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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대중화, 한국경제론 집대성한 송병락 前서울대 부총장

중앙일보

입력

네이버·중앙일보 공동기획 [인생스토리] ①송병락 전 서울대 부총장

서울대 부총장을 역임한 송병락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서울 여의도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서울대 부총장을 역임한 송병락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서울 여의도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서울대 부총장을 역임한 송병락(79)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제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한국경제론을 집대성한 학자로 꼽힌다.
 저서『마음의 경제학』(1987년)을 바탕으로 만화가 이원복 교수(현 덕성여대 총장)와 함께 제작한『자본주의 공산주의』는 경제학 책으론 드물게 1990년 교보문고 연간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일반 대중이 어려워하는 경제학을 만화로 쉽게 풀어 설명했다는 평가다. 이후 『한국·한국인·한국경제』『국제화시대의 세계경제』『부자국민 일등경제』까지 총 네 권의 경제학 만화 시리즈를 냈다.

 경제학자로 연구 실적도 눈에 띈다.『한국경제론』(1981년)을 집대성하고, 세계 최고의 경제학 논문집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국내 경제학자로 처음 단독 논문을 기고했다. 이러한 공로로 1982년 제정된 한국경제학회상의 첫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학자라면 누구나 책을 내고 싶은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사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1990년)를 펴냈다. 2004년 명예교수로 은퇴하고 10여 년 뒤 펴낸 『전략의 신』역시 13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1950년대 고교 재학 시절 송병락 명예교수(위)가 친구들과 열차를 타고 있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1950년대 고교 재학 시절 송병락 명예교수(위)가 친구들과 열차를 타고 있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어린 시절 얘기를 듣고 싶다.
자랄 때 어른들 따라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개천에 가서 고기를 잡고, 논에 가서 골뱅이를 잡던 수렵 사회였다. 아버지께서 동네 복판에 새 집을 지었다. 집을 짓고 제가 태어났는데 그때 가세가 일어날 때다. 사랑받으며 어릴 때 한문을 배우고, 붓글씨를 썼다. 친구들이 달 밝은 밤에 와서 마당에서 뛰어놀았다. ‘병락아, 놀자’ 이럴 때 혼자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던 게 생각이 난다. 옛날부터 공부에 적성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람 중에는 십인지장·백인지장·천인지장이 있다”

부모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어머니께서는 ‘하늘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고 수없이 말씀하셨다. 혼사라든지, 집을 사고 판다든지 등의 크고 작은 일이 있으면 꼭 옆 사람과 상의를 하라고 하셨다. 어머니 말씀은 ‘의논을 해야 한다’는 거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은 10명을 거느릴 수 있는 ‘십인지장’, 100명, 1000명을 거느릴 수 있는 ‘백인지장’, ‘천인지장’이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보다는 이런 인재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1990년 하버드대 초빙교수 시절 조교와 함께.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1990년 하버드대 초빙교수 시절 조교와 함께.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배경은
아는 분이 금융조합에 다녔는데 아주 잘살았다.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이 잘살고, 그래서 그쪽으로 취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제학에 관심이 있었다. 서울대 상대에 입학하면 입학금, 등록금, 4년간 하숙비, 책값 다 주는 좋은 장학 제도가 생겼다. 대구에 있는 학생들이 많이 몰렸는데 운 좋게 합격했고, 그렇게 해서 상대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하게 됐다.
경제학자로 세운 업적이 많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 2년 반 조금 넘어 석사·박사를 다 끝냈다. 경제학 2대 저널 중 하나로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가 있다. 보통 두세 명이 써서 논문을 내는데 혼자 단독으로 냈다. 학자들이 책을 가장 내고 싶어하는 데가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인데 내가 쓴 책 『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1990년)가 거기서 나왔다. 한국 사람으론 처음이다.
송병락 명예교수가 경영학의 시조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교수와 함께 대관감(갓)을 쓰고 있다. 이 갓은 1998~2000년 서울대 부총장 시절 기념선물로 제작한 것이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송병락 명예교수가 경영학의 시조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 교수와 함께 대관감(갓)을 쓰고 있다. 이 갓은 1998~2000년 서울대 부총장 시절 기념선물로 제작한 것이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기억에 남는 분은.
대학 때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경제학자가 폴 사무엘슨 MIT 교수다. 하버드대(포스트닥터 과정,리서치 펠로)에 갔을 때 MIT가 지하철역으로 두 정거장 떨어져 있었다.하버드에 다니면 거기서 공부할 수가 있어 무조건 가자마자 강의를 1년 들었다. 또 한 분은 경영학의 시조인 피터 드러커 교수다. 96세까지 병 없이 사셨다. 드러커 교수는 자녀가 네 명인데 손자까지 다 모두 잘 크고 있어 ‘나는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국민 소득 100달러 조금 넘는 나라 출신의 열등감”

유학 시절 일화는.
처음 미국에 갔더니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달러가 조금 넘는 나라에서 왔다는 열등감 같은 걸 많이 느꼈다. 태국 부자 아들이 저에게 수학을 배우겠다고 해서 가르쳐 줬다. 태국에서 최고급 자동차와 중고차를 파는데 부서진 차도 수리해 준다고 했다. 그 학생이 저에게 좋은 차를 싼값에 줬다.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는 차였다. 그때 돈도 없었는데 ‘송병락이 한국에서 제일 잘사는 집 아들이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하는 미국 사람이 있었다.
손자병법을 연구한 계기는.
ROTC 1기를 하고 통역장교가 됐다. 미군 기지사령부의 수석고문관실에서 연락장교를 했다. 그때 소대전투ㆍ중대전투 전략을 통역하다 손자병법을 접해 많이 읽었다. 미국에 갈 때 처음 물건이 도착을 안 해서 손자병법·사전·주기도문 3권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집 생각이 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손자병법을 많이 읽었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경제전쟁 시대가 왔다. 헨리 키신저도 ‘미국이 아시아에서 벌인 전쟁에서 고생을 많이 한 건 손자병법을 몰라서 그렇다’고 했다.
경제학으로 돌아가 성장과 분배 중 어느 쪽이 중요한가.
사실 분배가 중요하다. 손녀들이 있는데 작은손녀에게 큰손녀 잘났다 그러면 ‘흥’ 이러고 질투 같은 걸 느낀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손자병법에 우직(迂直)지계라고 있다. 직(直)공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우회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려들어 성공한 나라는 없다. 경제 성장을 우선 많이 시켜놓고 분배를 하고, 우회적으로 성장을 거쳐서 분배를 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해야 집에도 소득이 늘어나고 형제들이 나눠가질 게 많다.
송병락 명예교수가 자신이 집필한『한국경제론』을 들고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송병락 명예교수가 자신이 집필한『한국경제론』을 들고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한국경제론』집대성으로 한국경제학회상 첫 수상자가 됐다.
『한국경제론』은 지금까지 국문으로는 5판을 냈다. 이 책을 세계 수준의 이론서로 펴내야 한다고 해서『The Rise of the Korean Economy』를 옥스퍼드대에서 출간했고, 3판까지 나왔다. 1판은 마음속으로 부담을 많이 느꼈는데 2판부터는 마음대로 쓰라고 해서 내 이론을 거기다가 폈다. 스위스에서 내 이론과 가까운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글로벌경쟁력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성서·논어·불경을 비교하며 책을 썼다.”

『마음의 경제학』으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갔다.
당시 한국의 정치·사회가 불안하고 빚도 늘어났다.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 아닌가 생각했다. 성서와 논어와 불경을 한번 비교해봤다. 세 책을 비교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역시 마음이 중요했다. 세 책을 토대로 경제원리 같은 걸 쉽게 설명했다. 제목이『마음의 경제학』이니까 (사람들이) 많이들 기억했다.
이원복 교수와 만화 경제학 시리즈를 낸 계기는.
박용성 두산 회장이 책방에 가보니 전부 나라가 안 된다는 책만 있는데, 나라가 잘 된다는 책은 송병락의 『마음의 경제학』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때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했고,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박 회장이 만화가인 이원복 교수(현 덕성여대 총장)와 함께 『마음의 경제학』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처음에 나는 만화책을 어떻게 쓰느냐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원복 교수는 무척 유명했고, 만나보니 정말 수재였다. 그래서 같이 쓰기로 하고, 책을 쓰기 위해 공산주의 국가를 가봐야 한다고 했다. 89년 소련, 헝가리, 동독을 갔다. 마침 동독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망치로 부서지는 광경을 봤다. 이 교수와 함께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비롯해 총 4권의 경제만화 시리즈를 냈다.
2001년 이원복 교수(왼쪽)와 경제학 만화 『부자국민 일등경제』를 펴냈다. [중앙포토]

2001년 이원복 교수(왼쪽)와 경제학 만화 『부자국민 일등경제』를 펴냈다. [중앙포토]

학자로 한눈팔지 않고 연구와 강의에 매진한 배경은.
미국 보스턴에서 MIT·하버드 교수와 합동 세미나를 했다. 실력은 ‘택’도 없는데 겁도 없이 거기에 들어가 1년간 토론하고 발표하는 것도 많이 들었다. 그때 적성은 아무래도 공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후진국에서 제일 하기 힘든 게 학자 생활이다. 자녀가 크면 과외비 등 돈이 많이 들어간다. 경조사비도 많이 들어간다. 동창회를 한다든지 ROTC동기회를 한다든지 모임도 굉장히 많았다. 그런 모임을 다 따라다니면 공부를 못한다. 하버드대 도서관에서는 저의 책을 7권씩 사놓고 학생들에게 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한권씩 밖에 하지 않으니 학생들이 책을 빌리러 가면 이미 대출돼 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사서 공부했고, 지금도 많이 산다. 한때는 책이 1만 권 넘게 있었는데 집이 무너진다고 해서 일부를 버리거나 기증해 지금은 7000권이 있다. 정말 어렵지만 공부의 길을 한번 가보자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서울대 부총장 시절 ‘파죽음’이 됐다.”

서울대 부총장 시절이 연구 외 분야를 맡은 유일한 기간이다.
부총장을 하라고 해서 안 한다고 했다가 임명도 받기 전에 사표를 냈다. 그런데 많은 분이 학교에서 왜 봉사를 안 하느냐고 해 결국 맡게 됐다. 하기로 결정을 하고 갔더니 자가용도 있고, 수행비서도 있었다. 국가 예산을 이렇게 수행비서에 써도 되는가 생각을 했다. 막상 일이 시작이 되니까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연세대는 사립대학이라 부총장이 4명이나 있는데 봉급도 더 많다. 혼자서 4명분을 하니까 국가예산을 많이 절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의과대학·간호대학·수의과대학 일, 그 다음에는 공대 일, 컴퓨터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정신이 없었다. 화제가 그렇게 바뀔 수가 없었다. 그냥 ‘파 죽음’이 돼 오후 5시가 되면 회의 탁자에 의자를 깔아놓고 쓰러져 있었다. 5분 정도 있다가 보면 비서가 결재받을 사안이 기다리고 있다며 들어왔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외국사람이 학교를 방문해 학교를 소개할 때였다. 서울대에는 교수, 학생, 직원을 포함해서 사람이 3만3000명이고, 실험 동물 7만7000마리가 있다고 하니 모두 웃더라.  
송병락 명예교수가 자신이 쓰고 있는 대관감(갓)과 5000원권에 그려져 있는 율곡의 대관감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부총장 시절 방문객 기념 선물로 제작한 대관감은 3층 양식으로 율곡의 2층 양식과 다르다. 최정동 기자

송병락 명예교수가 자신이 쓰고 있는 대관감(갓)과 5000원권에 그려져 있는 율곡의 대관감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부총장 시절 방문객 기념 선물로 제작한 대관감은 3층 양식으로 율곡의 2층 양식과 다르다. 최정동 기자

대관감(갓)을 자주 쓰신다.
부총장 할 때 방문하는 분이 진짜 많았다. 외국인도 많았다. 기념품을 줘야 하는데 예산이 많이 들고 하니까 제일 좋은 게 뭘까 생각했다. 모자는 저항감이 적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율곡의 대감관은 2층인데 이것은 3층이다.
2002년 국가 경쟁력 연구 최고 권위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2002년 국가 경쟁력 연구 최고 권위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전략의 신』을 집필했는데 최고의 전략가는.
지난 세기 최고의 전략가로 불리던 영국의 리델 하트는 서양의 손자병법에 비유되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손자병법에 비해 ‘택도 없다’고 했다. 미국은 월남전에 패망하고 나서 손자병법 연구를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경영 전략이 따로 있고, 군사 전략이 따로 있다. 이젠 게임 전략이라 한다. 김영세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1994년 이후 전략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12명이 넘는다.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전쟁을 제일 많이 해야 하는 나라이고, 싸움도 많이 하는 나라다. 사진을 찍을 때도 ‘파이팅(fighting)’ 한다. 사진을 찍다가 ‘파이팅’ 하고 집에 가서 부인과 싸운다는 얘기도 있다.이처럼 전략이 제일 중요한 나라에서 전략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당신이 쓸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전략’이라 붙이고 세상의 모든 전략을 요약해 설명 해놨다.
작은 노트용 책을 무료로 나눠준다고 하던데.
회사의 회장에게 줘도 기분 좋아할 선물, 제일 밑 신입 사원이 받아도 좋아할 선물이 뭔가 하다가 이걸로 정했다. 제목은 ‘항상 더 좋은 길이 있다, 다른 길도 있다(Better way, Different way)’다. 이게 전략 용어인데 펴보고 깜짝 놀란다. (백지이기 때문이다.) 농담으로 마음이 맑은 분들은 글자가 다 보인다고 했다. 앞쪽에 피터 드러커 교수가 정의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성서에서 제가 보기에 보통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 뭘까를 찾아 17개를 적어놨다.

“세계 문자 중 제작 연도와 제작자가 분명한 언어는 한글 뿐”  

가장 존경하는 분은.
이순신 장군을 많이 존경하지만 정말 존경할 분은 세종대왕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 문자 중에서 제작 연도와 제작자가 분명한 언어는 한글밖에 없다. 주위 사람들이 세종이 한글을 만들겠다고 하자 반대를 많이 했다. 세종대왕은 정말로 천재이고, 모든 걸 다 가졌는데 저런 생각들을 어떻게 했을까 놀랍다.
2015년 도리스 로이타르트 스위스 현 대통령과 함께. 스위스는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성장 모델이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2015년 도리스 로이타르트 스위스 현 대통령과 함께. 스위스는 한국이 추구해야 하는 성장 모델이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한국 경제가 어려운데 일본과 중국 사이 나아갈 길은.
분명한 답이 있다. 스위스다. 시장경제를 가장 잘했다, 민주주의를 가장 잘했다 하는 곳은 많은데 세계에서 부자가 제일 많은 곳은 스위스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사이에 있지만 이 나라들 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 한국도 반도체·TV·휴대전화는 일본을 넘어섰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1등이다. 골프장도 1등이고, 골프도 1등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 스위스에는 비밀 은행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전운이 감돌 때 인근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지도자들이 스위스로 돈을 많이 도피했다고 한다. 그래서 침략을 못했다. 스위스 은행이 국가안보의 무기 역할을 한 것이다.
자녀에게 강조하는 말씀은.
‘남에게 조금이라도 해로운 말은 하지 말라’거나 ‘뭔가를 사주려면 돈이 많이 드니 말이라도 항상 부드럽게 하고, 표정을 온화하게 하고, 항상 기분을 좋게 해야 한다’를 말을 많이 해준다.‘정말 돈을 벌고 잘 살려면 남에게 도움을 줘야 하고, 도움을 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줘야 한다’던가 ‘살면서 힘든 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란 얘기도 한다.  
2010년 국제 캐리커처 대회에서 모델로 나섰다. 캐리커처 40장이 생겼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2010년 국제 캐리커처 대회에서 모델로 나섰다. 캐리커처 40장이 생겼다. [사진 송병락 명예교수]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똑같은 것을 수없이 찍어내는 게 상품이다. 명품은 소수를 찍는 거다. 작품은 딱 하나만 찍어내는 거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다 신의 ‘작품’이다. 쌍둥이도 손금이 다르다. 창의는 손으로 하는데, 손금과 손을 다르게 만들어 놨으니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 속에 신경과 핏줄이 연결돼 있다. 이런 건 신이 아니면 도저히 못한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신이 들어 있다고 한다. 자기의 적성을 잘 살리면 엄청난 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아이큐(IQ)가 낮아서 틀렸다’고 하는 젊은이가 많다.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의 지능은 20개 이상이 있다고 한다. 김연아 선수, 이수만 프로듀서, 정주영 회장, 칭기즈칸은 아이큐가 몇인지도 모른다. 아이큐는 언어 지능과 수리 지능 두 개만 가지고 따지는 거다. 아이큐는 살아가면서 성공의 15~20%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흙수저라 평생 흙수저’라는 소리를 제발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비즈니스 지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세상에 할 일도 많고 돈이 널려 있다’고 했다. 비즈니스 지능이나 스포츠 지능을 찾아서 잘 발휘하면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지능이다. 제일 중요한 기술이 귀인의 도움 받는 기술이다. 귀인을 잘 만나서 도움을 받고, 귀인이 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많이 줘야 한다. 
  • 출생년도1939
  • 직업[現]대학교수
  • 소속기관 [現] 서울대학교 명예교수,[現]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

1939년 경북 영주 출생
1959~196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경제학사)
1965~1966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근무
1966~1967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수료
1967~1970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 경제학 석사·박사
1970~1971년 미국 하버드대 포스트닥터 과정, 케네디스쿨 리서치 펠로
1971~1980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원, 산업정책실장
1974~1985년 국제연합(UN), 세계은행(IBRD), 아세아개발은행(ADB) 고문
1980~2004년 서울대 경제학과·경제학부 교수
1990~1991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1992~1994년 서울대 세계경제연구소장
1998~2000년 서울대 부총장
2004년~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네이버·중앙일보 공동기획인 ‘우리 시대의 멘토’는 이번 회부터 ‘인생스토리’로 바꿔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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