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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비문 대선주자 vs 친문 실세 대충돌 … ‘민심 대 당심’ 승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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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의 정치 속으로

이재명(왼쪽)·전해철 예비후보가 지난달 7일 오후 경기 안양 더 그레이스켈리에서 열린 최대호 전 안양시장 ‘안양혁신보고서’ 출판기념회에서 국민의례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왼쪽)·전해철 예비후보가 지난달 7일 오후 경기 안양 더 그레이스켈리에서 열린 최대호 전 안양시장 ‘안양혁신보고서’ 출판기념회에서 국민의례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 경기지사 후보 ‘이전투구’ 현장

이, 일반 여론조사서 큰 차 우위 #‘민심 이기는 당심 없다’면서도 #친·비문 구도 경계해 ‘나도 친문’ #‘문재인’‘노무현’ 직함 논란도 뇌관 #전, 당조직 총동원해 위력 과시 #유례없는 도의원 지지 선언 러시 #친문들 ‘이재명은 불안’ 십자포화 #‘줄 세우기로 공정성 훼손’ 논란도

“우리 더불어민주당이 미투 파동으로 어려운 형편입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선 도덕성 높은 후보가 절실합니다. 여기 있는 정치인 중 가장 도덕성 높은 이의 하나가 전해철입니다!”

지난달 10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열린 전해철 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재선 의원·안산상록갑)의 북 콘서트에서 김진표 의원(4선·수원무)이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외쳤다. 그의 바로 앞에는 이재명 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전 성남시장)이 앉아있었다. 한때 패륜·불륜 의혹으로 구설에 올랐던 이재명에게 김진표가 직격탄을 날린 셈이었다.

이재명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가벼운 미소로 상황을 넘겼다. 이날 북 콘서트는 전해철의 민주당 내 파워를 보여주는 쇼윈도였다. 우원식 원내대표,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민주당 현역 의원 45명, 민주당 소속 경기도의원 60여 명, 민주당 소속 경기 지역 자치단체장 10여 명을 포함해 1만명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전해철의 민주당 파워는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 40명 중 30여 명, 도의원 66명 중 53명, 경기도 지역위원장 80명 중 60여 명이 지지 선언을 한 데서도 드러난다. 특히 도의원들이 지사 후보 경선 전에 특정 예비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은 지방선거 실시 23년 만에 처음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누가 경기지사로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건 도의원으로선 엄청난 도박이다. 이런 이례적인 상황은 전해철이 ‘3철’의 하나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데다 석 달 전까지 경기도당위원장을 지냈고 지금도 도당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당의 공천(컷오프)을 받아야 민주당 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도의원들은 전해철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패권을 앞세운 줄 세우기”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전해철을 크게 앞서고 있는 이재명은 당내 조직 싸움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기 포천에서 열린 민주당 지역위원회 회의.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 정책설명회’를 겸해 열린 이 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포천시 의원은 없었다. 그와 함께 포천 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2명도 불참했다. 유일하게 참석한 시장 예비후보 장승호씨는 “전해철 무서워 안 나온 것으로 본다. 그분들은 의정부에서 열린 전해철 후보 설명회에는 다 갔다”고 말했다.

이튿날 이재명이 수원에서 주최한 ‘이재명과 함께 화성을 걷다’ 행사도 반 토막 나며 참극으로 끝났다. 참석하기로 약속했던 시도의원 20여 명 중 모습을 보인 이는 12명에 불과했다. “전날 밤 난리가 났다. ‘이재명 행사에 가지 말라’는 시그널이 위에서 날아오자 시도의원들이 겁먹고 불참했다. 살벌하다. ‘이재명과 사진만 찍어도 공천 날아간다’며 떠는 시도의원들이 많다”고 현지 민주당 관계자는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기도가 지역구인 국회의원들도 대놓고 전해철을 미는 이들이 많다. 4선에 경제부총리를 지낸 원로급 김진표 의원은 ‘전해철 지지 경기 의원 조찬 모임’을 여러 번 열며 경기 남부 지역에서 전해철 캠프의 좌장을 자임하고 있다. 마포 설렁탕집과 여의도 한정식집에서 돌아가며 열리는 조찬 모임엔 매번 경기 지역 의원 20여명씩이 돌아가며 참석해 “일반 지지율에서 뒤지니 당 조직을 더욱 다져야 한다”는 식으로 전해철에게 조언하고 있다.

 김진표를 비롯해 김두관(초선·김포갑) 의원 등 전해철 지원에 적극적인 의원들은 공통점이 있다.다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노리는 사람들이다. 본인들은 “전해철이 더 안정감 있어 돕는 것”이라지만 친문 세력에 잘 보여 자신들이 노리는 자리를 얻겠다는 계산이 없을 리 없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이다.

당조직을 앞세운 전해철의 공세에 이재명은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해철을 ‘친문 패권주의자’로 공격하는 순간 그의 편 가르기 전술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무시 전략으로 일관한다. 전해철 지지를 선언한 도의원들에 대해 “이해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정책으로 승부하는 도지사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연일 발신하고 있다. 민심(도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친문 세력은 당내 전해철 세몰이와 함께 ‘이재명 공천 불가론’도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친문계 핵심인 황희 의원(초선·양천갑)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경기지사는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깔판’으로 둔갑해 도민들 민생에 도움이 안 됐다. 그러나 전해철은 대권에 뜻이 없다. 도정에만 전념할 거다. 반면 이재명은 대권 꿈이 강해 도정에서 불안 요소가 많고 도덕성 논란도 우려된다. 그가 본선에 나가는 순간 자유한국당이 이재명을 날릴 ‘한방’을 터뜨릴 것이란 소문도 있다. 전해철이 이재명보다 지지율이 낮은 건 맞지만 본선에서 승산은 충분하다. 도정과 후보의 안정성을 고려해 전해철을 후보로 뽑아야 한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내심 걱정이 크다. 전해철의 당내 세몰이가 ‘패권을 앞세운 줄 세우기’ 논란으로 비화돼 공천의 공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전해철의 줄 세우기 전략은) 문제가 있다. 1995년 지방선거 개시 이래 이런 노골적인 세몰이는 없었다. 비문들 반발이 크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지 선언을 막을 수도 없다. 관망만 하는 상태”라고 했다.

경선 결과를 좌우할 여론조사에서 후보들이 ‘문재인’이 들어가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도 논란이다. 문재인 청와대나 정부에서 일한 경력을 직함으로 쓰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지지율이 15% 포인트는 올라간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무현’이 들어가도 지지율이 5~7% 포인트 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해철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지냈다. ‘국회의원 전해철’ 대신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 전해철’로 소개되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이재명 등 비문 후보들은 이런 표기 방침에 반발한다. 공관위는 “문재인, 노무현을 쓸 수 있게 할지 말지는 3일부터 가동되는 경선 관리위원회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격한 차이로 앞선 후보는 단수 공천할 수 있다’는 당규도 논란이었다. ‘현격한 차이’는 ‘여론조사를 3번 실시해 합산한 평균 지지율이 20% 포인트 이상 앞서거나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점수 차가 20점 이상 앞서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재명은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전해철을 20% 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는 상황을 근거로 자신을 단수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해철은 “여론조사에는 책임당원 의견이 빠져있다. 또 당 기여도와 정체성, 정책 능력도 따져야 한다”며 경선으로 후보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3일 경기도를 경선지역으로 고시해 결과적으로 전해철 손을 들어줬다. 이재명은 “당 결정을 환영한다”며 또한번 엎드렸다.

친문들이 줄 세우기 논란도 불사하며 전해철 세몰이에 올인하는 것은 지방선거 이후 정치지형과도 관련이 크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관계자는 “서울은 현재까지 비문 박원순 시장의 경선 승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친문들로선 수도권에서 경기지사라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수도권에서 친문 광역자치단체장이 나와야 위력이 과시돼 2년 뒤 총선에서 친문들을 대거 공천하고 비문들을 쳐낼 수 있다. 마침 경기도는 이재명 지지율이 높긴 하지만 현역 자치단체장이 아니라 조직이 약하다. 조직이 강한 전해철이 밀어붙이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손학규·김근태계 등이 주류였던 경기도는 두 정치인의 몰락으로 두 계파 의원들이 비주류로 전락한 탓에 친문들의 공략이 쉬운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전해철을 만나 입장을 들어봤다.

‘도의원 줄 세우기’ 논란을 어떻게 보나.
“도의원들의 지지는 순전히 자발적인 거다. 내가 도당위원장에서 물러나자 도의원들 거의 전원이 환송 모임에 왔다. 감사패도 주더라. 유례없는 일이다.”
의원들이 그러는 건 ‘친문 패권주의’ 가 작동한 탓이란 주장도 있다.
“나는 ‘뼈노’다. 뼛속 깊이 친노·친문이다. 이 때문에 20대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을 뻔했다. ‘3철’ 물러나라고 해서 나를 포함한 9명이 일선에서 후퇴하기도 했다. 우리가 무슨 사익을 추구해서 패권화를 했나? 패권은 안되지만 가치로서 모이는 건 필요하다.”
도의원들 지지 선언이 권리당원 표심에 영향을 미칠까.
“당의 근간이 되는 분들이 누구를 지지한다 하면 호응을 해주지 않겠나. (이재명 후보는) 지지 선언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다 경쟁의 수단과 방식일 뿐 아닌가. (이재명을) 지지하며 뛰는 의원은 내가 봤을 때 3명 이내다. 당의 지지를 못 받는 상황을 성찰하기 바란다.”
당내에선 원군이 많지만 일반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는데.
“최근 가파르게 올라 20%대 진입을 바라본다. 25%를 넘어가면 추세는 확실히 달라질 거다. 승산이 있다고 본다.”

강찬호 논설위원
정리=윤가영·황병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