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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의 교육 살롱]'수능 최저'를 둘러싼 연고전·고연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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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요즘 대입제도가 요동치고 있다는 소식 들으셨죠.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기사를 찾아봤다가 내용이 복잡해 한두 줄 읽고 포기했다고요? 교육뉴스를 봐도 용어가 어려워 이해가 안 된다고요? 이제부터 교육살롱에서 쉽고 친절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교육부가 지난달 말 대학들에 안내한 내용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현재 고교 2학년부터 대입 수시모집으로 학생을 뽑을 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를 보지 말라고 권유한 건데요. 오랜 라이벌인 연세대와 고려대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수시의 수능 성적 반영 여부를 둘러싼 연고전 혹은 고연전이 펼쳐진 형국이죠.

스포츠에만 연고전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최근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 요구에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수능 최저'를 둘러싼 연고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열렸던 '2017 정기 고연전'의 열띤 응원전 모습.[연합뉴스]

스포츠에만 연고전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최근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 요구에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수능 최저'를 둘러싼 연고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열렸던 '2017 정기 고연전'의 열띤 응원전 모습.[연합뉴스]

우선 연세대는 정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지난 1일 “현 고2가 대학에 지원할 때부터는 수시에서 수능성적을 보지 않겠다”고 밝혔거든요. 현재는 수시모집의 일부에서만 수능 성적을 반영하고 있는데, 수시모집에선 아예 다 안 보겠다는 거죠. 고려대는 학생을 어떻게 뽑을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연세대와는 반대의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시에서도 수능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은 학생만 합격시키겠다는 거죠.

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대학의 신입생 선발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흔히 이를 대입전형이라고 합니다). 크게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으로 나뉘는데요. 수시는 학교 내신 성적이나 교내 활동, 논술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합니다(주로 학교 내신을 보는 게 학생부교과전형, 교내 활동을 평가하는 게 학생부종합전형, 논술 잘 쓰는 학생 뽑는 게 논술전형입니다). 반면에 정시는 수능시험을 잘 본 학생을 뽑습니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로고

고려대와 연세대의 로고

하지만 연세대와 고려대를 포함한 일부 대학은 수시로 학생을 뽑을 때도 수능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지만 합격시켰습니다(이를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전교 1등을 하고, 논술시험에서 100점을 받아도 수능점수가 나쁘면 불합격하는 거죠. 이렇다 보니 수시로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은 내신 성적도 잘 받고, 수능 시험에서도 고득점을 받아야 하는 슈퍼맨이 돼야 했죠. 교육부가 대학에 이번 제안을 한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수험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현재로선 대입제도의 잦은 변화가 달갑지 않은 학생·학부모들의 분노만 키운 꼴이 됐지만요.

용어사전수능 최저학력 기준

 대입 수시모집에서 합격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기준. 대학마다 기준이 다르며, 내신이나 논술 등이 우수해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불합격한다. 보통 국어, 수학, 영어, 탐구영역 중 일부 영역의 일정 등급 이상을 기준으로 설정한다.

두 대학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우선 연세대는 왜 정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을까요. 쉽게 말하면 ‘정부에 잘 보이고 싶어서’입니다. 앞서 교육부가 연세대에 “올해 신입생 정원을 35명 줄이라”고 요구한 것과 관계가 있는데요. 연세대가 논술시험에서 고교 수준을 벗어난 문제를 내서 지적을 받았거든요. 그것도 2년 연속 말이죠. 현재는 논술시험 등에서 교과서 밖 문제를 내는 게 법으로 금지돼 있는데, (이를 일명 '선행학습금지법'이라고 합니다) 연세대가 이를 어긴 것이죠.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부 눈치를 보는 건 마찬가지지만 고려대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수시에서 수능 점수를 보지 않겠다고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거든요. 우선 고려대는 학교 내신 성적과 교내 활동 등을 평가해 학생을 뽑는 인원이 연세대의 3배 정도로 많습니다. (현 고3을 기준으로 학생부전형 선발 인원이 연세대는 971명, 고려대는 2732명입니다) 또 수시에서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규모도 큽니다.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하는 전형이 연세대는 학생부종합일부 전형과 논술전형으로 1278명이지만, 고려대는 학생부전형 전체로 2732명입니다) 수시로 학생을 선발할 때 수능 성적을 보지 않으면 지원자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대학에서 똑똑한 학생을 선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평가하는 사람을 늘려야 하니 비용 부담도 커지고요.

두 대학이 대입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은 지난해부터입니다. 이전까지는 학생을 뽑는 방식이나 수시에서 수능점수를 반영하는 규모 등이 비슷했습니다. 두 대학 모두 수시에서는 학교 내신, 교내 활동, 논술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수능 성적을 반영해 최종 합격자를 가려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연세대는 학교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 방식(학생부교과전형)을 없애고, 고려대는 논술시험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고려대 전경. [사진 홈페이지]

고려대 전경. [사진 홈페이지]

학생을 뽑는 방법이 달라지자 수시에서 두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 수도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전에는 고려대에 지원하는 학생 수가 연세대보다 많았는데, 선발방식이 달라진 후 연세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고려대보다 3배 정도 많아졌습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죠. (대학에서는 이를 입학경쟁률이라고 부르는데요. 2017학년도 수시 입학경쟁률은 고려대 23.1대 1, 연세대 14.9대 1이었습니다. 반면 지난해 입학경쟁률은 연세대가 20대 1, 고려대가 7.4대 1이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고교(특목·자사고, 강남 8학군 일반고 말입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논술시험 치르는 것을 선호하는데, 고려대에서 이 방식이 사라지면서 이 학생들이 연세대로 몰린 것이죠. 이들 고교에선 학교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내신을 잘 받기 어렵기 때문에) 논술시험에서 승부를 보려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또 고려대가 수시에서 수능점수를 높게 반영한 것도 지원자가 줄어든 원인으로 꼽힙니다(고려대 일반전형 인문계열은 수능 4개 영역의 등급합이 6 이내여야 합니다. 2개 과목에서 1등급을 받고, 2개 과목에서 2등급을 받아야 합격할 수 있다는 얘기죠).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해도 수능 성적이 잘 안 나오는 학생들은 고려대에 지원해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니 지원 자체를 꺼리게 된 것이죠.

연세대 신촌캠퍼스 전경. [사진 홈페이지]

연세대 신촌캠퍼스 전경. [사진 홈페이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두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학생들의 전략도 달라질 거라 예상됩니다. 연세대는 학교 내신 성적은 좋지만, 수능에서 고득점 받지 못하는 학생, 논술에 자신 있는 학생들이 몰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려대는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어 학교 내신은 우수하지 않아도,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는 학생들이 많이 지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고2 학생들은 이런 내용을 잘 살펴서 전략을 세워야 합격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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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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