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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박원순·안철수의 쌍곡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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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35면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쇼는 분명한데 듣도 보도 못한 초식 아닌가. 7년 전 안철수·박원순의 양보기자회견을 봤을 때 뭐지? 싶었다. 지지율 50%에 육박하는 엄청난 바람을 일으켜놓고, 3%에게 양보하고 자긴 빠진다고? 보아하니 대선(2012년)에 직행하려는 것 같은데, 측근이라는 사람(박경철)은 울긴 왜 우나. 순교라도 한 것처럼 오버하기는.


알고 보니 이 이상한 쇼의 정체는 ‘매직쇼’였다. 안철수의 양보세례를 받은 무소속 박원순의 3% 지지율이 마법처럼 치솟았다. 그는 민주당 박영선,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소극적 지원까지 업은 한나라당 나경원을 2단계로 꺾어 서울을 평정했고, 여당 지도부도 붕괴시켰다. 그때 유탄을 맞아 물러난 여당 대표가 홍준표다.

모든 것의 출발은 오세훈이었다. 무상급식 제동을 목표로 주민투표를 밀어붙였다가 실패하자 쿨하게 서울시장직을 버렸다. 쿨한 것까진 좋았지만, 그의 사퇴로 인한 보궐선거가 안철수·박원순에게 판을 깔아줬고, 연쇄적으로 여권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니 ‘오세훈 나비효과’는 엄청났다. 당시 홍준표가 “주민투표는 사실상 오세훈 승리”라고 우기다가 “사실상 파리도 새냐”와 같은 ‘사실상~’ 패러디를 양산한 것도 7년 전 추억 중 하나다. 이젠 빛이 바래야 할 그때의 장면이 되살아난다. 등장인물은 거의 그대로이고, 배역만 달라졌다.

지난 4일 안철수는 시청 청사를 대각선으로 바라보는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박원순 보란 듯이 출마를 선언했다. “7년 전에 양보할 땐 잘할 줄 알았다”고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안철수를 보면서 박원순의 멘탈은 무너져내렸을지 모른다. “이건 아닌데”라는 마음과 “서울시장 자리 맡겨놨냐”고 치받고 싶은 마음이 반반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정계 입봉할 때의 ‘수호천사’가 ‘스나이퍼’가 돼서 나타났으니 희비의 쌍곡선 정도가 아니라 운명의 쌍곡선이다.

박영선이 와신상담 끝에 리턴매치를 신청한 것도 7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홍준표는 그때도, 지금도 당 대표다. 오세훈을 투입해 결자해지의 판을 만들려 했으나 실패하고 김문수를 차출해왔다. 안철수에게는 사실상 ‘고춧가루 부대’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은 상식이지만 이렇게 인연이 얽히고설키다 악연으로 바뀌는 걸 보는 느낌이 묘하다. 하기야 인간적 의리 따위,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일이다. 그 동네에서 ‘의’(義)와 ‘리’(利)는 늘 따로 놀았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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