학교에 들어오면 신속하게 제압한다’는 신조를 갖고 항상 3단 봉을 갖고 다니며 근무했다.
‘보안관을 지켜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도 올라왔다.
2000명 가까이 동참해주신 시민들께 감사하다. 학생과 학부모들도 응원 문구를 담은 손편지와 음료수를 계속 주신다. 주로 ‘응원한다. 보안관님이 계속 계셨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졸업생과 한 선생님이 주신 편지도 읽고 큰 힘을 얻었다. 
최씨가 학생과 학부모 등에게 받은 응원 편지. 송우영 기자

최씨가 학생과 학부모 등에게 받은 응원 편지. 송우영 기자

지금은 방배초가 방문자의 신분증을 제대로 확인하고 있나.
그동안 한 번도 하라고 한 적이 없던 신분증 확인을 꼭 하라는 지침이 내려와서 그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신분증이 없다며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고, 보안관실에는 신분증을 보관할 장소도 없다. 실제 아이들을 위한 안전 조치들이 실현될 수 있는 상황과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송우영·정용환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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