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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나눠주겠다" 남편의 각서, 정말 받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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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46)

남편은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나 봅니다. 결혼 전에도 친구들과 술 마시며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결혼해서 가장이 되면 가정에 충실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신혼인데도 친구들과의 약속은 줄지 않아 다툼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잘못했다고 빌면서 아이가 생기면 진짜 집만 아는 남편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술 마시며 노는 것을 좋아하던 남편이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변하지 않아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중앙포토]

결혼 전부터 술 마시며 노는 것을 좋아하던 남편이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변하지 않아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중앙포토]

이런 남편을 믿고 아이를 갖게 된 제가 바보였죠. 남편은 임신한 저를 위해 많이 애를 썼고,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를 경이롭게 보았지만, 어느덧 우는 아기 달래고 어르고 목욕시키고 재우는 것은 모두 제 몫이었어요. 처음에는 그동안 친구들과 너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서 1주일에 1번만 이해해달라고 간청해서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회식, 친구들 약속, 야근…. 주중에는 매일 늦었고, 주말에는 못 잔 잠을 보충해야 한다며 잠만 자는 남편이 되었습니다. 저도 차츰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제 인생이 암흑처럼 생각되었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가를 보면서도 맘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는 이렇게는 같이 살지 못할 것 같아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아직 혼인 기간이 길지 않아 결혼하면서부터 사는 전셋집의 전세보증금을 제가 많이 받지 못할 것으로 아니 아이는 남편이 키우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몹시 놀라면서 모두 자기 탓이라고 인정하더군요. 그러면서 차츰 고칠 테니까 제발 이번만 참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앞으로 육아에도 신경 쓰고 친구들과 모임을 포함해서 1주일에 1회만 술 마시고 들어오겠다고 다짐하는 남편에게 서약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다시는 제가 싫어하는 행동 –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을 하지 않을 것이고, 1주일에 2회 이상 늦게 들어오면 제가 원하는 대로 이혼하되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하니 전세보증금을 모두 제게 주고 월급의 2/3를 양육비로 주겠다고 작성했습니다.

남편은 이런 약속을 글로 쓰고 나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이 써준 서약서를 찾아서 봅니다. 다행히 아이가 자라면서 제 우울증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이혼을 하게 되면 남편이 써준 서약서대로 재산분할을 하고 양육비를 받을 수 있을까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민법의 대원칙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이 얼마 전까지 부부 사이에서는 효력이 없었습니다. 부부 사이의 약정은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민법에 규정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민법 개정으로 위 조항이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부 사이의 약속도 남과 한 약속처럼, 아니 남보다 더 잘 지켜야 하고, 법이 그 이행을 명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재산분할에 관한 약속도 이혼할 때 법이 이행을 명할 수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법원은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는 혼인 중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분할에 관하여 이미 이혼을 마친 당사자 또는 아직 이혼하지 않은 당사자 사이에 행하여지는 협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아직 이혼하지 않은 당사자가 장차 협의상 이혼할 것을 약정하면서 이를 전제로 하여 위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를 하는 경우에서는 그 협의 후 당사자가 약정한 대로 협의상 이혼이 이루어진 경우에 그 협의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례자가 협의 이혼을 한 후에 남편과 위와 같은 약속을 다시 확인하거나 이혼을 협의하면서 다시 약속하면 위 내용은 유효합니다. 남편이 이렇게 약속하고 이행을 하지 않으면 이행을 구하는 소를 민사사건처럼 제기하시면 됩니다.

물론 사례자가 협의 이혼을 하거나 이혼 후에 남편이 위 내용처럼 이행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이혼 무렵이나 이혼 후에 남편이 위 서약서의 내용을 부인한다면 사례자는 가정법원에 재산분할을 구하는 심판을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법원이 재산분할 사건을 심리하면서 위 서약서 내용과 작성 경위를 참작하겠지만, 약정대로 법원이 분할해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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