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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속에도 ‘고르디우스의 매듭’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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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부 차장

김승현 정치부 차장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은 최근 가장 주목 받은 정치적 수사다. 수입한 고사성어 같아서 친숙하진 않지만 꼬일 대로 꼬인 북한 비핵화 이슈를 빗대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형용사 ‘고르디언(gordian)’은 ‘지극히 어려운’ ‘해결하기 어려운’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달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토록 어려운 비핵화 문제를 ‘일괄적·포괄적’으로 타결한다는 맥락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겠다”고 표현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신감 넘치는 비유법이었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기류가 달라지기 전까지의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 방안으로 “단계적 조치”를 언급하면서 ‘단칼에 매듭을 끊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는 섣부른 상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르디우스의 매듭 신화도 비슷한 함정을 경고하고 있다. 기원전 8세기(우리의 고조선 때다), 지금의 그리스 북쪽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옆 나라(프리기아)의 고르디우스 왕은 자신을 왕좌에 앉혀준 소달구지를 신에게 바쳤다. 그러면서 아주 복잡한 매듭으로 신전 기둥에 묶었다.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왕이 될 것이다’는 예언과 함께. 기원전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지나다 매듭 풀기에 도전했다. 그는 잘 풀리지 않는 매듭을 칼로 잘라버렸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복잡한 문제를 뜻밖의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이후 알렉산더는 아시아를 제패했고 신화는 완성됐다. 그러나 매듭을 잘랐다는 점을 부각한 정반대 해석도 전해지고 있다.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잘랐기 때문에 결국 알렉산더의 제국이 분열했다는 것이다.

남북문제에서도 매듭을 자른 선택이 분열로 이어졌다는 후자의 해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쾌도난마식 해법은 부작용을 수반한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갑자기 접한 시민의 반응에서 그런 징후를 느낀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와 함께 불편한 감정이 엄습해 온다는 것이다. 30대의 한 직장 남성은 “김정은을 만난 뒤에 ‘악수해 주셨는데 너무 떨려서…’라고 말하는 아이돌 가수의 표현이 거슬렸다. 존칭도 싫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이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다”고 농을 했다는 소식에 “할 말을 잃었다”고 분노를 표하는 이도 적지 않다. 8년 전 순국한 천안함 46용사 유족의 절규를 지켜본 국민은 혼란스럽다. 어쩌면 고르디우스 매듭보다 더 복잡한, 단칼에 베었다가는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매듭이 우리 마음을 휘감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화처럼 단순하지도, 예언처럼 명료하지도 않은 길이 우리 앞에 있다.

김승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