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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실은 빨간 버스 통일 향해 출발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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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교사를 명예퇴직한 뒤 퇴직금으로 마련한 미니 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승식씨. [프리랜서 장정필]

교사를 명예퇴직한 뒤 퇴직금으로 마련한 미니 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승식씨. [프리랜서 장정필]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어느 날 그만뒀다. 교단에서 내려오며 받은 퇴직금을 털어 중고 미니버스 한 대를 샀다. 전국을 돌며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교사에서 통일운동가로 변신한 김승식(58)씨다.

교사 출신 통일운동가 김승식씨

전남 나주의 한 사립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김씨는 지난 2월 28일 명예퇴직을 했다. 계속 근무할 경우 정년퇴직 시점은 오는 2022년 8월이었다. 예정보다 4년 6개월 빨리 교편을 놓은 것이다. 주변에선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34년간 교사로 근무했던 김씨가 학교를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4000만원을 들여 빨간색 중고 미니버스를 구매한 것이다. 이어 차량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잠을 잘 수 있게 내부를 개조했다. 의자가 있던 자리에 싱크대와 매트리스를 깐 침대, 노래방 기계를 설치했다. 김씨는 “차량 지붕에는 장기간의 바깥 생활에 대비해 태양광 장치도 달았다”며 “이제 떠날 일만 남았다”고 했다.

김씨는 캠핑카 형태의 미니버스를 몰고 오는 9일 대장정에 나선다. 2022년 8월까지 전국 17개 시·도의 마을 곳곳을 돌며 주민들을 만나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는 여정이다. 김씨는 “통일 관련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수집했다”며 “거창한 목표는 없다. 단지 한민족인 남과 북이 이제 분단의 비극을 넘어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통일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젊은 시절 TV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다. 김씨는 ‘먼훗날에도 통일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역할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씨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이산가족 문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부모와 자식이, 형제와 남매가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남북이 왕래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통일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전남 강진군 성전면 명동마을에서 일정을 시작한다. 그의 고향이다. 하루 한 곳에서 3시간씩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알린 뒤 이동하는 게 목표다. 김씨가 이 기간 통일 운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김씨는 문화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농어촌 현실을 고려해 일종의 재능기부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이 평소 즐기는 색소폰 연주를 통해서다. 이와 함께 캠핑카 내에 설치한 노래방 기계로 노래잔치를 열고 커피머신에서 내린 따뜻한 커피도 어르신들에게 대접할 계획이다.

김씨는 “통일 전문가는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공감하다 보면 현재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그만큼 통일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국 17개 시·도를 순회하는 여정이 끝날 무렵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돼 캠핑카를 몰고 북한까지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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