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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금메달 박탈하라? 전명규 논란 본질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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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빙상경기연맹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김보름·노선영·박지우의 팀워크 실종 논란에 이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의 금메달을 위한 정재원의 희생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이런 논란의 원인으로 빙상연맹 행정의 독점적 권한이 특정인에게 집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주인공으로 한국체대 교수인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지목됐다.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

이승훈 메달을 박탈하라? 대중이 분노한 이유 

지난 7일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가 '겨울왕국 그늘-논란의 빙상연맹' 편을 통해 전명규 교수의 권력 남용의 전횡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본 대중들의 분노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프로그램에선 전 부회장에게 특혜를 입은 대표적인 선수로 이승훈이 지목됐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빙상연맹 수사 촉구, 전명규, 백철기 수사 촉구' 글부터 '전명규 비리, 이승훈 금메달 박탈'에 관한 글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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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중들이 유독 분노한 부분은 '쇼트트랙 천재'로 꼽혔던 고(故) 노진규(1992~2016) 죽음에 얽힌 주장이었다. 노선영 동생인 노진규는 악성 골육종이 폐로 전이돼 지난 2016년 4월 숨졌다.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노선영 어머니는 "진규가 경기 중 어깨를 다치면서 병원에서 양성 종양 진단을 받았다. '200만분의 1은 악성으로 갈 수도 있으나 지금은 양성이다'고 했다"며 "전(명규) 교수에게 전화해 '수술부터 하자'고 했지만, 전 교수는 '올림픽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고 반대했다"고 말했다.

2013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노진규. [중앙포토]

2013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노진규. [중앙포토]

[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일부 네티즌들은 '금메달을 위해 아픈 노진규를 희생시켰다'고 분노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여러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 부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다. 빙상연맹도 이번 논란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성과주의 시절, 전명규 부회장은 '빙상계 히딩크'였다 

전명규 부회장의 논란은 성과주의에 대한 관점 변화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 한국 체육계는 엘리트 체육이 발달하면서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컸다.

그 결과 겨울종목 불모지였던 한국은 1987년 쇼트트랙이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자 '쇼트트랙 금메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혹독한 훈련과 다양한 작전을 구사해 쇼트트랙을 효자종목으로 키웠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전두 지휘한 지도자가 전명규 부회장이다.

1998 나가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선수단이 전명규 감독의 지도 아래 마무리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1998 나가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선수단이 전명규 감독의 지도 아래 마무리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전명규 부회장은 1988년 캐나다 캘거리 겨울올림픽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까지 15년간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을 맡아 이준호·김기훈·채지훈·전이경·김소희·김동성 등 스타들을 지도하며 총 11개의 금메달과 3개의 은메달, 그리고 4개의 동메달을 이끌어냈다. 올림픽뿐 아니라 전명규 부회장이 이끈 한국 쇼트트랙은 세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 등에서 700개가 넘는 메달을 따내며 세계 정상을 달렸다.

이후에는 한체대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과 쇼트트랙 심석희, 임효준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키웠고, 2009년부터 빙상연맹 부회장을 맡아 빙상계의 대부로 통했다. 또 전명규 부회장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만든 것처럼, 한국 빙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성과를 인정받아 '빙상계의 히딩크'로 불리기도 했다. 2000년에는 체육훈장 청룡장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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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의 전명규 감독. [중앙포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의 전명규 감독. [중앙포토]

개인의 희생으로 얻은 금메달은 부당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민들도 금메달 지상주의를 꺼려하고 있다. 노메달 선수에게는 질타가 아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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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부터 전명규 부회장의 성과주의식 지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 부회장은 2010년 짬짜미(승부 담합) 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연맹 행정에서 물러났다. 얼마 후 다시 복귀했지만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불거진 한체대-비한체대 간 파벌 논란으로 사퇴했다. 그러나 지난해 평창올림픽 선전을 위해 부회장직으로 또 복귀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메달 가능성 높은 선수를 위해 다른 선수를 희생시켰다는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오른쪽)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고 8위를 기록한 정재원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오른쪽)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고 8위를 기록한 정재원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전 국가대표 출신 빙상인 A씨는 "전명규 부회장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에 대해선 빙상연맹은 물론 빙상인들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과가 커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당장 평창올림픽에서도 전 부회장의 방식이 통했다. 논란이 있긴 했지만 매스스타트에서 2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래서 연맹 내부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통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빙상인 B씨 역시 "선수들은 올림픽을 위해 인생을 바친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전 부회장이나 연맹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노선영도 전명규 부회장과 연맹과 처음부터 대립하지 않았다. 비판은 전 부회장과 연맹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A와 B씨는 모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빙상계 혁신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정영린 카톨릭관동대학교(스포츠레저학) 교수는 "전명규 부회장에게 쏠린 독점적 권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빙상혁신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연맹의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현재 집행부 인사를 배제하고, 관리·감독기관인 문체부 또는 대한체육회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김효경·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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