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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김기식은 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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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A는 전직 고위 공무원이다. 지금은 금융회사 고문을 맡고 있다. 근 1년여 만에 만난 그가 뜬금없이 꺼낸 말이 “미투(나도 당했다)”였다. 그는 무척 속이 상했는지 제법 장황하게 말을 이어갔는데, 요약하면 이랬다.

그는 자신의 조직에 손대 #금융 갑질 없앨 수 있을까

금융회사에도 미투 운동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미투의 본질은 권력형 갑질이다. 힘이 센 기관, 고위직일수록 미투 희생자를 많이 만들어낸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금융당국이 갑 중의 갑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에 대한 ‘미투’는 눈 씻고 찾으려 해도 없다. 왜 그렇겠나.

금융감독원의 힘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57개 은행과 62개 보험사, 799개 증권·투자자문사, 3474개의 저축은행을 관리·감독한다. “사고 나면 책임지기 싫다”며 직접 관리·감독은 안 하지만 시시콜콜 규제하는 핀테크 기업이나 대부업체도 수천 곳이다.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금감원이 쥐고 있다. 웬만한 제재 하나면 회사는 영업을 못 하고, 임직원은 사실상 영원히 금융계에서 아웃이다. 그러니 감독원 갑질에 속수무책이다. 감히 ‘나도 당했다’는 소리조차 못 내는 것이다(그는 “나도 마찬가지”라며 익명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했다).

금감원 갑질은 구조적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예컨대 유권해석은 관할 당국의 권리이자 의무다. 다른 부처라면 전화 한 통, e메일 하나로 된다. 그런데 금감원은 다르다. 금융회사 임직원이 담당자를 찾아가 먼저 양해를 구한다. “이러이러한 유권해석이 필요한데, 질의를 해도 되겠습니까?” 담당자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질의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몇 년 전 KB금융 사태 때 금감원 담당자가 KB금융 임원에게 한밤중에 “당장 들어와 보고하라”고 했던 얘기는 유명하다. 검사 나온 금감원 직원이 자신이 써야 할 보고서를 은행원에게 대신 작성시킨 일은 또 어떤가. 금융회사 임직원의 생사를 결정하는 제재심의위원회는 더하다. 조사 때 당사자의 해명을 듣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의자의 변론권이 원천 봉쇄되는 것이다. 잘못된 검사·조사를 바로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양들의 침묵’이 따로 없다.

금융은 다른 산업과 다르다. 면허 장사다. 규제와 허가가 산업의 생로병사를 결정한다. 금융당국은 관리·감독만 하는 게 아니다. 산업의 조타수이기도 하다. 금감원이 “이리로 가라”고 하면 금융회사는 거절할 수 없다. 선택은 두 가지다. 따르거나 망하거나. 입으론 핀테크를 육성한다며 P2P(개인 대 개인) 투자 한도를 1000만원으로 묶어도, 인터넷 은행의 자본 확충을 통제해도 “아~네” 따라야 한다. 한국 금융이 우간다 수준으로 평가받는 데는 적어도 절반 이상의 책임이 금융당국에 있다.

A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신임 원장 김기식으로 옮겨갔다. 김기식은 역대 금감원장과 크게 다르다.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금융은 잘 모른다. 디테일에 약하다. 이건 큰 약점이다. 금융은 특히 디테일로 먹고사는 곳이다. 국회의원 시절 그는 각종 금융 현안에 대해 분명하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금융계의 저승사자’다. 금융을 잘 모르니 금융계에 빚진 것도 없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어떨까. 금감원의 갑질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 금융계에도 미투 바람이 불게 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도 그는 성공한 금감원장이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거센 내부 반발을 이겨내야 한다. 자기 손발을 자르는 일이다. 웬만한 심장과 머리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서없는 넋두리에 시간이 꽤 지났다. A와 헤어지면서 씨~익 서로 쓴웃음을 지었다. “불가능한 상상이겠지요?”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