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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예비군…과학화 훈련으로 정예를 만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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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대한민국 남성에게 예비군 훈련은 시간낭비의 대명사였던 적이 있다. 현역 시절의 악몽을 일깨운 것도 부족해 형편없는 점심과 형식적인 훈련 때문에 훈련 의욕이 꺾이기 일쑤였다. 이같은 예비군 훈련을 개선하는 데 육군이 팔을 걷어붙였다.

달라진 예비군의 모습은 56사단 금곡 예비군훈련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6일 예비군 창설 50주년을 맞아 육군은 국방부 기자단에게 금곡 훈련대를 공개했다. 이 훈련대엔 2013년부터 149억원을 들여 만든 ‘과학화 훈련장’이 마련됐다.

6000원짜리지만 풍성한 도시락

훈련대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었다. 이날 기자단과 함께 훈련대에 입소한 연세대ㆍ한성대 재학 예비군 900여명과 예비군과 똑같은 메뉴였다. 한식과 도시락 등 두 종류를 주는데 기자단에겐 도시락이 지급됐다. 밥과 김치, 계란후라이에 제육볶음, 줄줄이 소시지, 떡갈비, 생선가스, 어묵국이 나왔다. 생수와 디저트를 겸한 사과음료도 있었다. 6000원짜리라고 한다.

6000원짜리 예비군 점심 도시락. 생각보다 푸짐했다. 이철재 기자

6000원짜리 예비군 점심 도시락. 생각보다 푸짐했다. 이철재 기자

식사를 마친 뒤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등록 절차를 밟았다. 요즘 예비군은 인터넷으로 원하는 훈련 날짜를 선택할 수 있다. 휴일에도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신분증을 교관병에게 건네자 스캐너로 위변조 여부와 신원을 확인했다. 등록을 마친 뒤 스마트워치를 받았다. 이 스마트워치로 훈련 결과ㆍ이동 거리ㆍ맥박 등을 볼 수 있다. 위급 상황에서 SOS 긴급호출 버튼을 누르면 훈련대 통제실에 해당 스마트워치의 위치가 나타난다.

훈련대 입소에 앞서 등록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 육군]

훈련대 입소에 앞서 등록절차를 밟고 있다. [사진 육군]

예비군은 10명이 한개 분대를 이뤄 영상 모의훈련, 개인화기 사격, 시가지 교전, 정신훈련 등을 함께 받는다. 어떤 훈련을 먼저 받을지는 분대원들과 상의해 결정한다. 마치 대학에서 강의 시간표와 짜는 것과 비슷하다. 분대의 훈련 성적이 좋을 경우 2시간 이른 오후 3시에 조기퇴소할 수 있다.

등록절차를 마친 예비군에게 지급된 스마트워치. 이철재 기자

등록절차를 마친 예비군에게 지급된 스마트워치. 이철재 기자

2시간 먼저 퇴소하는 게 동기 부여

예비군에게 조기퇴소는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이다. 훈련대 관계자는 "호흡이 맞는 사람들과 분대를 이루고, 나름 효율적인 동선을 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내 사격장의 표적지가 자동으로 피탄 지점까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내 사격장의 표적지가 자동으로 피탄 지점까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내 사격장의 훈련을 참관했다. 실내 사격장은 예비군 훈련대 민원의 1순위인 사격 소음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표적 자동이동 레일이 있어 표적지를 갈아 끼우러 걸어갈 필요가 없다. 총기는 고정됐고, 사로마다 방탄벽이 있고, 사격자는 방탄조끼를 입어야 한다. 2015년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고에 따른 조치다. 사격 후 탄피를 주울 필요도 없다. 사격 후 총기 오른쪽의 수거기에 탄피가 모인다고 한다. 5발 사격해서 지름 5㎝ 원 내에 3발 이상 명중해야 합격이다.

실내 사격장에서 탄피를 자동으로 모아주는 장치. 이철재 기자

실내 사격장에서 탄피를 자동으로 모아주는 장치. 이철재 기자

게임을 하듯 훈련하는 영상모의 사격장

예비군들이 영상모의 사격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육군]

예비군들이 영상모의 사격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육군]

영상모의 사격장은 마치 게임장과 같았다. 대형영상 화면에 나타나는 적을 명중시키는 훈련이 치러졌다. 모두 30가지 전투상황이 준비됐는데 이날은 지하철 5호선 군자역과 영동대교 위에서의 교전을 체험했다.

분대 10명이 각 사로에 엎드린 채 화면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을 향해 사격했다. 만약 적이 20m 이상 접근할 때까지 맞추지 못하면 사격자가 전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육군 관계자는 “영상모의사격은 가상현실(VR)로 전환하려 한다. 각자가 작은 돔에 들어가 장비를 착용하고 체험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개발 작업을 하고 있고 빠르면 내후년에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바이벌 게임보다 더 몰입감 넘친 시가지 교전 

예비군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시가지 교전 훈련이었다. 가건물 사이로 이동하면서 상대편을 향해 총을 쏘는 방식이다. 마치 어렸을 때 총싸움과 비슷했다. 서바이벌 게임과 비슷하지만 페인트탄을 발사하지 않고 레이저 발사기와 감지기를 활용한 마일즈(MILES) 방식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시가지 교전 훈련 투입에 앞서 마일즈 장비를 입고 있다. [사진 육군]

시가지 교전 훈련 투입에 앞서 마일즈 장비를 입고 있다. [사진 육군]

이날 국방부 기자단 10명은 청군을, 상대편 황군은 연세대 예비군 10명을 짜 시가지 모의 전투를 벌였다. 전투 투입에 앞서 작전을 짜면서 2명씩 짝을 이뤄 흩어졌다.

시가지 교전 훈련의 한 장면. [사진 육군]

시가지 교전 훈련의 한 장면. [사진 육군]

빗줄기 속 시가지 교전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건물 속에 숨어있으려 해도 어느새 황군이 나타나 사격을 퍼부었다. 총알을 피해 보려 했지만 어깨에 단 특수장비가 울렸다. 왼쪽 팔뚝의 교전장비를 확인해보니 중상이었다. 중상자는 2분간 총을 쏠 수 없다. 총에 맞을 경우 실시간으로 사망ㆍ중상ㆍ경상이 판명된다. 적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느냐에 따른 점수가 있어 승패를 결정짓는 형식이다.

시가지 교전 훈련의 한 장면. [연합뉴스]

시가지 교전 훈련의 한 장면. [연합뉴스]

2분이 지난 뒤 황군이 눈앞에 나타나자 총을 쐈다. 탄피가 튀거나 화약 냄새가 나진 않지만 몰입감은 대단했다. 다른 건물로 진입할 때 돌연 표적이 벌떡 일어났다. 10초 안에 표적을 맞추지 못할 경우 내가 사살될 수 있다. 실제 전투와 똑같이 적군이 아닌 아군 총에 희생된 전사자도 있었다.

죽지 않으려면 좀 더 빨리 움직이고, 좀 더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대학생 예비군의 완승이었다.

시가지 교전 훈련의 한 장면 [사진 육군]

시가지 교전 훈련의 한 장면 [사진 육군]

육군 관계자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훈련 교범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더욱 개선해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처럼 과학화 훈련장은 금곡을 비롯해 전국에 4곳이 지어졌다. 육군은 2023년까지 과학화 훈련장을 40곳으로 늘릴 방침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예비군 창설 50주년…육군, 동원전력사령부 창설

예비군의 50돌 생일을 맞았다. 1968년 북한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1ㆍ21 사태가 일어나자 그해 4월 1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예비군 창설식이 열렸다. 2006년부터 매년 4월 첫째 금요일을 ‘예비군의 날’로 기념하게 됐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지난 50년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내어준 예비군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격려사에서 “‘예비전력 정예화’는 예비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서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이번에 새롭게 창설되는 육군 동원전력사령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육군은 이날 경기도 용인 육군 제3군사령부 연병장에서 육군 동원전력사령부 창설식을 열었다. 동원전력사령부는 평시 예비군이 완벽한 전투준비태세를 갖추도록 하며, 유사시 즉각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부대로 만드는 게 핵심 임무다. 개전 초기 수도권 방어 전력을 보강하고 병력 손실을 효과적으로 보충하는 임무도 맡는다.

지금까지 군단 예하에 있던 동원사단과 동원지원단 등은 동원전력사령부 예하 부대로 바뀐다. 이에 따라 군단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할 수 있는 동원전력 강화 업무를 동원전력사령부가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동원전력사령부 창설은 국방개혁 2.0에 따라 현역 병력을 감축하고 예비군을 정예화한다는 국방부 방침과도 맞물린다. 육군은 동원전력사령부가 통일 이후에도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같은 효율적인 동원 체제를 구축하는 데 구심적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초대 동원전력사령관에는 구원근 육군 소장이 임명됐다. 구 사령관은 제2작전사령부 동원참모처장, 육군본부 동원차장, 제36사단장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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