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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 갈 때 돈보다 중요한 건 '영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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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주호석의 이민스토리(6)

2007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부가 빗속에서 운전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차가 강물 속에 잠겨버렸다. 911에 전화했지만 영어가 미숙해 설명 부족으로 목숨까지 잃게된 안타까운 사고였다.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AP=연합뉴스]

2007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한국인 이민자 부부가 빗속에서 운전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차가 강물 속에 잠겨버렸다. 911에 전화했지만 영어가 미숙해 설명 부족으로 목숨까지 잃게된 안타까운 사고였다.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AP=연합뉴스]

지난 2007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20여년 된 60세 전후의 한국인 이민자 부부가 빗속에 운전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차가 강물 속에 잠겨버렸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험한 날씨에다 혼란스러운 도로표지판 때문에 길을 잃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차 안에 물이 차오르자 휴대폰으로 911에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했지만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부부가 함께 물에 잠긴 차 안에서 숨졌습니다. 911에 전화를 했지만, 영어가 미숙해 충분한 상황설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어 미숙으로 목숨까지 잃게 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이민자가 겪게 된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이민자들이 영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불편함은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습니다.

직업을 구하는 데 있어서 번번이 좌절하기도 하고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손해를 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자녀교육에서도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녀와의 대화가 단절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돈 주고 커피나 패스트푸드를 사 먹으면서 영어 때문에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한인 이민자, 현지 기업 취업 드물어 

캐나다의 대부분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영어로 인터뷰를 두세 번에 걸쳐 진행하므로, 영어 능력이 부족한 한인이민자들의 취직이 어렵다. [사진 freepik]

캐나다의 대부분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영어로 인터뷰를 두세 번에 걸쳐 진행하므로, 영어 능력이 부족한 한인이민자들의 취직이 어렵다. [사진 freepik]

캐나다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다양한 민족 출신의 이민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이민자가 일하는 웨어하우스 잡 같은 육체노동을 하는 직장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직장에서 유럽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안 중 필리핀계 중국계 인도계 직원들은 굉장히 많이 눈에 띄는데 유독 한국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현지 기업에 취업하는 한인 이민자들이 극히 드물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영어 때문입니다. 한인 이민자가 취업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취직을 하고 싶어도 영어가 안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인 이민자가 다른 민족 출신보다 영어 능력이 가장 뒤진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규모를 갖춘 기업들의 경우 직원을 채용할 때 보통 두세 번에 걸쳐 인터뷰합니다. 물론 영어로 인터뷰하지요. 그런 기업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언어소통이 안 되는 취업희망자를 직원으로 뽑아줄 리 만무합니다. 결국 영어가 안되면 현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버리게 됩니다.

설사 어떻게 해서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영어가 짧으면 일하는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렵게 취직했다가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대부분 영어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영어 능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돈을 벌기가 더 어렵습니다. 우선 비즈니스 범위가 좁아집니다. 즉 영어권 고객을 아우르는 비즈니스를 해야 업종선택 범위도 넓어지고 고객층도 두터워지는데 영어가 안되면 고작 한인을 상대로 하는 업종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비즈니스가 영세할 수밖에 없고 수익을 내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한인 이민사회에서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영어에 능통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려는 이민자에게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입증해주는 대목이지요.

밴쿠버에서 대형 커피숍을 여러 개 운영해서 돈을 많이 번 한인 비즈니스우먼한테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객이 커피를 주문할 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일상의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때 영어소통이 완벽하지 않으면 그 고객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밴쿠버의 경우 경제적으로 넉넉해 애써 취업이나 비즈니스를 하지 않아도 여유롭게 이민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런 이민자들의 경우 영어를 못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영어는 꼭 취업이나 비즈니스를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부자 이민자의 경우 돈 버는 문제로 인한 어려움이나 불이익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영어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겪어야 하는 크고 작은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는 이민 생활하는 내내 털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영어 못하면 일상서도 낭패 

한인 이민사회에서 영어를 못하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진 Pixabay]

한인 이민사회에서 영어를 못하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진 Pixabay]

일단 집 밖을 나가면 영어 스트레스에 부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들이 농담 섞어 말을 걸어옵니다. 은행에 가면 텔러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꾸 말을 시킵니다. 몸이 아파 의사를 만나면 의사들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 묻는 게 많은데 말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의사가 환자가 모두 알아듣고 있다는 가정하에 의학전문용어를 써가며 얘기하면 무슨 진단을 했는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잔뜩 받은 채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또 가끔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묻기도 합니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한 채 전화를 끊고 나면 무지하게 중요한 일을 망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 역시 적지 않은 스트레스입니다.

대개의 이민자 집안에서 그나마 영어소통이 되는 식구는 아이들입니다. 부모와 함께 이민 온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몇 개월 지나면 영어로 의사소통하게 됩니다. 일단 아이가 영어에 귀가 트이고 말문이 열리게 되면 영어 못하는 부모들이 밖에 나가 일을 볼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가려 합니다. 그것도 한두 번으로 끝나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허구한 날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아이에 따라서는 부모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장성해 결혼할 때가 되면 영어로 인한 마음고생을 또 하게 됩니다. 서양 사위나  서양 며느리를 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우선 사돈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말이 안 통하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뭐든 살갑게 해주고 싶고 정을 주고받고 싶지만, 의사소통이 안 되니 마음만 답답할 뿐입니다. 사돈은 안 만나고 지내면 된다손 치더라도 사위나 며느리는 안 보고 남처럼 지낼 수도 없는 가까운 가족구성원입니다.

한인 이민사회에는 영어를 아예 포기한 채 살아가는 이민 1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하루에 영어 한마디 안 하고도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한인업소에 취직해서 일하고 한인 슈퍼에 가서 쇼핑하면 됩니다. 또 집에서 인터넷으로 한국방송을 시청하고 한인끼리 만나 한인 식당가서 식사하고 일요일엔 한인교회 가서 예배보거나 한인들끼리 모이는 각종 모임에 가입해 취미생활을 하면 크게 불편할 것도 없습니다. 몸은 캐나다 땅에 와있지만, 생활은 한국식 그대로 하는 것이지요.

‘한인 끼리’는 자녀 장래에 나쁜 영향 

이민 올 때 꼭 가지고 와야하는 필수품은 '영어 능력'. [중앙포토]

이민 올 때 꼭 가지고 와야하는 필수품은 '영어 능력'. [중앙포토]

하지만 그런 이민생활은 캐나다에 살면서도 캐나다의 문화나 생활풍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즐기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다양한 타민족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일상생활 범위가 한인끼리 그리고 한인사회에 국한될 경우 자녀들의 장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민 1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녀들은 좀 더 넓은 세상, 흔히 말하는 주류사회에 진입하여 좋은 대우를 받으며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부모가 좁은 한인사회에 사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면 자식들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그렇게 좁은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이민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필자는 이런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이민 올 때 꼭 가지고 와야 하는 유형 무형의 필수품 가운데 '영어 능력'을 프라이어리티 넘버 원으로 챙겨 오라는 것입니다. 물론 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영어를 못하면 언젠가 그 돈을 다 까먹고 빈털터리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영어를 잘하면 돈 벌 기회가 많아질 뿐 아니라 이민생활이 훨씬 즐겁고 보람 있고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호석 밴쿠버 중앙일보 편집위원 genman201@daum.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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