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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으려면 반딧불이 몇 마리가 필요할까

중앙일보

입력

애반딧불이의 발광. [사진 무주군]

애반딧불이의 발광. [사진 무주군]

평창 동계올림픽의 알파인 활강 스키장을 조성하기 위해 벌목했던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대회가 끝난 뒤 남한 최고의 원시림인 이곳을 복원하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산사태 우려 때문에 복원할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 복원 비용은 누가 댈 것이냐 하는 문제다.
우리는 20여 년 전에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1996년 여름 무주 남대천은 덕유산국립공원에 동계유니버시아드 스키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흘러내린 토사로 몸살을 앓았다. 1982년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된 무주 남대천의 반딧불이 서식지가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다행히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반딧불이는 되살아났고, 97년 시작된 반딧불이 축제는 국내 주요 생태관광으로 자리 잡았다.
반딧불이가 사는 곳은 오염 없는 깨끗한 곳이다. 그래서 청정 환경의 지표생물로 불린다. 여름밤을 밝히는 반딧불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반딧불이는 왜 빛을 낼까

파파리반딧불이 [중앙포토]

파파리반딧불이 [중앙포토]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모스 부호와 같은 신호다. 짝짓기 때 암수가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사랑의 신호’다. 공중 수컷이 신호를 보내면 지상에 있는 암컷이 마음에 드는 수컷을 보고 답신을 보낸다.
미국 동부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포티누스 카롤리니스(Photinus carolinis)’ 종은 숲 전체의 수컷들이 주기를 맞춰 빛을 낸다. 여섯 번 짧게 빛을 낸 뒤 약 6초간 쉬었다가 다시 여섯 번 빛을 내는 식이다.

반딧불은 또 포식자에게는 자신을 감히 넘보지 말라는 경고등이고, 동료에게는 위험을 알리는 통신수단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는 2100여 종의 반딧불이가 있고, 국내에는 8종의 반딧불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애반딧불이·늦반딧불이·파파리반딧불이(운문산반딧불이) 등 3종은 전국에 비교적 널리 분포한다.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오후 9시쯤 출현하는 애반딧불이는 성충의 크기가 8~10㎜이며, 암수 모두 날 수 있다. 노란색 불빛을 내며 1분에 120회 정도로 짧은 간격을 두고 반짝인다. 유충은 논·습지·배수로 등에서 서식하며 우렁이·물달팽이를 먹고 산다. 짝짓기 2~3일 뒤 200~3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20~30일 만에 부화하고, 이듬해 봄까지 물속에서 살며 변태 과정을 거친다.

8월 초순에서 9월 초순 사이 초저녁부터 나타나는 늦반딧불이는 성충의 크기가 15~~19㎜로 가장 크며 수컷만 날 수 있다. 노란색 불빛이 길게 반짝거린다. 유충은 산기슭과 밭 주변에서 달팽이를 먹고 산다.

파파리반딧불이는 5월 중순에서 7월 초순 사이 늦은 밤에 나타나며 암컷은 속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고 수컷만 날 수 있다. 유충은 냇가에서 달팽이를 먹고 자란다. 성충은 크기가 8~10㎜이고, 불빛은 푸른색이 돌 정도로 밝으며, 1분에 80회 정도로 짧게 점멸한다.

과거 반딧불이 유충의 먹이는 다슬기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일본의 겐지반딧불이에 관한 내용이 확인 없이 잘못 알려진 탓이다. 다슬기도 먹지만 달팽이 등을 더 좋아한다.

반딧불은 뜨겁지 않다

경북 영양의 밤하늘을 밝히는 늦반딧불이. 8월 초부터 9월 초까지 출현한다. [중앙포토]

경북 영양의 밤하늘을 밝히는 늦반딧불이. 8월 초부터 9월 초까지 출현한다. [중앙포토]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이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을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열전구처럼 뜨겁지 않다. 냉광(冷光)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80%가 빛으로 바뀐다. 백열전구가 뜨거운 것은 에너지의 95%를 열로 낭비하기 때문이다.
반딧불을 한자로 나타내면 ‘형광(螢光)’이지만 과학적으로는 형광(fluorescence)이 아니다. 형광은 외부의 에너지를 흡수했다가 다시 빛을 내놓는 것을 말한다.
반면 반딧불이가 내는 반딧불은 생물발광(生物發光·bioluminescence)이다. 루시페린(luciferin)이란 색소와 루시페라아제(luciferase)라는 효소 덕분에 반딧불이가 스스로 배 마디에서 빛을 낸다. 루시페라아제는 몸속에 축적된 에너지(ATP)와 산소(O2)를 사용, 루시페린을 산화시킨다. 처음에는 에너지가 많은 ‘들뜬 상태’의 산화루시페린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바닥 상태’로 떨어질 때 빛 에너지가 방출된다.
반딧불이 중에는 빛을 내는 부분 안쪽에 일종의 반사판 같은 세포층을 형성, 빛이 밖으로 잘 나가도록 하기도 한다.

반딧불이 외에도 비브리오 속(屬)의 몇몇 세균이나 밤바다를 파란 불빛으로 물들이는 야광충(夜光蟲)도 생물발광을 한다. 버섯·오징어·달팽이 중에도 있다. 오징어나 심해 아귀는 발광세균 주머니가 있다. 세균은 빛을 내주고, 아귀는 세균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공생 관계다.
이들 생물 역시 반딧불이처럼 짝을 찾기 위해 빛을 내기도 하지만 먹잇감을 유혹하기 위해, 혹은 적을 쫓아내기 위해 빛을 사용한다.

반딧불이가 타락 천사와 관련이 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악마 루시퍼를 묘사한 그림. [중앙포토]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악마 루시퍼를 묘사한 그림. [중앙포토]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데 간여하는 루시페린이란 색소나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 이름은 하늘에서 추방된 타락 천사 루시퍼(Lucifer)에서 유래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등에서는 하늘나라에서 추방당한 천사를 타락 천사라 한다. 또, 루시퍼는 ‘빛을 가져오는 자(Light Bringer)’ 혹은 ‘샛별(Morning Star, 계명성 혹은 금성)’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늘에서 추방당한 타락 천사 루시퍼는 사탄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지옥의 왕으로도 일컬어진다. 원래는 하늘의 치천사(熾天使: 천사의 아홉 계급 중 첫 번째) 중 한 명으로 천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며,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였다. 천사의 3분의 1을 지휘하는 권한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이 루시퍼에게 인간을 돌보라고 명령을 내린다. 루시퍼는 자신보다 못한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차지하자 질투를 느꼈다. 그는 천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대천사 미카엘이 이끄는 천사 군단에 패했고, 지옥으로 추방됐다는 것이다.
생물발광을 연구한 학자들이 빛을 낸다는 이유로 루시퍼의 이름을 가져다 썼지만, 반딧불이가 굳이 사탄의 편에 설 이유는 없다.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생활사

늦반딧불이 애벌레. 축축한 흙에 사는 달팽이를 먹고 산다. [중앙포토]

늦반딧불이 애벌레. 축축한 흙에 사는 달팽이를 먹고 산다. [중앙포토]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가 겉으로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그 생활사를 들여다보면 섬뜩한 부분도 있다. 악마인 루시퍼만큼은 아니겠지만 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수중 생활을 하는 애반딧불이의 애벌레는 다슬기·물달팽이·고둥 등을 먹고사는 육식 곤충이다. 날카로운 턱으로 먹잇감을 문 뒤 턱의 작은 홈을 통해 강력한 소화마취제를 먹이에 주입한다. 껍데기 속의 상대를 액체 상태로 만들어 놓고는 빨아먹는다. 반면 반딧불이는 성충이 된 다음에는 짝짓기하고 죽을 때까지 보름 동안을 그저 이슬만 먹고 지낸다.

포투리스(Photuris) 속(屬)의 반딧불이는 속이 다른 ‘포티누스 카롤리니스’를 잡아먹는다. 포티누스 수컷 반딧불이가 한꺼번에 빛을 내면 포투리스는 포티누스 암컷 반딧불이와 비슷한 신호를 내보낸다. 암컷으로 착각한 포티누스 수컷이 짝짓기를 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면 포투리스가 포티누스 수컷을 붙잡은 뒤 먹어치운다. 일부 학자들은 포투리스에 ‘팜므 파탈(Femme fatale, 치명적인 여자 혹은 악녀) 반딧불이’란 별명을 붙였지만 제대로 된 이름은 아닌 셈이다.

포티누스도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포티누스는 자신의 피 일부 배출한다. ‘반사 출혈(reflex bleeding)’이다. 포티누스의 피는 포식자의 입속에서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바뀐다. 포식자가 움찔하는 사이에 포티누스는 달아날 기회를 얻게 된다.

반딧불이 중에는 두꺼비처럼 독을 만드는 종류도 있다. 포식자는 독을 내는 반딧불이를 먹었다가 맛이 없다는 걸 깨닫고 뱉어버릴 수도 있다. 포식자인 포투리스 속 반딧불이 스스로는 이런 독을 만들지 못하지만 다른 반딧불이를 잡아먹고 그 독을 몸속에 간직한다. 심지어 자기가 낳는 알에 전달해주기도 한다.

반딧불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전북 무주군 지남공원 일대에서 열린 반딧불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반딧불이 생태 환경등 성장과정을 살펴 보고 있다. [중앙포토]

전북 무주군 지남공원 일대에서 열린 반딧불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반딧불이 생태 환경등 성장과정을 살펴 보고 있다. [중앙포토]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진(晋)나라 효무제 때 사람인 차윤(車胤)은 가난해서 등불을 켤 기름을 살 수가 없어 반딧불을 모아 그 불빛으로 글을 읽었고, 손강(孫康)은 한겨울 눈에 반사되는 달빛으로 공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반딧불이 불로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할까.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내는 불의 밝기는 3㏓(럭스) 정도라고 한다. 일반적인 사무실의 밝기가 500㏓고, 옛날 책들은 지금보다 글씨가 훨씬 크기 때문에 150마리 정도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시에는 비닐이나 유리가 없어 얇은 명주 주머니에 반딧불이를 넣어 책을 읽었다고 하니 150마리로는 부족했을 수도 있다. 더욱이 반딧불이는 계속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깜빡거리기 때문에 눈의 피로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반딧불이는 2주일을 넘길 수 없으므로 여름 한 철 반딧불이를 잡느라 밤낮으로 허비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겨울철에는 눈에 비친 달빛으로, 여름에는 반딧불이 빛으로 책을 읽었다면 봄과 가을엔 어떻게 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타카하타 이사오(高畑勳) 감독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대표작인 '반딧불이의 무덤'은 노사카 아키유키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소설에도 차윤(車胤)이란 이름과 형설지공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치달았을 때 부모를 잃은 주인공 세이타는 여동생과 함께 동굴(방공호)에 거처를 정한다. 그는 모기장 안에 반딧불이 100여 마리를 잡아다가 풀어놓는다. 어둠 속에서 얼굴을 알아볼 정도는 됐다. 하지만 다음날 반딧불이의 반은 죽어 떨어져 있었다. 여동생 세츠코는 반딧불이 잔해를 땅에 묻으며 말했다. "반딧불이 무덤을 만들어 주는 거야."
영양실조로 끝내 숨을 거둔 세츠코, 그 시신을 태운 구덩이 옆에 누운 세이타는 엄청난 반딧불이 무리를 본다. 세츠코야 반딧불이와 함께 천국에 가거라.

전쟁 동안 일제가 저지른 만행은 언급하지 않고, 미군 폭격으로 피폐해진 일본인의 삶만을 다룬 애니메이션이어서 우리로서는 아쉬운 구석도 많지만, 슬픈 결말에 짠해진 마음이 오래오래 남아 있다.

20년 넘게 이어지는 반딧불이 축제

제21회 무주반딧불축제 이틀째인 지난해 8월 27일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남대천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이 반딧불이의 먹이인 다슬기를 방사하고 있다.무주군은 반딧불이 먹이인 다슬기가 농약 살포와 무차별한 채취 등으로 개체수가 줄면서 반딧불이 보호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어 축제 기간을 맞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행사를 마련했다. [연합뉴스]

제21회 무주반딧불축제 이틀째인 지난해 8월 27일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남대천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이 반딧불이의 먹이인 다슬기를 방사하고 있다.무주군은 반딧불이 먹이인 다슬기가 농약 살포와 무차별한 채취 등으로 개체수가 줄면서 반딧불이 보호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어 축제 기간을 맞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행사를 마련했다. [연합뉴스]

전북 무주에서는 지난 1997년부터 반딧불이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무주 반딧불이는 96년 중앙일보에서 '깃대종(Flagship species)'으로 소개했고, 실제로 깃대종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깃대종은 특정 지역 생태계를 대표하는 종으로, 그 종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물이나 공기 같은 환경, 다른 생물 종까지도 보호할 수 있는 종을 말한다. 생태관광 등 지역 주민에게 돌아갈 경제적인 혜택까지도 고려해서 선정한다.

2000년대 들면서 무주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반딧불이가 새롭게 발견되면서 시민들의 생태 감수성을 기르는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1998~2001년 농업과학기술원의 조사에 따르면 애반딧불이는 경기도 23곳을 비롯해 강원·충북·전북·전남·경북·경남 등 전국 70곳에서 서식하고 있다. 늦반딧불이도 전국 86곳, 파파리반딧불이도 61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늦반딧불이 암컷(오른쪽)과 수컷. 암컷은 날개가 퇴화돼서 날지 못한다. [중앙포토]

늦반딧불이 암컷(오른쪽)과 수컷. 암컷은 날개가 퇴화돼서 날지 못한다. [중앙포토]

반딧불이가 발견되는 곳으로는 부산 태종대와 인천 만월산과 계양산, 대전 서구 노루벌, 경기도 성남시 분당 맹산, 양평군 명달마을, 남양주시 조안면, 강원도 강릉 남대천, 영월 물무리골, 충남 논산 수락계곡, 청양 칠갑산, 아산 궁평저수지, 경북 영양과 안동, 청도 운문산, 제주 서귀포시 한남 시험림, 제주시 청수곶자왈 등이 있다. 이들 중 일부 지역은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서울 남산과 길동생태공원, 울산, 강원도 원주 치악산 국립공원, 전주시 삼천 등에도 반딧불이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 등 놀이공원에서도 사육한 반딧불이가 볼거리로 제공되기도 한다.

애벌레 시절 1급수의 맑은 물에 사는 달팽이·다슬기를 먹고 사는 반딧불이에게 가장 큰 위협은 농약을 뿌려대는 사람이다. 그리고 밤에도 환한 인공조명을 켜 짝짓기를 방해하는 게 사람이다.
반딧불이가 살 수 없는 환경은 사람도 살기 어렵다. 여름밤 반딧불이의 불빛을 찾아 수풀 속에서 헤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건강한 삶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다.

1996년 전북 무주의 깃대종 반딧불이를 소개한 중앙일보 기사.

1996년 전북 무주의 깃대종 반딧불이를 소개한 중앙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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