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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어떻게 플루트 강국이 됐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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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플루티스트인 엠마누엘 파후드.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플루티스트인 엠마누엘 파후드.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 명단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플루트 수석 두 명,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플루트 수석은 프랑스 연주자다. 빈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보우, 뉴욕필의 플루트 수석은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플루트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대다수의 연주자도 프랑스 스승을 두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 프랑스는 독특한 색채를 가진 곳이다. 음악사에서 독일ㆍ오스트리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면 프랑스는 고유한 음색과 작곡법으로 또다른 줄기를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플루트를 비롯한 관악기에 관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프랑스는 플루트 강국이다. 베를린필의 플루트 수석 엠마누엘 파후드(48)는 “프랑스의 관악기 역사에는 중요한 순간마다 선도적인 인물이 있었다”며 “이들이 역사와 전통을 일궜다”고 전화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파리 음악원을 졸업하고 23세에 베를린필에 입단한 프랑스인이다.

파후드는 “프랑스 관악기의 발전은 프랑스 혁명 직전에 일어났다. 특히 목관악기의 연주와 제작 기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모차르트 시대에 프랑스와 드비엔느(1759~1803)는 플루트·바순의 명인이었고 목관악기 최초의 대중 콘서트를 열었다.” 작곡가 포레ㆍ드뷔시ㆍ라벨이 프랑스 목관악기의 전통을 발전시켰고 교육자인 폴 타파넬, 필리프 고베르가 전통적인 플루트 기법을 설명하는 교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파후드는 “러시아의 피아노, 동유럽의 바이올린과 같이 프랑스 플루트 연주자들이 공유하는 독특한 색채가 있다”며 “이는 프랑스 음악학교들이 300년 넘게 물려받아 쓰고 있는 교재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음계와 화음의 기본적인 테크닉을 아주 높은 수준으로 완성하는 것이 프랑스 플루트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에 플루트 뿐 아니라 바순ㆍ클라리넷과 같은 목관악기의 경우 프랑스에서 새로운 악기, 제작자, 스승, 작곡가가 잇따라 나왔고 놀랄만한 발전의 역사가 이뤄졌다”고 했다. 영국ㆍ독일에서는 일부 목관악기의 종류에 ‘프렌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렌치 호른’ ‘프렌치 바순’ 등의 이름은 관악기 분야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프랑스의 관악기 전통을 보여주는 팀 '레 벙 프랑세'. [사진 마스트미디어]

프랑스의 관악기 전통을 보여주는 팀 '레 벙 프랑세'. [사진 마스트미디어]

파후드는 2003년 프랑스 관악 연주자를 중심으로 5중주단을 만들었다. 프랑수아 를뢰(오보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질베르 오댕(바순, 파리국립오페라 수석), 라도반 블라트코비치(호른,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 수석), 폴 메이어(클라리넷, 전 서울시향 부지휘자), 그리고 프랑스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에릭 르 사주가 멤버다. 앙상블의 이름은 ‘레 벙 프랑세(Les Vents Francais)’ 즉 ‘프랑스의 바람’이다. 결성 15년 만인 17일 첫 내한 공연을 연다. 파후드는 “나이는 15년까지 차이가 나는 멤버들이지만 2000년에 독일ㆍ스위스ㆍ일본에서 첫 연주를 한 후 생각이 잘 맞아 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플루트ㆍ오보에ㆍ클라리넷ㆍ바순ㆍ호른은 관악기 가족을 완성한다. 파후드는 “역사적으로 작곡가들은 이 조합을 좋아해 많은 목관 5중주곡을 남겼고 우리는 그 작품들을 탐험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다.

앙상블의 거의 모든 멤버가 오케스트라 단원이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는 쉽지 않다. 파후드는 “나의 경우 1년에 4~6주는 레 벙 프랑세의 연습과 연주를 위해 쓴다”며 “베를린필 멤버로서 공연뿐 아니라 솔로 연주 60회, 실내악 연주 20회 정도를 매년 소화하려면 준비가 잘 돼 있어야 한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바쁜 중에도 프랑스 관악기의 색채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그림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게, 프랑스 관악 연주자들의 공통적인 색채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맥락과 스타일에 따라 음색이 유연하게 변하는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는 유연성과 다채로움을 레 벙 프랑세의 특징으로 들었다. 그는 “우리가 공부한 프랑스 유파의 전통에 따라 모든 작품을 대할 때마다 색채를 다양하게 바꾸는 것이 목표”라며 “그렇게 접근하고 연주해 작품에서 작곡가가 의도했던 것을 정확히 전달하고 음영이 분명한 음악적 표현으로 말없이도 스토리를 전하려 한다”고 했다.

레 벙 프랑세는 그동안 모차르트·베토벤은 물론,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까지 찾아 소개해왔다. 다양한 작곡가의 관악기 작품을 담아 2014년부터 이달 6일 나온 앨범까지 총 4장의 음반을 내놨다. 파후드는 “관악 5중주, 혹은 피아노를 포함한 6중주는 정교하게 일치시켜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앙상블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매년 연주를 위해 만나서 다음 해에 할 작품을 결정하는 식으로 15년동안 활동했다”고 전했다. 이번 첫 내한 공연에서는 이베·미요·풀랑크 등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들려준다. 파후드는 “영국ㆍ독일에서 붙인 ‘프렌치 바순’ 등의 이름은 사실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 프랑스 연주자에게는 관악기의 소리 자체가 자연스러운 모국어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공연은 1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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