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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돈, 이름표를 달아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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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13)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김춘수 선생의 시 ‘꽃’의 한 구절을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돈에도 이름이 필요한 이유는? [중앙포토]

돈에도 이름이 필요한 이유는? [중앙포토]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는 중요성을 갖게 한다. 꽃이 그러하고 사람이 그러하듯, 돈에도 이름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가 필요하다. 왜 그런지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자.

첫 번째, 돈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담하다 보면 많은 사람은 왜 늘 돈이 부족한지, 낭비하지 않는데 돈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돈은 늘 어디론가 가버리려고 한다. 그런데 그 돈에 이름이 없으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할지 몰라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돈이 모이면 이상하게도 돈 쓸데가 생기고 돈이 필요한 사람이 찾아온다. 적금을 넣어 통장에 돈이 좀 있다는 인식을 하는 순간, 돈 쓸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자동차 시동을 켤 때 갑자기 소리가 커져 견디기 힘들어진다. 냉장고 세탁기 소리도 점점 크게 들려온다. 김연아 갈라쇼를 보는데 명품 쇼를 감상하기에 TV가 너무 작아 김연아에게 미안하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이 돈 좀 모으다가 제로가 되고 모으다가 제로가 되는 일을 이렇게 반복한다.

유혹을 이기고 나면 결국 사람이 찾아온다. 신기하게 그가 필요하다고 하는 액수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 통장에 들어있는 돈’과 비슷하다. 이름이 없는 돈은 내게 그렇게 다가오지만 차나 냉장고, 세탁기 또는 사람이라는 곳으로 떠나가 버린다.

세 번째는 원칙이 없는 돈 관리 때문이다. 왜 저축을 하는지,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이유를 정확하게 따지지 않으니 모으는 돈에 이름이 없다. 그래서 어떤 상품을 선택해야 할지,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때로는 안전한 저수익상품에 때로는 위험한 고위험 상품에 투자된다.

돈에 이름을 붙이는 법

매월 시작하는 날 나를 떠나가는 돈에 이름을 붙여보면 돈이 어디로 갔는지, 제대로 간 것인지, 많이 가버린 것인지 알 수 있다. [중앙포토]

매월 시작하는 날 나를 떠나가는 돈에 이름을 붙여보면 돈이 어디로 갔는지, 제대로 간 것인지, 많이 가버린 것인지 알 수 있다. [중앙포토]

세 가지 상황은 모두 돈에 이름이 없어 생기는 문제다. 그러면 이름을 붙이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까?

첫 번째 이유는 지출문제와 관련돼 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늘 지출, 돈 관리에서 생긴다. 나를 떠나가는 돈에 이름을 붙여보자. 매월 시작하는 날, 먹는 돈(식비), 마시고 노는 돈(유흥비), 타는 돈(교통비), 꾸미는 돈(의류, 화장품), 공부하는 돈(자기계발, 학원비)과 고정지출(보험, 자녀교육비, 공과금 등)로 이름을 붙이면 어디로 갔는지, 제대로 간 것인지, 많이 가버린 것인지 알 수 있다.

매월 써야 할 돈은 지출통장에 따로 두고 소비항목에 따라 이름을 부여해 정리하면 돈을 쓸 때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없고 돈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돈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왜 저축과 투자를 하는지 생각해 통장에 이름을 붙여보면 해결할 수 있다. 왜 저축을 하는지, 투자를 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이름표  달아놓으면 된다. 아들 대학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적금을 넣고, ‘영빈 등록금’이라고 써 놓으면 차 소리가 시끄럽고 세탁기 소리가 커져도 지킬 수 있다. 이름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고 더 중요한 상황이 아닐 때는 그대로 둔다.

물론 가끔 적금이나 펀드를 해지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에 가야 한다면 누구나 적금을 해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있을 때와 이름이 없을 때는 해지하는 모습이 다르다. 이름을 붙여놓으면 쉽게 해지하지 않지만, 반드시 해지해야 할 때는 훨씬 신속 명확하게 해지한다. 어떤 것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는 붙여놓은 이름을 보면서 가장 덜 중요하고 가장 의미가 작은 것부터 해지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남겨둘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을 붙여놓지 않은 사람은 그냥 해지한다. 그리고 병원비를 내고 남은 돈은 ‘여행’을 하거나 평소 사고 싶었던 것을 사는 데 사용해 제로를 만들곤 한다.

세 번째 이유와 관련해서는 금융상품 선택을 위해 이름을 붙여 보는 것이다. 저축(투자)할 때 금융상품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때 좋은 상품과 나쁜 상품으로 구분하면 안 된다. 다만 적합하냐 적합하지 않느냐는 구분은 가능하다. 그런데 구체적인 목적이 없으면 어떤 금융상품이 적절한지 알 수 없다.

투자냐 저축이냐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투자 기간’이다. 결혼자금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몇 년 뒤, 얼마가 필요한지 알 수 있고 기간에 따라 적합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같은 결혼자금이지만 누나와 동생은 자금 크기, 필요시기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적합한 상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소비예산 세우고 저축 이유 적시해야 

돈을 다루고 돈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돈에 이름을 붙여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와 중요성을 갖게 해야 한다. [중앙포토]

돈을 다루고 돈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돈에 이름을 붙여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와 중요성을 갖게 해야 한다. [중앙포토]

“돈이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가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한다. “돈을 어떻게 소중하게 다루세요?”라고 물으면 눈만 ‘멀뚱멀뚱, 껌뻑껌벅’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돈도 자기 좋아하는 사람 좋아한다’고.

돈을 좋아하게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은 돈에 이름표를 다는 것이다. 이름표에 적혀있는 그 이름을 보면 그 돈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그 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알 수 있다.

돈에 이름표를 붙어보자. 먼저 소비예산을 수립해서 돈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자. 그리고 저축통장에는 저축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어보자. 그 이유는 우리 인생에서 참 중요한 것이고 그 때문에 선택한 금융상품도 매우 소중하다. 그 소중함을 지키려면 돈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돈의 가치, 중요성은 늘 상대적이다. 때로는 너무 하찮아 보이기도 하고, 때로 가족보다, 친구보다, 동료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돈은 때로 자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을 지배하고 때로 너무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 복수한다. 돈을 다루고 돈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돈에 이름을 붙여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와 중요성을 갖게 해야 한다.

신성진 배나채 대표 truth64@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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