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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노스 운영 USKI 소장·부소장 자르란 건 청와대 요구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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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USKI) 이사장이 지난달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USKI) 이사장이 지난달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부가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관련 전문매체 38노스를 운영하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ㆍ미 연구소(USKI)에 대해 예산지원을 6월 중단하겠다고 지난 4일 통보했다. 그런데 2006년 설립 때부터 매년 지원하던 예산을 갑자기 끊겠다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과 학교 측이 구재회 연구소장과 제니 타운 부소장을 내보내라는 청와대 요구를 거부한 때문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제니 타운 부소장은 38노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편집장이다.

조윤제 주미대사까지 나선 USKI 예산 중단 사태 전말 #구재회 소장 "물러나겠다 하니 靑에서 '부소장도 물러나라', #김부겸·양정철도 왔는데 '이재오와 가까운 사람' 규정 황당"

5일 USKI에 따르면 주미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가 전날 갈루치 이사장을 방문해 “한국 정부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을 통해 연구소에 했던 예산(2018년 20억원) 지원을 5월 마지막으로 끊겠다"며 "6월부터 SAIS에 한국어 수업을 포함한 한국학 연구만 지원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와 KIEP는 USKI와 관련한 존스홉킨스대의 결정 권한에 부적절하게 영향을 미치거나 대학의 진실성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예산 집행 중단 조치의 시발은 한국 국회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구재회 한미연구소(USKI) 소장

구재회 한미연구소(USKI) 소장

이에 대해 갈루치 이사장은 “한국 정부가 부당한 간섭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건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변명이며 사실도 아니다”며 “나는 조윤제 주미대사를 포함해 한국 대표자들로부터 구 소장을 교체하라는 요구를 계속 받아왔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학의 독립성을 왜곡하려는 시도는 미국 내 한국의 위상과 메시지를 깎아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갈루치 이사장은 “예산 집행 중단 조치는 국회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우리 손을 떠났다”는 주미 대사관측 주장에 대해서도 “복수의 한국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일은 오직 청와대 내부의 한 사람이 주도한 것이고 정책이나 원칙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 과제로 추진한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갈루치 이사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서한을 보낼 계획이다.

'강제 퇴출' 대상자로 지목된 구 소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내가 KIEP를 통해 올해 6월 안식년을 가는 형식으로 물러나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했다”면서 “KIEP측이 처음엔 수용할 듯하다가 청와대와 협의한 뒤 이번엔 제니 타운 부소장까지 물러나야 한다고 조건을 추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KIEP 측은 “청와대가 관여했는지는 알지 못하며 지난해 국회 예ㆍ결산과정에서 USKI의 예산 투명성 확보와 함께 소장의 장기 재직 문제 해소 요구가 있었다”며 “이를 시정하는 과정에서 갈루치 이사장과 대학 측이 독립성 침해라며 거부해 예산지원 중단으로 결론난 것”이라고 말했다.

USKI는 각각 초대 이사장과 소장이던 돈 오버도퍼(작고)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와 주용식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주도로 한국 정부 예산 4억원을 받아 2006년 설립됐다. 이때 존스홉킨스대 SAIS에 한국학과도 개설됐으며 졸업생들은 국무부에 많이 진출한다.

수년 뒤 국무부 관료 출신인 조엘 위트 USKI 선임연구원과 제니 타운 부소장이 북한 상업위성 분석을 통해 핵미사일 등 북한의 군사 동향과 전 세계 한반도 전문가들의 분석을 소개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도 만들었다.
그런데 정부의 이번 예산 중단 조치로 워싱턴에서 한국경제연구소(KEI)와 함께 양대 한국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해온 USKI가 사라질지 모를 운명에 처했다.

제니 타운 한미연구소(USKI) 부소장 겸 38노스 편집장

제니 타운 한미연구소(USKI) 부소장 겸 38노스 편집장

2007년부터 주 소장에 이어 12년째 USKI 운영을 맡아온 구재회 소장은 “갈루치 이사장과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운영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외국 대학의 연구소장까지 정치적인 이유로 갈겠다는 발상 자체가 워싱턴에선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구 소장과 인터뷰 문답.

한국 정부나 KIEP는 “국회의 요구”라는 데 갈루치 이사장은 왜 청와대를 지목하나.

“지난해 국회 예ㆍ결산 전부터 청와대 정책실 주도로 국회 정무위 간사인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실과 총리실 경제ㆍ인문ㆍ사회연구회(NRC) 측에서 회의를 열어 내가 물러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부터 KIEP를 통하거나 혹은 갈루치 이사장이나 내게 직접 노골적으로 요구해왔다. 회의 내용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메일을 갖고 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바쁠 시기에 조윤제 주미대사까지 갈루치 이사장을 만나 거듭 나를 지목해 물러나라고 할 정도다. 이번 예산 조치 중단도 형식은 KIEP 상위기관인 NRC가 이사회까지 열어서 결정했다고 한다. 조그만 해외 연구소가 한국 정부에 그렇게 중요한가.”

소장을 물러나라는 게 왜 정치적 이유라는 건가.

“발단은 이재오 전 의원이 2008년 USKI에 방문학자로 온 거였다. 주용식 교수와 내가 이 전 의원이 있는 동안 배려했더니 한국에선 내가 ‘이재오와 가까운 사람’이고, '이명박 정권과 가까운 사람'으로 돼 있더라. 지금 여당 쪽에서도 추미애 대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송호창 전 의원 등 많은 정치인이 왔고, 현 정권 출범후 세미나도 많이 열었다. 현재 양정철 전 비서관도 방문학자로 와 있다. 내가 미국 공화당에 가까운 보수성향인 건 맞지만 우리 연구소는 갈루치 대사, 조엘 위트를 포함해 워싱턴내 대북 대화파의 산실이다. 사실 지난 정부 때도 서재정 전 교수에 대해서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사람이 왜 USKI에 있느냐’는 압력이 있었다. 그때도 USKI는 물론 대학이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6년 계약 기간을 마치고 떠났다. 그런데 정부가 바뀌니 예산까지 끊겠다고 하는 거다.“

한국에선 20억원 예산 지원을 받으면서도 한두 페이지 보고만 해왔다는데.

“매년 KIEP에 3000~5000페이지 분량으로 사업 내역을 보고했다. 국제택배로 보내니 KIEP에서 분량이 많다고 부담스러워해 나중엔 CD나 USB로 보냈을 정도다. 예산 집행내역 보고는 사실 기부계약 자체에 없고, 대학 규정엔 기부자에게 예산 세부 지출 내용까지 보고하게 돼 있지 않지만 매년 KIEP가 요구하는 형식에 맞춰 보냈다. 지난해 상세한 보고를 요구해서 직원 전원의 인적사항, 출신 학교까지 다 보냈다. 그러니 KIEP가 중간에서 국회나 청와대에 제대로 전달을 안한 것인지, 투명성이 없다는 지적을 이해할 수 없다.”

한국학 교육이 부진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한국학과 교수가 왜 1년 계약직이냐고 문제 삼는데 서 교수가 있을 때는 국제교류재단(KF)의 지원으로 3년 계약으로 한 차례 연장했던 건데 그게 끊어지면서 그렇게 됐다. 또 한국어센터 강사는 박사학위(Ph.D)가 없느냐고까지 문제 삼는데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어떤 박사를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부러 꼬투리 거리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 압박 강도가 어느 정도나 셌나. 

"갈루치 대사가 내가 떠나는 걸 극구 반대하니 정부 고위 관계자가 '구 소장이 연구소 예산으로 하와이 가족여행까지 다녀왔다'는 허위 비방까지 했다. 나는 물론 가족들도 하와이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또 문정인 대통령 특보까지 갈루치 대사를 설득하려고 '구 소장이 20만 달러 넘게 연봉을 받는다더라'고 하더라. 근데 내 연봉은 14만 달러다. 워싱턴 다른 싱크탱크는 물론 한국 정부가 직접 설립한 KEI 소장에 비교해서도 훨씬 적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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