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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암호화폐 만든 차움 “직접 민주주의가 암호화 지향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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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분산경제포럼’에서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이 ‘분산 컴퓨테이션’을 주제로 기조연설 하고 있다. 그는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이캐시를 고안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분산경제포럼’에서 암호학자 데이비드 차움이 ‘분산 컴퓨테이션’을 주제로 기조연설 하고 있다. 그는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이캐시를 고안했다. [연합뉴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 세상을 바꾼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업적을 추켜올리는 말을 듣자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곧, 자신의 업적은 갈릴레오·베이컨·케플러 등 앞선 과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제1회 분산경제포럼 강연 #“암호화 핵심은 프라이버시 존중” #차움, 기득권 나누는 대안으로 제시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등 #관련 분야 거물 80여 명 행사 참여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의 원조,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 비트코인은 2008년 11월, 자신을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밝힌 개발자가 공개한 백서에서 출발했다. 그 백서에는 앞선 여러 암호화폐의 원리와 작동 방식이 담겨 있다. ▶스팸 메일이나 디도스 공격으로부터 메일 시스템을 보고하기 위해 작업증명(Proof of Work) 방식을 도입한 아담 백의 해시캐시▶익명성과 분산 방식 발행 개념의 화폐인 웨이 다이의 비머니▶현재 비트코인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평가받는 닉 사보의 비트골드 등이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이캐시(E-Cash)가 있다.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롤 불린다. 이 암호화폐의 창시자가 ‘암호학의 아버지’ 데이비드 차움이다. 차움은 3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1회 분산경제포럼(DECONOMY 2018)’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분산경제(distributed economy)란 모든 참여 주체가 인센티브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중앙기관이나 중개자 없이 합의에 도달하는 경제모델을 뜻한다.

4일까지 열리는 행사에는 분산경제 분야의 거물 80여 명이 참석했다. 차움을 비롯해 시가총액 2위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 ‘비트코인 예수’로 통하는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 이오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블록원의 고문인 금융암호학자 이안 그릭, 암호화폐의 확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인 라이트닝 네트워크를 고안한 조셉 푼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비트코인에 영감을 준 4가지 암호화폐

이캐시(E-Cash)
●탄생: 1990년(이캐시를 개발한 디지캐시 설립)
●개발자: 데이비드 차움
●특징: 암호화 기술을 적용해 익명성을 강화한
세계 첫 암호화폐

해시캐시(Hashcash)
●탄생: 1997년 ●개발자: 아담 백
●특징: 스팸 메일 등으로부터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 비트코인 백서에 언급

비머니(B-Money)
●탄생: 1998년 ●개발자: 웨이 다이
●특징: 익명성과 분산 방식의 화폐 발행

비트골드(Bit Gold)
●탄생: 1998년 ●개발자: 닉 사보
●특징: 작업증명(PoW) 방식 도입.
화폐의 기능 중 금처럼 가치 저장의 수단에 중점

차움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암호화폐와 암호화 기술이 가져올 사회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암호화폐에는 사이버 혁명을 넘어서는 고귀한 사명이 있다”며 “암호화 기술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차움은 “기존 거버넌스(지배구조)를 어떻게 분산시키고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암호화폐 연구의 핵심”이라며 “암호화 기술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차움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성과 직접 연결돼 있다”며 “프라이버시는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상의 핵심 원리를 지키고 유지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그의 사상은 ‘사이퍼펑크(Cypherpunk)’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이퍼펑크의 정신적 지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이퍼펑크는 암호학의 진보와 프라이버시 보호의 대중화가 사회적·정치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자유주의 운동이다. 일체의 간섭과 권력을 부정하다 보니 무정부주의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차움은 연설 이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사이퍼펑크의 정신적 지주라는 표현은 매우 영광이지만 사이퍼펑크의 생각과 철학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 사이퍼펑크와는 조금 다르다”며 “그들은 반정부적이고 극단의 자유주의를 추구하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1982년 디지털 서명을 활용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은닉 서명(Blind Signature)’ 기술을 고안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90년 디지캐시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를 출시했다. 이캐시는 은행이 모든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신용카드와 달리 거래 내용을 제3자가 알 수 없는 익명성을 보장했다.

디지캐시는 그러나 경영난으로 98년 파산했다. 당시만 해도 전자상거래 기반이 취약했고,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캐시가 아니라, 익명성은 전혀 없지만 사용이 편리한 신용카드를 선호했다.

10년 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다. 국가가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돈을 찍어내는 기존 법정화폐와 금융 시스템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중앙화한 기관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데이비드 차움

암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컴퓨터 공학과 경영학 박사학위를 마쳤다. 암호학 연구에 뛰어든 뒤 81년 국제암호연구협회(IACR)를 창립했다. 디지털 서명을 활용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은닉 서명(Blind Signature)’ 기술을 고안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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