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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등산사] 하루 산행에 3000만원 날리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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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이리 와.”
자못 끈적이는 A부장의 권유에 B과장, C대리는 마지못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

■ 자연공원법 #자연공원법, 국립·도립·군립에 시립·구립공원까지 포함 #샛길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가림막 치면 과태료 폭탄 #나무·바위 함부로 손 대고 빼가면 3000만원 이하 벌금 #

삼성산에 버려진 막걸리통. 이런 무책임한 행위들이 산에서의 음주금지를 불러왔다. 김홍준 기자

삼성산에 버려진 막걸리통. 이런 무책임한 행위들이 산에서의 음주금지를 불러왔다. 김홍준 기자

산행 12년 베테랑 A부장은 휘하의 B과장과 C대리, 그리고 ‘아들’이라고 부르는 애완견을 데리고 북한산 국립공원에 갔다. 봄이 왔고 꽃은 피었으며 바람은 살랑거렸다. 그들이 넘은 선은 ‘샛길 출입금지’ 푯말이 붙은,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갈색의 로프였다. 그들은 링 위에 오르는 복서처럼, 로프를 아래위로 벌리고 그 사이를 통해 금단의 구역에 들어섰다.

으슥한 곳에서 A부장은 배낭에서 이것저것 꺼냈다. 낯익은 ‘초록색 물통’부터 88올릭픽 무렵부터 써왔다는 ‘버너’까지.
“이게 빠질 수는 없지. 자 한잔씩 하자고.”

A부장은 막걸리를 따른 뒤 진달래 꽃 한 송이 띄웠다. 화전을 만든답시고 진달래 몇 송이를 더 꺾었고 근처의 냉이와 쑥도 캤다. 분재를 만든다며 작은 나무도 채취했다. 버너(정식명칭은 스토브다)에 불을 붙였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집에서 준비해온 밀가루반죽 위에 진달래를 얹고 지졌다. 산행의 치명적 유혹인 라면도 뺄 수 없었다.

지난 4일 북한산국립공원 대동문 정상부에서 등산객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지난 4일 북한산국립공원 대동문 정상부에서 등산객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A부장의 배낭은 화수분이었다. 초록색 통에서 하얀색 통으로 갈아탔다.

“자, 자, 이제 초록색 병은 갖고 다니면 안 돼. 눈에 잘 띄거든. 레인저(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직원을 말함)들이 그것만 쳐다볼 거야. 다른 색 병으로 바꿔야 해. 초록색인 ㅈㅅ 대신 하얀색인 ㅈㅍ으로.”

해가 중천에 올랐다. A부장은 다시 마법의 배낭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차양막, 좀 있어 보이는 말로는 ‘타프(tarp)’였다. 그들은 타프 밑에서 오후의 나신(裸身)으로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시즌, 그들은 꽃놀이패를 들었다. 100원도 잃기 싫어하는 A부장과 B과장은 연신 담배를 피웠다. 전자담배였다.

강원도 오대산에서 등산객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강원도 오대산에서 등산객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그 때였다. 공단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공단 직원들은 이미 이들의 행위를 사진으로 촬영한 상태였다.

무등산 국립공원에서 공원사무소 직원이 속옷만 입고 물놀이하는 탐방객들을 단속하고 있다. 이렇게 웃통을 벗고 물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공원법상 금지하고 있다. 손발을 담그는 정도만 허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등산 국립공원에서 공원사무소 직원이 속옷만 입고 물놀이하는 탐방객들을 단속하고 있다. 이렇게 웃통을 벗고 물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공원법상 금지하고 있다. 손발을 담그는 정도만 허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공원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탐방객을 공원사무소 직원이 적발하는 모습. 애완동물은 생태계 교란 우려로 국립공원 동반을 금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공원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탐방객을 공원사무소 직원이 적발하는 모습. 애완동물은 생태계 교란 우려로 국립공원 동반을 금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3월 13일부터 국립공원·도립공원·군립공원에서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과태료를 얻어맞는다. 자연공원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다. 시행령은 자연공원 내 대피소·탐방로·정상 등에서의 음주를 금하고 있다. 사실상 산 모든 곳, 모든 산에서 음주 금지다. 자연공원법 제1장 제2조에서는, 자연공원은 국립공원·도립공원·군립공원 및 지질공원을 아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연공원법 제2조의 4항은 군립공원의 정의를 내렸고 이 4항의 별항 2,3에는 시립공원·구립공원까지 병기했다.

그러니까, 웬만한 산에서 음주·흡연으로 적발 뒤 아무리 “여긴 국립공원이 아니잖아요”라고 항변을 해도 소용이 없다. 국립공원법이란 건 아예 없고 자연공원법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네가 뭔데”도 안 통한다. 공원관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자연공원법 제 34조에 따라 사법경찰권을 부여 받는다.

A부장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음주금지 단속을 피하려다 더 무거운 과태료를 내야하는 샛길 출입을 감행한 걸로 보인다. A부장의 ‘혐의’와 부과되는 과태료는 다음과 같다.

① A부장, 애완견 데리고 가시다. - 과태료 10만원
생태계 교란을 우려해 애완동물 동반을 금하고 있다.

② A부장, 샛길 진입하시다. - 과태료 10만원, 2차 적발 30만원, 3차 50만원
산행객의 조난 우려, 자연 경관 보호와 보존을 위해 지정탐방로 이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③ A부장, ‘초록색 음료수 통’을 꺼내 마시다. - 과태료 5만원, 2차 이후부터 10만원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산에서의 술 마시는 것을 금하고 있다.

④ A부장, 산나물·나무를 채취하시다. -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공원 내 자연자원의 훼손·채취 및 반출을 금하고 있다.

⑤ A부장, 스토브를 이용해 빈대떡, 라면을 해 드시다- 과태료 10만원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의 취사행위를 금하고 있다.

⑥ A부장, 타프를 치시다. - 과태료 10만원. 2차 적발 20만원. 3차부터 30만원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의 야영을 금하고 있다. 햇빛 차단용 타프를 설치하는 것도 야영으로 간주하다.

⑦ A부장, 오후의 나신으로 화투를 치시다. - 과태료 10만원
과도한 노출과 사행 행위를 금하고 있다. 계곡에서 웃통을 벗고 있는 것도 제재 대상이다. 본인들은 편할지 몰라도, 미풍양속을 해치고 다른 등산객들이 불편해 할만한 행위는 단속 대상이라는 것이다.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손을 씻는 정도는 허용된다.

⑧ A부장, 흡연 하시다 - 과태료 10만원, 2차 적발 20만원, 3차부터 30만원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의 흡연을 금하고 있다.

단순 계산하자면, A부장은 최대 3065만원의 벌금과 과태료를 맞게 됐다. B과장과 C대리는 2, 7, 8에 해당, 30만원을 토해내게 됐다.

샛길로 들어가 미끄러지면서 크게 다치거나, 버섯을 함부로 채취하다 독버섯을 먹어 사경을 헤매는 경우는? 본인은 아프고 죽을 지경이지만 법은 법이다.

한편 등산 중 위급 상황도 아닌데 119 구조 헬기를 부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어 논란이다. 소방방재청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위급 상황에서 헬기를 출동시킨다. 구조 요청자에게 비용을 물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경미한 부상과 탈진에도 구조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어 정작 위급 상황에서 신속한 대처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에서는 등산 중 무분별한 헬기 구조 요청을 막기 위해 구조 요청자에게 비용을 청구하기로 했다. 1인당 50만원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일상등산사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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