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신 취업 … 월 600만원 버는 25세 택배기사

중앙선데이

입력 2018.04.07 00:02

업데이트 2018.04.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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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11면

아픈 청춘, 대안은 
3년차 택배기사인 이지환(25)씨. 이씨는 고교 시절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루 300건 가량의 택배화물을 배달하는 그의 월 평균 수입은 600만원(세전) 선이다. [이수기 기자]

3년차 택배기사인 이지환(25)씨. 이씨는 고교 시절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하루 300건 가량의 택배화물을 배달하는 그의 월 평균 수입은 600만원(세전) 선이다. [이수기 기자]

4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 CJ대한통운 관악서브터미널에서 만난 이지환(25)씨는 3년차 택배기사다. 군에서 제대하고 식당일을 배우다 2016년 11월 택배배달을 시작했다. 그는 고교 시절 일찌감치 진학보다 창업을 꿈꿨고, 창업 종잣돈 마련을 위해 택배일을 선택했다. 어머니는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고 만류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수도권 소재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 생산직으로 근무 중인 그의 친형(32)이 이씨의 생각을 지지해줘 친구들이 대입준비로 한참 바쁜 고교 3학년 시절에 식당 등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택배일을 시작한 건 순전히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실제 택배업계 1위업체인 CJ대한통운 소속 1만7000여 명 택배기사의 월평균 수입은 551만원(세전)이다.

고3부터 식당 등에서 일하며 경험
몸은 고되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
반대했던 어머니 “옳은 선택했다”

19세 공군 부사관 “중학 때부터 꿈”
취업 특화 마이스터고도 지원 몰려

그는 매일 오전 7시 CJ대한통운 관악서브터미널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자신이 속한 관악난곡 집배점으로 갈 택배화물을 옮겨 실은 뒤 배달에 나선다. 그의 하루 택배 물량은 300건 정도. 같은 집배점 소속 택배기사 중에서도 2~3위를 다툰다. 오전 7시에 하루를 시작해 오후 6시쯤 일과를 마감한다. 평균 월수입은 600만원 선. 여기서 세금과 보험료 등을 떼고 월평균 460만~480만원이 순수입이다.

안정적인 수입 덕에 화물차 할부금도 이미 다 갚았다. 현재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적금 통장 세 개에 돈을 붓는다. 꾸준히 택배물량이 늘고 있어 전망도 나쁘지 않다. 일을 할 때는 걷기보다는 늘 뛰는 편이다. 배달을 빨리 마칠수록 더 빨리 퇴근할 수 있어서다.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며 체력을 다진다.

이씨는 “솔직히 택배가 편한 일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어 충분히 만족한다”며 “대학에 가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에서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이 날 부러워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친구들과 모임에선 그가 한턱을 낼 때가 많다. 친구들은 아직 학생이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그는 “처음엔 안쓰러워하시던 어머니도 이젠 내게 ‘용돈 좀 달라’고 하시는걸 보면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다”며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얼른 집부터 살 계획”이라고 했다. 20대 젊은 택배 기사는 이씨만이 아니다. CJ대한통운 박종채(43) 관악서브터미널 과장은 “택배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3~4년 정도 열심히 일한 뒤 종잣돈을 마련해 자기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다수”라고 전했다.

이 시대 청년고통의 큰 진원지 중의 하나가 경제고통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18년 청년경제고통지수(물가상승률+실업률)는 24.2%다. 지난해 기준으로 평균 6%대인 우리나라 경제고통지수보다 네 배쯤 높다. 높은 청년실업률에다 최근엔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가장 타격을 받았던 패스트푸드점, 분식집 등 청년들이 주로 소비하는 영세자영업종에서 가격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곧바로 청년들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우리나라 경제구조 자체가 청년들에게 친화적이지 않고, 청년들의 경제고통을 배려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씨처럼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학력우선주의’를 배척하고 먼저 경제적 자립을 모색하는 젊은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홍준표 동향분석팀장은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드는 비용과 시간은 커지는 반면 그로 인한 기대소득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청년들 사이에서도 실속 있는 삶을 찾으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발표한 ‘2016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에 따르면 일반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64.3%다. 취업의 질을 떠나 취업률 자체는 전문대학(70.6%)보다 낮은 수준이다.

실제 공군항공과학고 등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일부 마이스터고는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졸업 후 전원 공군 부사관으로 임관되는 공군항공과학고의 경우 올해 신입생 경쟁률이 7.6(남자)~18.7(여자)대 1에 이른다. 학교는 경남 진주시에 있지만 전국에서 지원자가 온다. 취업이 보장되는 데다 학비나 기숙사비 등은 모두 무료여서다. 학교에서는 항공기계와 정보통신, 항공관제 등 첨단 항공기술을 배운다. 서울 노원구 출신으로 이 학교를 졸업한 뒤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근무 중인 이상빈(19) 하사는 3일 “아버지의 권유로 항공과학고에 진학해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섰는데 함께 임관한 동기들 모두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만큼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한다. 이 하사의 경우 중학 재학 당시 성적은 상위 10% 초반대였다. 이 하사는 “대학을 가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며 “중학생인 여동생에게 용돈도 주고 있다”며 웃었다.

윤건 한국행정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은 “이제 우리 사회도 대학이나 청년 모두 ‘직장을 구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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