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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230억 인정이 결정타 … 혐의 14개 최순실과 겹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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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02면

[SPECIAL REPORT] 박근혜 1심 중형 선고 배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내려진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 4000여 명(경찰 추산)이 시위를 했다. 이들은 서초동 법원에서 강남역까지 박 전 대통령 사진과 ‘법치사망’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김경록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가 내려진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 4000여 명(경찰 추산)이 시위를 했다. 이들은 서초동 법원에서 강남역까지 박 전 대통령 사진과 ‘법치사망’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김경록 기자]

국정농단 사태의 ‘정점’인 박근혜(66)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구형량(징역 30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국내 권력형 비리 사건의 피의자 중에선 가장 높은 형량이 나왔다. 앞서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62)씨에게는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최순실과 공모 인정, 줄줄이 유죄 #18개 혐의 중 박근혜 단독은 0개 #미르·K재단 출연금 강요도 유죄 #국정농단 51명 1심 선고 마무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6일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 및 정유라 승마 지원 등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18개 혐의(뇌물수수·직권남용 등) 중 16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최씨에게 속았다거나 비서실장 등이 행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대통령이 이 나라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을 끝으로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초래한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 51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모두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은 최씨와의 공모 관계가 인정된 데다 형량이 무거운 뇌물 혐의 중 상당수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총 18개의 혐의 중 박 전 대통령의 단독 혐의는 없었다. ‘공범’ 최씨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 연루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종국엔 ‘정점’인 박 전 대통령에게 연결되는 구조였다.

그중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혐의 14개가 최씨와 겹쳤다. 이날 선고 때 재판부가 ‘최서원(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을 총 170차례나 언급한 것도 그래서였다.

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동일한 재판부가 내린 이날 박 전 대통령 판결은 당초 예상대로 ‘데칼코마니’가 됐다. 재판부는 “이런 사태의 주된 책임은 헌법상 부여된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누어 준 피고인과 이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최씨가 유죄를 선고받은 12개 혐의가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특히 중형이 선고된 배경에는 뇌물죄 인정이 결정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5개 뇌물 혐의 중 3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뇌물수수액이 230억원 이상이라고 적시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는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면 징역 10년 이상에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22)씨에게 승마 지원(72억원)을 하게 한 혐의에 대해 “기업 활동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의 광범위하고 막강한 권한이 작용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또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지원금(70억원, 이후 반환)을 내도록 한 혐의와 SK그룹에 재단에 89억원을 내라고 요구한 혐의에 대해서도 “면세점 허가 등 그룹 현안 등에 대해 대통령의 직무를 이용해 도움을 주는 대가로 지원을 요구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나머지 두 개의 뇌물 혐의는 최씨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을 목적으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의 출연금을 냈다는 혐의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의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검찰이 제시한 근거만으로는 승계작업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뇌물 혐의 이외에 다른 혐의들도 줄줄이 유죄가 선고됐다. 전경련 소속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의 출연금을 내도록 한 혐의(직권남용 및 강요)에 대해 재판부는 “기업들에 부당한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위구심(危懼心·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묵시적 해악’을 고지했다”며 유죄 이유를 설명했다.

현대차, 포스코, KT, GKL 등을 압박해 최씨나 최씨 지인이 운영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직권남용 및 강요)도 ‘일부 무죄’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죄로 판단했다.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를 지시하고,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과 노태강 당시 문체부 국장(현 문체부 차관)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및 강요)도 유죄가 인정됐다. 또 KEB하나은행에 최씨의 측근인 이상화 전 독일지점장을 본부장에 임명하도록 요구한 혐의(강요), 최씨에게 청와대 문건(14건)을 전달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도 유죄였다.

이번 판결은 앞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을 놓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없었다는 데 대해선 두 재판부의 인식이 동일했다.

하지만 삼성이 최씨 측에 지원한 말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었느냐를 놓고는 판단이 엇갈렸다. 이 부회장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3부)는 말 소유권이 삼성 측에 있다고 봤으나 이번 재판부는 최씨에게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명마 세 필의 가격과 보험료(약 36억원)를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인정하면서 “최씨가 말에 대한 실질적인 처분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말 소유권은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이 부회장의 최종 형량도 가를 수 있는 쟁점이다. 앞서 이 부회장 항소심에선 말의 가격이 아닌 금액이 특정되지 않는 ‘무상 사용료’만 뇌물로 인정되면서 뇌물 공여 총액이 절반가량 줄었다. 말 소유권에 대한 최종 판단은 향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에서 나올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선고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오전 법원에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에 나올 수 없다”는 불출석 사유서를 팩스로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선 조현권 국선변호인 등 변호인 두 명만 자리를 지켰다.

손국희·문현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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