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tyle_this week] 환경지수 빵점? 에코백 대신 뜬 이것

중앙일보

입력

“플라스틱은 오래되고 뻔한 프랑스산 옷감보다 훨씬 낫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2018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한 얘기다. 그의 말처럼 올봄 샤넬의 신제품의 대부분이 PVC(폴리염화비닐) 소재로 되어 있다.

샤넬 2018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PVC 소재의 모자, 신발, 가방, 의상 등이 등장했다. [사진 샤넬]

샤넬 2018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PVC 소재의 모자, 신발, 가방, 의상 등이 등장했다. [사진 샤넬]

올해 초부터 올 봄·여름 시즌의 트렌드 키워드로 ‘비닐’이 자주 언급됐다. 샤넬부터 디올, 캘빈 클라인, 버버리, 셀린, 발렌티노 등 이름 있는 패션 하우스가 약속이나 한 듯 PVC 소재로 만든 패션 아이템을 내놨기 때문이다. 망토와 같은 비닐 의상부터 모자, 핸드백, 구두까지 다양한 아이템이 눈길을 끌었지만 그 중 PCV 백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셀린의 솔로 클러치, 발렌티노의 락스터드 스파이크 미듐 PVC 숄더백 [사진 셀린 인스타그램, 발렌티노]

셀린의 솔로 클러치, 발렌티노의 락스터드 스파이크 미듐 PVC 숄더백 [사진 셀린 인스타그램, 발렌티노]

지난 2월 출시된 셀린의 솔로 클러치가 대표적이다. 2월 16일 미국 워싱턴의 노드스트롬 다운타운 시애틀 백화점 팝업 스토어에서 독점 판매된 이 클러치는 클러치를 구매하면 함께 담아주었던 투명 비치백이 유명해지면서 화제가 됐다. 마치 식료품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주는 듯한 투명한 비닐 백에 가죽 클러치가 들어있는 이 가방은 무려 590$, 거의 60만 원대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히트를 쳤다. 국내 매장에도 소량 입고됐지만, 지금은 ‘완판’되어 구할 수 없는 상태다. ‘셀린’ 로고가 새겨져 있을 뿐, 판매용도 아닌 쇼핑백 개념으로 한정 생산한 이 가방은 현재 이베이를 비롯하여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거래되고 있다.

2018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샤넬의 비치백. [사진 샤넬]

2018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샤넬의 비치백. [사진 샤넬]

샤넬의 비치백도 마찬가지다. 런웨이에서 모델이 들고 나왔을 때만 해도 가죽도 아닌, 값싼 PVC 소재의 백에 사람들이 반응을 할까 싶었지만 막상 출시되고 나서는 매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자라 등의 SPA 브랜드와 럭키 슈에트 등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도 투명 비치백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스타우드의 클리어백, 자라의 투명 비치백. [사진 각 브랜드 홈페이지]

스타우드의 클리어백, 자라의 투명 비치백. [사진 각 브랜드 홈페이지]

이런 투명 백의 인기는 지난해 봄 쇼핑백을 연상시키는 명품 브랜드의 쇼퍼백이 인기를 끌었던 현상과 닮았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와 디자인에 로고만 단순하게 새겨진 형태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이케아의 1000원짜리 장바구니와 비슷한 형태면서 200만원대로 출시돼 논란이 되었던 발렌시아가의 파란색 오버사이즈 가죽 쇼퍼백이 대표적이다.

이케아의 장바구니 프렉타와 비슷한 형태로 논란이 되었던 발렌시아가 쇼퍼백. [사진 중앙포토]

이케아의 장바구니 프렉타와 비슷한 형태로 논란이 되었던 발렌시아가 쇼퍼백. [사진 중앙포토]

2016년 주목받았던 꼼데가르송의 PVC 쇼퍼백도 마찬가지다. 마치 꼼데가르송의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것 같은 누런색 종이봉투에 투명한 비닐이 덧씌워진 이 가방은 출시될 때마다 품절 사태를 빚었다.

쇼핑백에 비닐을 덧씌운 듯한 형태의 꼼데가르송 쇼퍼백. [사진 핀터레스트]

쇼핑백에 비닐을 덧씌운 듯한 형태의 꼼데가르송 쇼퍼백. [사진 핀터레스트]

명품 로고가 박혀 있을 뿐 소재도 디자인도 평범한 플라스틱 쇼퍼백, PVC 백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기존 가치를 뒤엎는 전복적 사고에서 느껴지는 신선함, 그리고 파격이다. 누구도 가치를 둘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쇼핑백, 비닐 백에 가치를 부여하고 심지어 이를 고가에 판매한다. 가짜, 싸구려, 일회성이라는 플라스틱 이미지는 명품 브랜드의 고루한 이미지 세탁에도 효과적이다. 스트리트 패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유스 컬처(youth culture)를 수혈하려는 명품 브랜드의 노력과도 닿아있다.

플라스틱, 비닐 등 저가 소재와 명품 로고의 조합은 기존 관념을 뒤집는다는 측면에서 파격적이고 신선하다. [사진 버버리]

플라스틱, 비닐 등 저가 소재와 명품 로고의 조합은 기존 관념을 뒤집는다는 측면에서 파격적이고 신선하다. [사진 버버리]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김용섭 소장은 『라이프 트렌드 2018』에서 ‘아주 멋진 가짜’를 올해의 키워드로 꼽은 바 있다. 지루하고 심각한 진짜보다 재미있는 가짜가 낫다는 의미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들어야 할 것 같은 지루한 가죽 가방보다 그 위에 박혀있는 로고마저도 가짜처럼 보이게 만드는 흐느적거리는 비닐백에 더 재미를 느낀다는 얘기다.

식료품 마켓의 비닐 봉지를 들고 나온 것처럼, 일부로 힘을 뺀 듯한 '쿨한' 패션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도 비닐백의 매력이다. [사진 핀터레스트]

식료품 마켓의 비닐 봉지를 들고 나온 것처럼, 일부로 힘을 뺀 듯한 '쿨한' 패션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도 비닐백의 매력이다. [사진 핀터레스트]

투명한 PVC 백은 그 안에 어떤 것을 넣느냐에 따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실제로 PVC 백을 든 패션 피플들의 스트리트 사진을 보면 내용물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메라, 즐겨 읽는 잡지, 심지어 과일까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물품들을 넣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 일상에 재미와 위트를 주는 패션인 셈이다.
비록 고가이긴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 PVC백의 장점도 있다. 어떤 차림에 들어도 자연스럽다. 일부로 멋을 안 낸 것 같은 ‘쿨함’은 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경 쓰지 않은 듯한 무심한 룩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꼼데가르송의 쇼퍼백으로 멋스러운 일상룩을 연출한 배우 이동휘. [사진 이동휘 인스타그램]

꼼데가르송의 쇼퍼백으로 멋스러운 일상룩을 연출한 배우 이동휘. [사진 이동휘 인스타그램]

실용성 측면에서는 한동안 흥행했던 에코백과도 견줄 수 있다. 편하게 어떤 룩에 매치해도 어색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처럼 쓰레기 문제가 대두하는 상황에서 친환경에 가치를 둔 에코백과 PVC 백을 동일 선상에 두기는 어렵다. 실제로 샤넬의 2018 봄여름 컬렉션은 주요 환경오염원 중의 하나인 PVC(폴리염화비닐)를 주제로 한 패션쇼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패피들이 열광하는 비닐 백의 미학 #싸구려 이미지 벗고 일상에 재미 주는 패션

관련기사

배너

배너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