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 경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키로 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도전장을 내 민 박영선 의원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결선투표는 박 의원이 줄곧 당 지도부에 요구해 온 사안이다.
박 의원은 지난 5일 "결선투표를 앞두고 TV토론을 통해 박원순 시장이 해온 정책과 제 정책을 대비하면 충분히 반전이 가능하다"며 "당이 적극적으로 TV 토론을 여러차례 열어 시민들이 후보별 정책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박 의원의 하루를 동행취재하며 그의 면면을 밀착마크했다.
"우쭈쭈 서이 그동안 많이 컸네?"
박 의원이 능숙하게 5살 짜리 사내아이를 품에 안았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서 3남1녀를 키우는 다둥이 아빠 전성기(44)씨의 집을 찾아갔다. 전씨는 신도림동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시민대변인의 역할을 맡고 있다.
"다둥이카드로 할인혜택을 주면 뭐 합니까. 온갖 제약 조건이 많아서 쓰고 싶지도 않아요."
전씨는 박 의원과 마주 앉아 그동안 주민들과 모바일 메신저로 나눈 의견들을 쏟아냈다. 박 의원은 끄덕이며 "책상에서 만드는 정책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어서 요즘은 시민들과 정책을 같이 만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4일 발표한 '둘째 아이는 서울시가 키워드린다'는 공약은 전씨와 주민들이 함께 만든 정책이다.
- 엄마같은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주장하는데 아직 한국에선 여성 광역단체장이 없었다.
- 요즘 시민들은 시장이 보육, 출퇴근, 미세먼지 등 더 섬세한 부분까지 챙겨주길 바란다. 집안일은 70~80%가 엄마 손이 가야 해결된다. 내가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돌보는 해결사로서 엄마가 되겠다.
- 맞벌이 부부를 만나고 왔는데 뭐가 제일 큰 고민인가.
- 방과후 수업 문제다. 일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봐줬으면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학원 뺑뺑이를 시키게 된다. 요즘 학교 밖이 얼마나 불안한가. 제가 워킹맘이라 그 맘을 제일 잘 안다. 워킹맘이 편안한 서울을 제가 만들 수 있다.
다둥이 부모와의 대화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박 의원이 이끈 곳은 신도림역 근처의 추어탕집이었다. 식사하던 손님들이 "영선아 시장가자"를 외치며 왁자지껄하게 박 의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박 의원과 대화를 이어갔다.
- 박원순 시장의 교체를 주장하는 이유는.
- 박 시장은 올망졸망한 일만 하다가 서울의 큰그림, 미래의 지향점을 잃어버렸다. 지금 서울의 도시경쟁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산업연구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국 성장율을 못 따라가고 출산율은 꼴찌다. 30, 40대가 서울을 떠나고 있다. 도시의 쇠퇴기 초기에 바로잡지 못하면 20년동안 쭉 미끄러져 버린다. 그래서 이번에 반드시 시장을 교체해야 한다.
- 박 시장이 큰 실수한 건 없다는 평가도 있다.
- 특별히 못한 일이 없다는 건 거꾸로 특별히 잘한 일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 6년간 무슨 일을 했는지 딱 말할 게 없을 정도로 밋밋한 시장이다. 게다가 중간에 대권 도전도 했는데 서울은 그렇게 만만한 도시가 아니다. 분명한 청사진을 그려서 굵직하고 강단있게 추진하는 시장이 필요한 때다.
-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에서 박 시장에게 패배했는데.
- 그때 박 시장은 안철수 후보에게만 양보를 받은 게 아니라 사실 저에게도 양보를 받았다. 그 당시는 박 시장이 원하는 대로 경선 룰을 다 맞춰줬다. 저는 박 시장을 띄워주는 역할을 했다. 참 운이 좋게 박 시장이 당선된 거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서울시장을 세번이나 하고 대통령까지 하겠다는 건 욕심이 너무 과하다. 3선보다는 영선이다.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박 의원에게 돌직구를 던져봤다. 그는 곤란한 질문도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잘못한 건 사과했다.
- 이번 경선에서 친문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지난 대선 전까지만 해도 수시로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대표적 비문 아니었나?
- 내가 바로 원조친문이다. 경선 후보 중 문 대통령과 가장 일을 많이 해본 사람이 나다.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맡았다가 그만뒀을 때 비상대책위 구성과 관련해 의논했던 사람이 나다. 2017년 대선 때 내가 맡은 역할은 문 대통령의 외연 확장이었다. 당내 경선이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버리면 중도 세력을 끌어올 수 없다. 그때 비문 계열이 비빌 언덕을 만들어 준 게 나였고 문 대통령도 그 점을 인정했다.
- 평창 겨울올림픽 때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 응원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 이 질문 안 했으면 좋았는데 하하하. 물어보시니 답을 해야지. 저도 제가 TV에 나온 모습을 두 시간 뒤에 보고 깜짝 놀랐다. 비춰진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바로 사과했다. 정말 배운 점이 많았다. 한 마디로 '낄끼빠빠(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라)'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 전부 들어가라고 해서 따라 갔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이 일로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다. 요즘 젊은층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비판하는 지에 대해 정말로 많이 공부하고 배웠다.
- 원내대표 시절 세월호특별법 합의 논란 등 리더십에 물음표가 달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 세월호특별법 합의 때 유가족을 직접 만나서 설득하지 못했던 것은 아직도 후회스럽고 참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그 정도 선에서 합의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 이유는 증거가 인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진상조사위를 구성해서 진실을 밝히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지금은 유가족들 중에 저에게 그때 합의안이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고 말씀 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오후 4시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을 예방하기 위해 조계사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인터뷰를 재개했다.
- 미세먼지 대책 중 하나로 수소전기차 도입을 주장하는데.
- 요즘 미세먼지가 서울시 가장 큰 환경문제다. 수소전기차는 오염된 공기를 흡입해 필터를 통해 미세먼지를 거르고 깨끗한 공기를 배출한다. 지금 서울시는 5년간 2조원 가량의 예산을 전기차 도입에 쓴다고 한다. 그 돈으로 수소전기차를 도입하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다. 전기차를 도입하면 그 전기는 화력이나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수소전기차는 그렇지 않다.
- 또다른 미세먼지 대책은?
- 미세먼지의 가장 큰 적은 물이라 물 관리 대책을 바꿔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서울 시내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것이다. 올해 초 박 시장이 대중교통 무료운행을 하면서 공중에 날린 돈 150억원이면 서울 전역에 스프링클러를 5m 간격으로 설치할 수 있다.
정치권에선 여전사 이미지가 강한 박 의원이지만 가족 얘기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가족들에겐 늘 너무 미안하다. 저 때문에 가족들은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맘 편하게 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춘기 때 아들과 따뜻한 대화를 더 많이 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끝으로 “어떤 시장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미세먼지 만큼은 확실히 잡은 시장, 서민과 젊은이가 도심에 살게 만든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