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이러니 저출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 아트팀 기자

이지영 아트팀 기자

서울 혜화동 로터리 부근에 ‘반디돌봄센터’라는 시간제 보육시설이 있다. 예술인들이 시간당 500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운영을 책임진 국공립 시설로,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밤 11시까지 운영하고, 토·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밤 공연, 주말 공연이 일상인 배우·스태프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그런데 최근 이곳이 문을 닫을 뻔했다.

사정은 이랬다. 반디돌봄센터는 2014년 설립 당시부터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지역아동센터도 아니어서 설치 기준 등을 규정한 관련 법이 없었다. 허가나 신고 절차 없이 개소했지만 반응이 좋았다. 두 아이를 이곳에 보내고 있는 배우 천윤경(41)씨는 “출산 후 3년간 무대에 서지 못했다. 센터 덕분에 여배우들도 경력 단절 없이 공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장관·구청장·국회의원들이 센터를 방문해 격려했고, 모범 사례로 국회에 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국가권익위원회에 ‘무인가 어린이집 운영’이라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센터는 존폐 위기를 맞았다. 어린이집 설립 기준에 맞춰 조사받다 보니 ‘불법성’이 드러난 것이다. 현재 센터 건물은 1종 근린생활시설이다. 어린이집이 들어가려면 노유자시설로 용도변경을 해야 하는데 현 건물은 복도 너비가 기준(2.4m)보다 좁은 1.8m였다. 이전 공간을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기준에 맞는 건물을 찾아도 건물주가 용도변경을 거부했다. 대학로의 임대료가 껑충 뛰어버린 상황에서 한번 노유자시설이 되면 다시 상업시설 등으로 용도변경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사이 종로구청은 공동주택관리법 위반으로 16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문제가 복잡해지자 개소 때부터 센터를 위탁 운영해 왔던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은 지난달 7일 위탁 운영 포기를 결정했다.

결국 현 건물 임대 기간이 끝나는 지난달 말까지도 이전할 곳을 찾지 못했다. 4월 1일 운영 중단이 현실화될 위기였다. 센터 이용 부모들은 그 사실을 지난달 17일에서야 알았다. 부랴부랴 서명운동을 펼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현 건물주와 1년 임대 연장을 했다. 정안나 서울연극협회 복지분과 위원장은 “연극인들이 센터 설립 당시부터 차후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관련법 제정을 문체부와 예술인복지재단 등에 요구했지만 지금까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년 유예 기간을 얻었지만 반디돌봄센터는 여전히 ‘무법’ 시설이다. 올해도 과태료를 내야 하고, 언제 또 불법 시비가 붙을지 모른다. ‘함부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이유다.

이지영 아트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