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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새 10배 오른 임대료 … 가로수길·명품거리 불 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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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외 고가 유명 브랜드 매장이 모여 있어 인기를 끌던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임대료는 오르고 고객은 줄어든 때문이다. [함종선 기자]

해외 고가 유명 브랜드 매장이 모여 있어 인기를 끌던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임대료는 오르고 고객은 줄어든 때문이다. [함종선 기자]

서울 강남의 핵심 상권으로 꼽히는 신사동 가로수길과 청담동 명품거리가 비어 가고 있다. 한때 몰려드는 손님으로 분주했던 상권이었지만 최근에는 ‘임대 문의’를 써 붙인 채 문을 걸어 잠근 가게가 늘고 있다.

그 많던 명품점 내몬 공포의 임대료

가로수길의 경우 메인 거리인 2차로 도로 양옆으로 1층 점포 11개가 비어 있다.

가로수길 인근 테라공인의 이성민 대표공인중개사는 “3~4년 전만 해도 점포당 4억원가량의 권리금(영업권 프리미엄)이 붙었기 때문에 1층 상가가 빈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최근 가로수길 메인 거리에서 권리금이 아예 붙지 않은 채 거래되는 1층 점포도 꽤 된다.

이렇게 공실이 급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다락같이 오른 임대료다. 가로수길 메인 거리 1층의 경우 3.3㎡당 월세가 120만~15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10%가량 뛰었다. 10년 전인 2008년에는 3.3㎡당 월세가 15만원 안팎이었다. 임대료가 올라도 손님이 늘어나면 수지를 맞출 수 있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청담동 건물 5곳 중 1곳꼴 ‘임대’

가로수길의 한 패션 점포 매니저는 “4~5년 전에 비해 임대료는 배 이상 올랐는데, 손님과 매출액은 같은 기간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가로수길 메인 거리는 2012~2015년 상권이 주목을 받으면서 대기업과 외국계 브랜드 매장이 경쟁적으로 입점해 임대료가 치솟았고 거리 분위기도 변했다. 예를 들어 월 임대료가 1000만원이었던 매장을 대기업이 1600만원으로 올려 들어오는 식이었다. 이러다 보니 거리의 특색이 사라져 버렸고 방문객도 줄었다.

회사원 김현수(48)씨는 “주차하기도 불편한 가로수길을 굳이 찾았던 이유는 특색 있는 소규모 점포 등 가로수길만의 독특한 매력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백화점과 별반 다를 게 없어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 역시 상권이 조성된 후 처음으로 공실이 쌓이고 있다. 압구정 로데오역에서 청담사거리로 이어지는 메인 도로의 건물 5개 중 한 개꼴로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수섭 신청담코리아공인 대표공인중개사는 “청담동 명품거리 역사상 가장 많은 공실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명품 브랜드 에스까다가 있던 자리는 현재 ‘임대’ 간판을 내걸었다. 메트로시티도 청담동에서 철수하면서 현재 공실이다. 이탈리아 브랜드 보기 밀라노와 프랑스 가방 전문 브랜드 제롬 드레이퓌스가 있던 건물도 공실이다. 청담사거리 입구 브룩스브라더스가 있던 건물 역시 비어 있다.

명품거리의 공실 역시 임대료는 올랐지만 손님은 줄어든 때문이다. 현재 공실로 나온 명품거리 1층 매장의 3.3㎡당 월세는 100만원 이상인데, 중국 관광객 감소 등의 여파로 찾는 손님은 줄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청담동의 공인중개사는 “현재 영업하는 청담동의 명품 매장 중 수익을 내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커도 줄어 … “수익 내는 곳 없다”

국내 고객의 경우에는 백화점 명품관에 고객을 빼앗기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회원(쟈스민 등급)이라는 박모(48)씨는 “백화점에서 사면 무이자 할부 등의 혜택은 물론 백화점 마일리지가 쌓여 상품권도 받고 무료 발레파킹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등 편리한 점이 많다”며 “가끔 청담 매장에 물건을 보러 가기는 해도 실제 구매는 백화점에서 한다”고 말했다.

실제 롯데백화점의 올 1분기 해외 명품 부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7% 늘었다.

김대수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장은 “명품을 사는 VIP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한 결과 명품 매출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뒷골목 자영업자들 더 큰 타격

지난해까지만 해도 빈 점포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사동 가로수길 1층에 11개의 상가가 비어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빈 점포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사동 가로수길 1층에 11개의 상가가 비어 있다.

문제는 이렇게 공실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임대료를 내릴 의사가 있는 건물주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임대료를 내리는 것은 건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고, 몇 달 비워놓더라도 올린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임차인을 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건물주가 많다는 것이다.

가로수길의 한 공인중개사는 “임대료를 좀 내리기 위해 임차인의 딱한 사정을 건물주에게 얘기하면 전화를 딱 끊어버린다”며 “어떤 건물주는 강남에 여러 채의 건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임대료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기 때문에 나도 힘들다’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전에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에 따른 기존 임차인 내몰림) 현상이 일어났던 곳에서는 공실이 증가하면서 건물주들이 자진해 임대료를 내렸는데 청담동과 가로수길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1층 상권에 공실이 늘어가는 현상이 가로수실과 명품거리에서 두드러지지만 종로나 신촌 등 구도심 상권에서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건물 가치 떨어질라” 임대료 안 내려

피해는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돌아간다. 메인 상권이 죽으면 음식점 등이 있는 배후 상권은 더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인데, 배후 상권에는 주로 자영업자가 자리 잡고 있다. 가로수길 이면도로인 일명 세로수길에서 최근 옷가게를 접었다는 김모(43)씨는 “4년 전 33㎡ 점포의 권리금(영업권 프리미엄)을 1억5000만원이나 주고 들어갔는데 한 푼도 못 건지고 나왔다”며 “계속 적자가 나는 상태에서 매달 임대료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권리금을 포기한 채 급하게 새 임차인을 찾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어려움에 부닥친 임차인을 돕기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강화하고 있다. 올 1월에는 기존 임차인에 대한 임대료 상승률을 9%에서 5%로 낮췄다. 또 권리금 부분에 대해서도 임차인이 임대 기간 내에 권리금을 챙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실제 상가 거래 현장에선 이런 임대차보호법이 ‘무용지물’이라고 얘기한다. 건물주가 새 임차인을 구할 경우 임대료 상승률 제한은 의미 없게 되고, 임차인이 권리금을 챙기는 부분도 임대 기한 내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 소장은 “상인들이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영업할 수 있는 기간을 법적으로 늘리는 등 현실적으로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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