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매일 세끼 먹듯 놀아야" 3시까지 '놀이수업' 실험 나선 강원도

중앙일보

입력 2018.04.05 01:00

업데이트 2018.04.0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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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27일 강원도 화천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학교 뒷뜰에서 놀이 수업을 받고 있다. 화천=최승식 기자

지난달 27일 강원도 화천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학교 뒷뜰에서 놀이 수업을 받고 있다. 화천=최승식 기자

"빨리, 빨리 이쪽으로." 

"꺄아악, 잡힌다 잡힌다."

지난달 27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의 화천초등학교 뒤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술래잡기ㆍ땅따먹기 등을 하느라 이마에는 땀이 흥건하다. 이 학교 1~3학년 아이들은 교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오후 3시까지 학교에서 놀이 수업을 받는다. 교사들이 전래놀이를 가르쳐주고 안전 지도를 한다. 달팽이 모양 놀이판을 달리던 2학년 김수빈(8)양은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서 학교 오는 게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초등 돌봄 기획
화천초 1~3학년, 오후 3시까지 놀아
'놀이밥 공감학교'에 학부모도 반색

강원교육감 "학부모 돌봄 부담 줄여"
교사 걱정 많았지만 안전 사고는 '0'

놀이수업은 강원도교육청의 ‘놀이밥 공감학교’ 시범사업이다. 애들에게 최대한 놀이시간을 주되, 안전한 학교 울타리 내에서 교사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화천초 김상희 교사는 “뛰어놀며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면 수업 시간 집중도가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학부모도 정규수업이 1~3시간 늘어나는 걸 더 반긴다. 학교가 방과후 시간을 맡아주기 때문에 맞벌이 부모에게 이만한 게 없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학부모 정미란(38)씨는 “돌봄교실 추첨에서 탈락해 당장 아이를 어디에 맡길지 걱정했는데, 학교에서 뛰어놀며 방과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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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교육청의 실험이 ‘초등 돌봄 절벽’을 메우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선진국의 ‘전일제 학교’와 비슷한 형태다. 독일ㆍ프랑스 에선 초등학교가 ‘공적 돌봄’의 중심이다. 맞벌이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아이들을 맡아주고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의 초등학교는 저학년일수록 정규 수업이 일찍 끝난다. 1~2학년은 오후 1시, 3~4학년은 오후 2시 안팎이면 학교 문을 나서 학원을 전전하거나 ‘나홀로 아동’으로 방치된다. 학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돌봄 형태는 안전한 학교 울타리 내에 머무르는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초등생 학부모 86명과 연 토론회에서도 “학교의 돌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청이 쏟아졌다. 학부모들은 정규 수업 연장(90%), 방과후 프로그램 강화(99%), 등ㆍ하교시간 연장(95.4%) 등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난달 27일 강원도 화천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점심 시간에 S자 놀이와 달팽이 놀이 등을 하고 있다. 화천=최승식 기자

지난달 27일 강원도 화천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점심 시간에 S자 놀이와 달팽이 놀이 등을 하고 있다. 화천=최승식 기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아이들이 세 끼 밥을 먹듯 매일 놀이를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게 하자는 취지”라며 “놀이시간을 만드느라 정규수업 시간이 길어지면서 학부모들의 돌봄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원도교육청은 화천초를 포함한 41개 학교에서 시범사업을 한 뒤 2020년 383개 전체 초등학교로 확대할 계획이다.

시범사업 대상 1~3학년은 200명 가량이다. 참석 여부는 학부모가 선택한다. 어떤 날은 거의 전원이 참석하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민 교육감에게 애로사항을 물었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뉴스1]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뉴스1]

수업 시간 연장에 교사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교사나 교원단체가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놀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따르자는 취지에 대부분 공감했다.
반대한 부모는 없나.
그런 경우가 없었다.

이날 아이들이 뛰놀던 뒤뜰에는 교사 1명이 나와 있었다. 저학년 교실에서 보이기 때문에 담임 교사들이 창문으로 아이들에게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김상희 교사는 "우리도 자랄 때 방과 후에 열심히 뛰어놀면서 행복감을 느꼈는데, 요즘 애들은 그런 기억이 없다. 아이들한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업을 시행하기 전 교사들의 걱정이 많았다. 놀이수업 시간에 사고가 날 수도 있고, 학교가 책임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 가량 지났지만 안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등학생들이 일찍 하교하는 시스템은 전업주부를 전제로 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가족 구조가 달라진 만큼 학교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민 교육감은 “학교가 돌봄 체계를 모두 떠안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학교 수업과 돌봄 모두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학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되 그 이후는 지자체와 가정이 아이들을 함께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화천=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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