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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간 '대통령' 27번 부른 조원동 선고…'CJ 협박' 유죄 인정

중앙일보

입력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미경 CJ 부회장 퇴진 강요미수 관련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미경 CJ 부회장 퇴진 강요미수 관련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결국 가장 큰 책임은 이 사건 범행을 지시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조원동 피고인의 범행이 중하긴 하지만, 실형을 선고하는 건 무리라 판단해 이번에 한해서만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CJ그룹 경영에 개입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조원동(62)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법원이 모두 유죄를 인정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 김세윤)는 6일 오전 10시 417호 법정에서 열린 조 전 수석의 선고공판에서 조 전 수석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시간 뒤인 오후 2시 10분에는 같은 재판부가 같은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선고를 한다.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는 8분간 조 전 수석에 대한 선고를 읽는 동안 '대통령'이란 단어를 많이 썼다. "대통령의 지시가 위법한 지시임을 인식하면서도"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등 총 27번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을 호명했다.

재판부는 조 전 수석이 손경식 회장에게 "대통령의 뜻이니 이미경 부회장을 경영에서 손 떼게 하라""서둘러야 한다. 뭐가 더 필요하냐"고 말한 것은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의구심, 즉 불안감을 일으키는 '협박'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손 회장에게 연락했던 2013년 7월 당시가 CJ 이재현 회장이 탈세·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직후라는 점도 고려됐다.

조 전 수석은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한 말은 협박이 아니었고, CJ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해왔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 전 수석은 "대통령의 지시였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상관의 명령이라도 그 명령이 위법이라면 따를 필요가 없다"면서 "사기업 경영 인사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위법임이 명백한 이상,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란 이유만으로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석은 실장과 함께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대통령의 참모로, 대통령이 잘못한 결정을 할 경우 직언을 할 수 있는 위치이며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대통령의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렇게 조 전 수석의 잘못이 무겁다고 보면서도 실형은 선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결국 가장 큰 책임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실제로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지는 않아 범죄가 미수에 그쳤다는 점, 조 전 수석이 박영수 특검팀 수사에 성실히 임한 점도 참작됐다.

조 전 수석은 이날 변호인 없이 홀로 선고를 들으러 왔다. 선고가 끝난 뒤 여러 명의 기자가 조 전 수석을 따라 걸으며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전 수석으로서 국민께 하고 싶은 말씀 없느냐"고 물었지만 조 전 수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법원을 빠져나갔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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