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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분산경제에 대한 분산된 시각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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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말로만 듣던 분산과 공유는 어느새 내 주변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쇼핑 메카인 서울 명동의 초입 대신파이낸스빌딩에 들어가 보니 사무실 같긴 한데 접견·회의실인지 휴게실인지 헷갈리는 곳이 층마다 눈에 펼쳐졌다. 어수선하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빈자리 찾아가 일하는 ‘핫 데스크’였다. 일반 사무실도 칸막이가 없고 유리 벽으로 돼 있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블록미디어 같은 스타트업이 많지만, 에어비앤비 등 외국계 공유기업과 국내 대기업이 입주해 비즈니스 생태계가 어우러졌다. 자기 책상이 없는 회사, 1인 창업이 많아 노트북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젊은이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분권의 상징인 암호화폐, 보물인가 요물인가 #집중 vs 분산 대결장 된 4차 산업혁명 시험대

이 신축 건물의 7~16층 10개 층을 장기 임대해 개조한 뒤 임대를 하는 곳은 위워크(Wework)라는 다국적 오피스 공유 업체다. 국내 진출 2년이 안 돼 서울 시내 번화가에 5개 대형 빌딩 지점을 차렸다. 연말까지 9개가 된다고 한다. 창사 4년 만에 세계 50여 대도시 160여개 빌딩으로 사무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보기 따라선 봉이 김선달의 물장사 같은 발상으로. 기업가치를 무려 200억 달러(22조원)로 키우면서 데카콘(Decacorn) 리그에 당당히 입성했다. (데카콘은 기업가치 100억 달러 넘는, 증시가 군침 흘리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뜻한다) 우버·디디추싱 같은 차량 공유업체를 포함해 16개가 탄생했는데 대부분 공장 하나 없는 네트워크 기업이다.

국내 재계 3위 SK의 ‘한국판 위워크’ 공유·협업 실험도 눈길을 끈다. 명동에서 멀지 않은 서린동 지상 35층 SK 사옥은 칸막이와 지정 좌석을 없애는 대대적 개조 공사를 준비 중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열심히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의 협업 공간도 마련한다고 한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는 분산경제(Distributed economy, Deconomy)와 동전의 앞뒤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운송·숙박·사무·파일·화폐 같은 플랫폼만 만들어 놓으면 돈벌이에 목마른 이들이 몰려들어 통제기관이나 강력한 매개자 없이 알아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3, 4일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Deconomy 2018’ 국제심포지엄에선 분산경제의 최대 현안인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암호화폐는 2008년 비트코인 탄생 이후 올 1분기에 최악의 수난기를 보냈지만, 토론의 향연에 나선 전문가들과 모여든 청중에게 ‘암호화폐 종말론’ 괴담은 강 건너 불인 듯했다.

그러나 암호화폐 기상도는 분명 먹구름이다. 정보기술(IT) 쪽 종사자들은 금융계 사람들, 특히 법정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의심쩍은 눈초리가 불편하다. 투기 광풍과 거품의 폭탄 돌리기, 금융불안, 국부유출, 자금세탁, 비트코인 폐인의 양산, 이런 후유증을 걱정하는 당국은 규제의 칼날을 벼린다. 블록체인이 쓸모는 분명 있겠지만 그 자식인 암포화폐는 지급·가치저장 수단으로 당장 믿음직스럽지 않다. 암호화폐 회의론의 전도사로 불리는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먼저 활주로(블록체인 플랫폼) 깔아놓고 그 길로 트럭 다녀도 비행기(암호화폐)라고 우기는 것”이라고 혹평한다.

에너지 중앙은행 격인 한국전력이 분산경제의 공격 대상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원자력·화력 발전은 안전·환경 친화적이지 않을뿐더러 중앙집권적이라 곤란하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의 ‘에너지 민주주의’ 구호, 태양광을 통한 가가호호 발전과 전력 직거래 구상 등이 그것이다. 암호화폐의 시조(始祖)인 데이비드 차움도 이번 행사에 참석해 암호화폐의 정신을 “개인 존중과 직접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았던가. 제2의 비트코인,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도 행사 전 암호화폐의 본령으로 ‘탈중앙화’를 꼽았다.

블록체인과 탈원전은 실용적이라 좋은가, 정의로워서 좋은가. 분산경제가 4차 산업혁명의 효과적 도구를 넘어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를 자임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