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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80년 된 벚나무에서 흩날리는 벚꽃 눈

중앙일보

입력

눈처럼 흩날리는 울산 작천정 벚꽃. 최은경 기자

눈처럼 흩날리는 울산 작천정 벚꽃. 최은경 기자

“어머나~우와~”
지난 3일 오전 10시 울산 울주군 삼남면 작천정 벚꽃 길. 봄바람에 벚꽃 잎이 휘날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평일 오전인데도 상춘객들이 북적였다. 한껏 멋을 낸 연인부터 아기와 함께 온 젊은 부부, 3대로 보이는 대가족까지 봄에 취한 이들의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경쾌하게 어우러졌다. 길 양쪽에 벚나무 수백 그루가 있어 길을 걸으며 하늘을 보니 벚꽃 터널을 지나는 듯했다.

친구들과 작천정 벚꽃 터널을 찾은 조월란씨(오른쪽). 최은경 기자

친구들과 작천정 벚꽃 터널을 찾은 조월란씨(오른쪽). 최은경 기자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던 조월란(56)씨는 “벚꽃과 함께 물소리·새소리 같은 자연을 즐길 수 있다”고 활짝 웃었다. 아기와 올해 첫 벚꽃 구경을 나왔다는 김향기(34)·최규대(38) 부부는 “오래된 벚나무가 많아 눈처럼 날리는 꽃을 맞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벚꽃 터널 옆에는 먹거리 장터가 줄지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파전을 부치고 도토리묵을 써는 아주머니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뽑기, 엿장수 타령, 마술쇼 같은 볼거리·즐길 거리가 많았다.

올해 첫 벚꽃 구경에 나선 김향기, 최규대 부부. 최은경 기자

올해 첫 벚꽃 구경에 나선 김향기, 최규대 부부. 최은경 기자

이곳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벚꽃 길 가운데 하나다. 작천정 벚꽃축제위원회에 따르면 이곳에 벚나무를 심은 것이 1937년이다. 80년이 넘었다. 김형일 벚꽃축제추진위원장은 “당시 가로수를 심을 돈이 충분치 않아 경남 양산에서 심고 남은 벚나무 묘목 120여 그루를 사 왔다”고 말했다. 1990년대 추가로 나무를 심어 현재는 500여 그루에 달한다.

울산 작천정 벚꽃 터널. 이런 벚꽃 길이 1km정도 이어져 있다. 최은경 기자

울산 작천정 벚꽃 터널. 이런 벚꽃 길이 1km정도 이어져 있다. 최은경 기자

벚꽃 길은 작천정 때문에 조성됐다. 작천정(酌川亭)은 벚꽃 터널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정자다. 이 정자가 세워진 유래는 이렇다. 1894년(고종 31년) 언양 현감으로 온 정긍조가 이듬해 정자가 생긴 자리에서 시회(詩會)를 열고 정자를 짓자고 청했다. 이후 정자건립 논의가 있다가 1899년 울산군수였던 최시명이 이듬해 착공해 2년 만에 완공했다. 마지막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을 기념한 상량문이 정자 안에 전시돼 있었다.

벚꽃과 어우러진 작천정. 최은경 기자

벚꽃과 어우러진 작천정. 최은경 기자

상량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움직이는 물이 구덩이를 채우고 흐르는 모습이 점점 바람 부는 아침과 달뜨는 저녁에 보이고 
채색으로 꾸민 난간에서 시문을 주고받는 모임은 난초 피는 봄과 국화 피는 가을을 만나네
또 이 정자의 빼어난 경치를 보려고 한다면 모든 것이 저 바위 술잔의 괴기함에 있네.’

작천정 주변 너럭바위에 문인들의 이름과 시회 우수작들을 새겨 놓았다. 사진의 글은 포은 정몽주를 그리워하는 곳이라는 뜻의 '모은대'. 최은경 기자

작천정 주변 너럭바위에 문인들의 이름과 시회 우수작들을 새겨 놓았다. 사진의 글은 포은 정몽주를 그리워하는 곳이라는 뜻의 '모은대'. 최은경 기자

조선시대 지방 문인들이 이곳에서 시를 읊고 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보면 한시 백일장이다. 시회에서 당선된 우수작들은 주변 너럭바위에 그 글귀를 새겨놓았다. 이름과 시조가 새겨진 바위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작천정 터는 고려 말 울산에 유배 온 정몽주가 글을 읽던 곳이기도 하다. 정몽주는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와 이곳을 오가며 시를 읽곤 했다고 전해진다.

울산 작천정 벚꽃 터널…6~10일 축제 열려 #물소리·새소리와 문인들의 풍류까지 한 곳에서

작천정은 작괘천 계곡 한쪽에 있다. 남복수 작천정보존회 총무는 “이곳 바위들이 술잔으로 쓰는 조롱박처럼 움푹 파였다고 해서 작천정·작괘천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금강 채석장에서 내려오는 돌에 훼손돼 그 모양이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

술잔처럼 움푹 파인 바위가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낸 작괘천 계곡. 최은경 기자

술잔처럼 움푹 파인 바위가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낸 작괘천 계곡. 최은경 기자

계곡 저편 너럭바위에도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평평한 바위에는 따뜻한 봄볕을 쐬러 온 관광객들이 자리를 펴고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빼어난 경관에 둘러싸여 시조를 읊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1920년대 도로개설 사업을 시작해 10년에 걸쳐 작천정을 따라 길을 냈다. 언양·삼남·상북 주민 500여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남 총무는 “일본강점기라는 시대 분위기 때문에 길을 따라 벚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현재의 작천정 벚꽃 터널이 만들어졌다.

4월 6~10일 열리는 작천정 벚꽃축제를 맞아 여러 즐길 거리 노점이 자리 잡았다. 최은경 기자

4월 6~10일 열리는 작천정 벚꽃축제를 맞아 여러 즐길 거리 노점이 자리 잡았다. 최은경 기자

작천정은 1930년대 항일운동 비밀결사대의 숨은 회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언양청년회가 벚나무를 심는다는 핑계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작천정 앞산 중턱에 있는 청사대(靑史臺)에서 결의를 다졌다. 청사대는 언양청년회가 1935년 ‘민족 자주정신 청사에 남으리다’라는 뜻을 담아 지었다.

작천정 벚꽃축제 다목적 광장에서 지역 특산물과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작천정 벚꽃축제 다목적 광장에서 지역 특산물과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이처럼 역사가 함께하는 작천정 벚꽃 길은 수십 년 동안 상춘객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김 위원장은 “한 해 50만 명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울주군이 보조금을 지원해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오는 4월 6~10일 제2회 작천정 벚꽃축제가 열린다. 김 위원장은 “가수 현숙의 축하공연과 지역 동아리 공연, 시민 노래자랑 등이 열리며 지역 특산물과 먹거리를 두루두루 맛볼 수 있는 데다 별빛야영장, 영남 알프스 같은 주변 관광지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자랑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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