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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육군훈련소 24시간 밀착 취재…배우 이민호 모습도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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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르포] 훈련병의 24시간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문 너머의 새벽은 안개 속에 조용했다. 오전 6시. 훈련소의 아침은 요란한 기상 나팔 대신 훈련병이 거주하는 생활관에 조용히 실내등이 켜졌다. 모포를 정리한 뒤 세면장에 모여든 훈련병의 얼굴에선 긴장감 속에도 여유가 느껴졌다. 예전처럼 딱딱한 아침 점호도 없었다. 간부들이 밤 사이 아픈 훈련병이 없었는지 확인만 했을 뿐, “총원 00명, 현재원 00명”과 같은 보고는 이미 옛말이다.

5주 기초훈련, 연 12만 명 정병육성 현장 #점호 보고·아침 구보 융통성, 달라진 모습 #실내 공기청정기, 초미세먼지 '매우좋음' #배우 이민호, 각개전투 '구슬 땀' 흘려

육군훈련소 상징물인 멸공상 [사진 육군]

육군훈련소 상징물인 멸공상 [사진 육군]

지난 2일 충남 논산시에 위치한 육군훈련소의 하루를 밀착 동행 취재했다. 육군훈련소는 훈련병이 5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며 군 생활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육군 당국은 ‘무계획’, ‘무제한’ 돌발 취재까지 허가했다. [J가 가봤습니다] 훈련병의 하루를 기상부터 취침까지 낱낱이 함께 해봤다. 삼시세끼를 훈련소에서 해결하면서 부실 식단 논란의 진실도 현장에서 체험했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아침 뜀걸음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아침 뜀걸음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하루 훈련은 뜀걸음(구보)으로부터 시작했다. 오전 6시 30분. 훈련병들은 삼삼오오 연병장 앞에 모이더니 중대별로 질서 정연하게 총원을 보고한 뒤 뛰기 시작했다. 각 중대마다 “하나 둘” 또는 ‘전선을 간다’ 군가를 부르며 열을 맞추어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군대엔 역시 역동성이 있었다. 정예 병사를 양성하는 훈련소가 캠핑장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전날 훈련 피로가 많이 쌓여 어려움이 있는 경우 뜀걸음을 생략해주기도 한다”고 부대 관계자가 귀띔해줬다. 훈련소장 면접을 거쳐 훈련병 중에서 선발된 분대장이 책임감을 갖고 이끌었다. 한 생활관에는 분대장으로 선발된 훈련병의 이름을 딴 ‘임병준 분대’라는 간판도 달아 자부심을 높였다.

훈련소에서 최고의 시간은 역시 식사 때였다. 이날 아침에는 닭볶음과 어묵국이 나왔다. 28연대 박유빈 훈련병은 “학교 급식과 수준 차이가 없다. 잡채밥이 가장 맛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래서 “(훈련 뒤 근무하는)자대보다 훈련소 밥이 더 맛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훈련소는 일반 부대보다 13% 초과 급식을 실시한다. ‘작전에 실패해도 용서받지만, 배식에 실패하면 처벌받는다’는 병사들 사이의 농담도 있지만 지금은 초과 급식을 하기 때문에 일부 훈련병들이 좀 더 많이 먹어도 음식이 모자라는 일은 없다고 한다. 최근 “훈련소 식단에 어묵 세 점과 고추가루 국만 나왔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외부에서 제기된 추측과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식사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식사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육군훈련소에는 약 2만 여명(훈련병 1만 5000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 평균 닭고기 827마리, 쌀 200가마 등을 소비한다. 훈련소는 정량 급식을 위해 탕수육을 나눠줄 때는 전자 저울까지 동원했다. 음식의 질도 중요해 쇠고기를 비롯한 모든 식자재는 국산만 취급한다. 부식에 대한 검수는 필수다. 훈련소 지구병원은 식품 성분 분석도 실시해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방한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잠시 휴식한 뒤 곧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병들은 사격장, 화생방 교육장 등 영외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가까운 훈련장은 30분, 가장 먼 곳은 1시간 40분 가량 걸어가야 한다. 훈련병들은 훈련소 영내를 벗어나는 다리를 ‘통곡의 다리’로 부른다. 먼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물론, 야외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하는 게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량으로 이동할 수는 없는지 물어봤다. 군 관계자는 “교육대(900명) 또는 연대(2700명) 단위로 이동하기 때문에 100여 대가 넘는 차량이 필요하다”며 “야외 훈련장으로 접근하는 통로가 좁은 길이라 대형 차량으로 이동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육군에선 이동을 위해 걷는 것도 훈련의 일부로 보고 있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영외 훈련장으로 이동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영외 훈련장으로 이동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사격장에 도착해 보니 영점 사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총의 조준점과 탄착점이 일치되도록 조준구를 정렬하는 사격훈련이다. 훈련병이 쏜 총알이 정확하게 날아가는지 확인하고 기본적인 사격 절차를 숙달하는 과정이다. 사격장에 들어서기에 앞서 안전수칙을 크게 외쳤다. 방탄모 착용도 확인했는데 기자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됐다. 훈련병은 영점 조준용 5발 사격을 마친 뒤 조준점을 빗나간 표적지를 확인했다. 이때 교육대장이 “격발시 몸이 움직이더라, 탄착군은 잘 형성됐는데 호흡 조절이 문제”라며 친절하게 알려줬다. 사격을 위해 방아쇠를 당길 때는 잠시 호흡을 멈춰야 하는 규칙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영점사격 결과 후 지도하는 교관의 모습[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영점사격 결과 후 지도하는 교관의 모습[사진 육군]

육군훈련소는 정신교육ㆍ제식ㆍ경계ㆍ구급법 등 전투원 양성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육군훈련소는 과거 논산훈련소로 불렸는데 1999년 부대명칭을 바꿨다. 훈련소 면적은 총 136만 평, 여의도의 1.3배 수준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군 교육기관으로 육군 병사의 45%, 연간 12만 명을 배출한다. 이날 오후에도 입영행사가 열렸다. 입대를 앞둔 장정과 친인척들은 ‘안녕고개’를 넘어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육군훈련소장인 구재서 소장은 “최근 연병장에 잔디를 깔고, 스탠드를 설치해 훈련소를 찾은 가족들의 편의를 개선했다”며 “군대에 대한 첫 인상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열린 입영식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열린 입영식 모습 [사진 육군]

훈련은 오후에도 이어졌다. 화생방 훈련장에선 핵ㆍ화학전 생존법을 훈련했다. 핵 공격이 발생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땅 바닥에 엎드려 폭풍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때 지면으로 전해지는 폭발 충격이 복부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복부가 땅에 완전히 닿지 않도록 띄웠다. 폭발 시 발생하는 폭음과 섬광도 치명적이라 손가락으로 눈ㆍ코ㆍ귀를 가린 상태로 유지했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핵무기 공격 상황을 두고 화생방 교육 중인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핵무기 공격 상황을 두고 화생방 교육 중인 모습 [사진 육군]

방독면을 착용하고 가스실(화생방 오염환경 극복훈련장) 앞에 선 훈련병들은 긴장감이 역력했다. 27연대 김병조 훈련병은 “무섭지만 잘 하겠다”며 “부모님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그러나 악명 높았던 가스실 체험 훈련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정화통을 분리한 뒤 군가를 부르며 눈물, 콧물을 흘리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훈련은 분리된 정화통을 곧바로 재결합하면서 빨리 끝났다. 밖으로 나온 뒤에는 얼굴에 물을 끼얹어 고통을 덜어줬다.

야전에서 이뤄지는 근접전투인 각개전투 훈련장에선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최근 입대한 배우 이민호 훈련병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고 있었다. 이 훈련병의 큰 키가 훈련병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였다. 군 관계자는 “동료 훈련병과 잘 어울리며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전투 상황에서 기동과 은폐ㆍ엄폐 등 생존 능력을 키우는 각개전투 훈련은 가장 힘든 훈련 중 하나로 꼽힌다. 이날 포복 훈련에 나선 훈련병들의 거친 호흡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각개전투 훈련 중인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각개전투 훈련 중인 모습 [사진 육군]

훈련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부상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 구급차와 의료진이 항상 동행한다. 지구병원에는 응급실과 단층촬영(CT) 시설도 갖췄다. 하지만 일반 치료는 다소 기다려야 하는 문제도 있다. 대부분이 감기 환자인데 군의관이 부족해서다. 한 훈련병은 “지금보다 더 빨리 치료받고 싶다”고 말했다.군 관계자는 “4월 중에 연대 의무실에 군의관 1명을 충원해 3명이 교대 근무할 예정”이라며 “최근 지구병원에는 응급 전문자격을 갖춘 군의관 3명을 배치했다”고 소개했다.

육군훈련소 영내에 위치한 지구병원 입구 [사진 육군]

육군훈련소 영내에 위치한 지구병원 입구 [사진 육군]

훈련소는 지난해 ‘폐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폐렴 환자가 46명(1월)에서 119명(3월)으로 급증해서다. 8월부터 ‘폐렴환자 저감 특단 대책’을 실시해 ▶가글 ▶소독 ▶한방차 제공 ▶비타민C 복용 ▶마스크 착용 등을 강화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이후 월 평균 환자가 17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지난 12월부터는 공기청정기도 시범적으로 배치했다. 그러자 실내의 초미세먼지 수준이 나쁨에서 매우좋음으로 나아졌다. 군 당국은 내년엔 훈련소 예산을 대폭 늘려 모든 생활관에 설치할 계획이다.

육군 훈련소에서 시범 운용하는 공기청정기 [사진 박용한]

육군 훈련소에서 시범 운용하는 공기청정기 [사진 박용한]

저녁 식사 후 들어선 샤워시설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했다. 온수 공급은 문제가 없었지만 구형 막사의 샤워시설은 낙후됐다.한 훈련병은 “샤워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줘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생활관도 좁았다. 침대형 구조로 바뀐 일반 부대와 달리 훈련소는 여전히 7∼15명이 나란히 지내는 침상형(평상형)이었다. 특히 구형 생활관은 폭이 더 좁았다. 지난달 20일 훈련소를 다녀온 서주석 국방부 차관도 “부족함을 확인했다”며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영외 교육을 마친 뒤 복귀하는 훈련병들의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영외 교육을 마친 뒤 복귀하는 훈련병들의 모습 [사진 육군]

오후 7시, 생활관에 돌아온 훈련병에게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낸 인터넷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훈련병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날 사격을 했던 26연대는 총기 점검을 했다. 김동준 3교육대장(소령)이 “총이 깨끗하다. 좋은 거 받았다”며 훈련병에 말을 건냈다. 그러자 훈련병은 “아닙니다. 제가 어제 청소해서 그렇죠”라며 미소 지었다. 교육대장과 훈련병들이 긴장보다는 벌써 가까워져 친근감을 갖고 있었다. 김 소령은 ‘여자 친구가 전화로 결별을 선언했다’는 훈련병을 찾아 심리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점호 전 총기손질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지난 2일 육군 훈련소에서 점호 전 총기손질하는 훈련병의 모습 [사진 육군]

하루의 마지막 훈련은 예습이다. 다음날 예정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앞두고 동영상 자료를 본 뒤 삼삼오오 모여 토의했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강조하는 ‘WHY 캠페인’에 따라서다. 김 총장은 ‘왜(Why)라는 질문을 통해 장병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다. 훈련소 공보장교 김현우 대위는 “훈련병 스스로 고민하고 궁금한 점을 적은 종이를 붙여두면 소대장이 다음날 교육에서 답변한다”고 설명했다. 강준현 중대장 훈련병은 “자유로운 부분이 많고 훈련도 재미있다”며 “훈련소에서 잘 대해주고 부식도 많이 나와 좋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저녁 점호에서도 부동자세를 취한 뒤 보고하는 옛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소대장은 훈련병들이 침상에 누운 상태에서 인사말을 건내며 불을 끄고 나왔다. 그러나 조용히 생활관을 나온 훈련병 두 명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야간 경계 임무에 투입되면서 훈련병의 하루는 24시간 이어졌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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